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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Oct 21. 2022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원래 이번 주에는 브런치 매거진에 짧은 소설 한 편을 올릴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틈틈이 허구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게 풀어낼까, 고민하며 조금씩 화면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글을 쓰는 마음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무엇인가가 자꾸 내 숨통을 틀어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써 모른척하려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진정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상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얼마 전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한 말로 인해 다시금 회자되었던 표현이다.

요즘 이 말이 너무 마음 깊이 와닿는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과연 지금보다 나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 동시에 기성세대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아무리 봐도 역사의 페이지가 자꾸 뒤로 돌아가길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에겐 분명 분노한 국민들의 소중한 피로 물들었던 역사가 있다. 독재정권에 분연히 저항했던 4.19 혁명이, 광주 민주화운동이, 6월 민주항쟁이 있었다. 비록 힘없는 개인들이었지만 부당한 권력에, 정의롭지 못한 힘에 용기 내 함께 맞서 싸워온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다. 그런데 그분들의 희생을 딛고 겨우 쟁취해낸 '국민을 위한 나라'는 방향을 잃고 또다시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의 주장과 유사한 발언을 한 여당의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가소롭다. 역사 공부를 하라!'라고 고개 빳빳이 들고 호통치는 나라,

힘을 가진 특정 집단이 무소불위의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나라,

1950년대 냉전이 극에 치달았던 시절 미국 매카시즘의 혼령이라도 씐 듯, 독재정권 시절의 지도자들이 다시 살아 돌아온 듯 '종북 주사파'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는 수장이 존재하는 나라,

상대당을 향해 '김일성주의자'니 '수령님께 충성' 한다느니 하는, 사이비 종교에 심각하게 빠진 사람처럼 정신 나간 발언을 일삼는 자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감싸고도는 세력이 좀비처럼 권력을 잡고 버티고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역사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던 때가 마치 오래전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스스로 조용히 퇴진했다는 영국 총리의 소식이 이리도 부럽게 느껴질 날이 오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불과 6년 전, 여덟 살 꼬맹이의 손을 잡고 촛불집회가 있던 광화문 광장으로 나섰다. 광장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내 뒤통수에 대고 들으란 듯이 '빨갱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날 그 단어를 처음 접한 아이는 내게 '빨갱이'가 무엇을 뜻하는 거냐고 물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촛불로 하나 되어 일렁이던 그날이 떠오른다. 보일 듯 말 듯한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던 그 마음이 생각난다. 그러나 한편으론 무기력한 한숨이 흘러나온다. 두 번 다시는 '빨갱이'라는 말이 떳떳하게 비집고 들어올 틈은 이 땅 위에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금 우리는 그날로 돌아가고 있다. 저 무시무시한 세 글자 단어가 한 사람을 위협하고 죽이는 날카로운 무기로 공공연히 쓰일 수 있는 그런 날로 말이다.


열심히 페이지를 채워왔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저장되지 못한 파일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절망적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중학생이 된 그날의 꼬맹이는 이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빨갱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고 어떤 목적을 품은 채 상대를 향해 날아드는지 알고 있다.


어른들과 함께 추위도 무릅쓰고 열심히 촛불집회를 했었는데 왜 이 나라가 나아진 것이 없는 거냐고 아이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대답해 줄 말이 없다.

대답을 줄 의무가 있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자그마한 화면에 불을 켠다. 한 글자 한 글자 손끝에 힘을 실어 꾹꾹 눌러본다. 분노한 시민들의 마음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걸 간절히 믿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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