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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Oct 31. 2022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무뎌진 감성의 날을 품고 살아가다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이름들이 있다.

그러한 그리움이 끝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기면, 내 마음이 그 임계점을 넘게 만드는 이가 나와 같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볼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서 자유를 빼앗기 위해 본인에게 주어진 '힘의 자유'를 마음껏 내휘두르며 함부로 자유를 부르짖고 더럽히는 누군가를 지켜보며, 한 사람을 향한 내 그리움이 마침내 임계점을 훌쩍 뛰어넘고야 말았다.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작은 표정 하나 목소리 한 줄기에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자신이 지켜왔던 소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버티다 결국엔 스러져가고 만 그의 흔적을 찾아 집을 나섰다.


지난달 창덕궁 근처에 들어선 그를 기리는 소박한 건물 하나. 가을의 정점에서 붉게 타오르는 나뭇잎들로 화려한 창덕궁 바로 옆, 생전의 그의 모습을 닮은 노무현시민센터가 낮은 자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들에 길들여진 시선으로 보면 처음에는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는 외양이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를 추억하기에 좋은, 그와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은 알록달록한 그림-전체적으로 '노랑'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이 새겨진 전면 통유리창이 방문객들을 반겨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림 하나하나가 일반 시민들이 직접 채워나간 글씨와 선과 색들로 이루어져 있다. 글 한 줄 한 줄에 시민들의 애정과 그리움이 간절하게 묻어 나온다.

건물 전면과 1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통창의 그림들


그림 속에 시선을 담그고 있는 사이 그의 목소리가 대형 스크린을 뚫고 나와 1층 홀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공기를 울리는 진동이 내 가슴 한편에 웅크리고 있던 무엇인가를 툭, 건드렸고 이내 뭉클한 감정이 터진 마음의 둑 사이를 사정없이 비집고 솟아 나왔다.

1층 '기부자의 벽'

그러나 이내 화면 속 그에게 따져 묻고 싶어졌다. 왜 끝까지 싸워보지 않았느냐고. 정의롭지 못한 힘에 굴욕 하기보다 차라리 스스로를 저버리는 마지막을 택할 것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라도 온 힘을 다해 맞서 끝끝내 살아남았어야 하는 게 아니었냐고. 결국엔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게 그곳의 생존법칙이 아니었냐고. 왜 약자는 부당한 힘에 굴복하기를 강요당하고 강자였던 자는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서 마음껏 폭력을 행사하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냐고...


결코 대답을 듣지 못할 질문임을 알면서도 마음속으로 실컷 넋두리 반 분노 반이 뒤섞인 질문들을 쏟아냈더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워서 당신을 보러 왔다,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토로할 길 없는 하소연과 원망을 풀어낼 대상을 찾아서 그를 찾은 건지도 모르겠다. 몹시 궁금해졌다. 살아있는 그였다면 내게, 우리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줬을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전시물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지나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그의 역사가 한쪽 벽면을 정갈하게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꼬마 시절 그의 모습부터 떠나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사진까지.

해맑기만 한 어린 시절의 그는, 사춘기 시절 특유의 반항적 에너지가 넘치는 눈빛을 한 그는, 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면 그 험난한 여정을 가겠다는 결심을 돌이켰을까.


이제 다시는 살아있는 육성을 그에게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곳을 떠나는 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떠나기 전, 계단에 앉아 텅 빈 공간 속을 부유하고 있는 듯한 그의 기운을 느껴보려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책들에, 강풀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 기념품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그의 캐릭터 속에 그가 있었다. 살아남은 우리를 위로해주며. 너덜너덜해졌던 마음이 다시금 팽팽하게 다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 결국 모든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일 거다.

마음을 굳게 다지자. 그리고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을 때는 더 떳떳하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그를 만나리라.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캐릭터 배지를 가방에 단단히 매달고 그곳을 천천히 뒤돌아 나왔다.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조금 더 꼿꼿이 편 채로….

책들로 가득한 계단에서 내려다 본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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