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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덟 번째 봄

잊지 않겠습니다

by 지뉴

2014년 4월 16일 벚꽃들이 만개하던 날, 난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들을 데리고 여수로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오전 8시 30분경 출발했으니 첫 뉴스를 듣게 된 그 시각 경기도 어디쯤을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설레는 맘 가득한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을 실은 버스 안은 연신 시끌벅적했다.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했던 '아오니'라는 공포게임을 하느라 정신없었는데, BGM이 매우 시끄럽고 자극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을까, 소음을 뚫고 누군가가 세월호 관련 뉴스를 큰소리로 전했다.

"선생님, 고등학교 형 누나들이 타고 가던 큰 배가 가라앉고 있대요!"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배가 크다면 가라앉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그 사이 분명 구조작업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들이 구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를 접한 후 '역시나....' 하며 안도하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그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버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님이 버스 내 텔레비전에 뉴스 화면을 띄웠는데, 화면 속 거대한 배는 계속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전원 구조' 기사는 오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뒤통수를 심하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얼얼해졌다. 화면 속 그 어디에서도 구조활동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믿었다. 이 나라를. 저 수많은 국민들의 생명을 반드시 지켜내 줄 거라고. 그 장면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에 뉴스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나 끝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소중한 목숨들이 속절없이 수장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목숨들이었다. 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시간 이 나라의 수장은 오리무중이었고, 정부 관계자들은 긴급하게 돌아가는 현장 속에서 정신없었을 해경에게 연신 상황 보고를 요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민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행태였다. 단원고가 안산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 강남 부유층 동네에 있는 학교였어도 그랬을까, 라는 의문들까지 솟아 나왔다.


선체 내에서 ‘구조’된 사람은 없었고 선체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선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대한 배와 함께 어둡고 차디찬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마지막 희망도 점점 사라져 갔다.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는 헛된 것처럼 보였고, 가족들은 시신이라도 건져 올릴 수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뒷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홀로 스무 명의 목숨을 구한 파란 바지 의인 김동수 씨 이야기-그는 더 많은 목숨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배가 가라앉는 와중에서도 동영상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남긴 아이들의 두려워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교사들의 이야기. 같은 교사로서 '나도 과연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곧 져버릴 꽃다운 생명을 예견하지 못한 채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왔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나도 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제까지고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라고. 반 아이들을 데리고, 내 아이를 데리고 희생자들의 영정이 안치돼있던 화랑유원지와 단원고에 다녀오고 광화문 집회에도 참석했다. 직접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각종 전시나 행사를 쫓아다녔다.




그 후 여덟 번째 봄이 되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던 약속을 난 지키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가엾이 져버린 목숨들에 대해 여전히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해결된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그날을, 그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지내고 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핀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그들을 기억한다. 살아있었으면 지금 스물여섯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을 아이들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그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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