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홈즈와 해리포터의 고장, 에든버러 이야기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이자 행정, 문화의 중심지. '북쪽의 아테네'라고도 불리며 2004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학의 도시.
인터넷에서 '에든버러'를 검색하면 위와 같은 설명이 뜬다. 그러나 내게 에든버러는, 깎아지른 절벽 위 '에든버러 성'과 함께 내 청춘의 무모함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도시이다.
에든버러는 영화 트레인스포팅(1997)의 배경이자 셜록홈즈의 아서 코난 도일을 배출한 곳이며, JK 롤링이 수급자의 신분으로 'The Elephant House'라는 카페에서 해리포터를 탄생시킨 도시이다. 여름이면 밤 10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이루며, 겨울철이면 오후 3시에 해가 자취를 감추는, 사시사철 비와 바람이 공존하는 회색빛의, 그렇지만 고색창연한 중세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매력 넘치는 도시이다. 매년 햇살이 좋은, 그래서 사람들이 웃통을 홀랑 벗고 푸르른 잔디밭에 드러눕게 만드는 8월이면 그 유명한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송승환이 기획했던 우리나라의 '난타'공연이 이 축제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에든버러는 내게 미지의 도시였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주변에서 아는 이를 본 적도 없었던 세상이었다. 내가 처음 그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였다. 대학생활에 슬슬 지쳐갈 무렵, 나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졌다. 한국인들이 많은 곳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완전히 낯선 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한 곳을 찾다 보니 영국의 스코틀랜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중 에든버러라는 고색창연한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든버러 내 어학연수 과정을 열고 있는 여러 기관들을 검색하다 마음에 드는 대학 부설 어학원을 찾은 나는 개인적으로 문의 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 대학 측은 한 호스트 가정과 나를 연결시켜주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내 크기만 한 여행가방과 함께 에든버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 비행기 스케줄을 호스트 가정에게 메일로 알려주기는 했으나 그 이후에 그들로부터 확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내 메일을 읽고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올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들의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했고, 만약 공항에 아무도 나를 마중 나오지 않으면 나 홀로 그 이국만리에서 방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그리 불확실한 상태에서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 것 같지만, 막 청춘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그때의 나는 '에라, 될 대로 되라지.'라는 심정으로 무모한 용기를 부렸더랬다.
다행히 공항에서 호스트 패밀리와 첫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온통 금발과 빨간 머리로 가득했던 에든버러 공항에서, 흑발의 소녀를 발견한 호스트 아주머니는, 머리 색 하나만으로도 한국에서 온 '나'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호스트 집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나자 아주머니는 내게 시내 드라이브를 제안했고, 나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라고 대답했다.
에든버러 시내는 '프린세스 스트리트(Princess Street)'라는 대로를 기준으로 크게 'Old Town'과 'New Town' 두 지역으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이다. 그런데 그 시간적 기준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에든버러의 구시가지는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도시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지역을 말한다. 이곳에 에든버러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처연하면서도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말들이 지나다닐 것만 같은 중세의 올록볼록한 길이 이어지는 곳에 16세기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해가 지면 각종 '호러 투어(Horror Tour)'들이 스릴을 즐기는 간 큰 관광객들-나를 포함-을 끌어 모은다. 실제로 에든버러는, 중세의 도시가 묻히다시피 한 곳 위에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 있는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해서, 건물 지하로 이어지는 곳을 내려가다 보면 음습한 기운과 냄새 속에서 몇 백 년 동안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해왔을 중세의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 중세시대 수많은 목숨들을 앗아간 '페스트', 마녀'와 ‘잊힌 죽음’들과 ‘중세의 역사’가 살아있는 화석처럼 엎드려 숨어있다. 이곳을 관광객들을 이끌고 가이드들이 활보하고 다닌다. 그것도 중세시대 옷을 입고서. 그리하여 관광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중세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가이드들이 속삭이는 말에 가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한다. 시체 도둑들(Body Snatchers), 중세도시에 출몰하는 소녀의 원혼과 단두대의 혼령이 그들을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물론 에든버러가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시내의 거리를 걷다 보면 연중 웅장하고 활기 넘치는 백파이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상쾌한 스코틀랜드의 공기로 울려 퍼지는 백파이프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감흥이란…
8월이면 축제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에든버러는 사람들의 열기와 행복의 기운으로 달뜬다. 언제고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도시가 된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마치 눈의 나라 저 너머에 숨어 있는 '크리스마스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다시 호스트 아주머니와의 첫 시내 드라이브로 돌아가서, 그 첫 드라이브에서 난 이 도시와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날, 은은한 오렌지빛의 커다란 달이 무척이나 이국적인 빛을 발했다. 그런데 그 기묘하고도 어여쁜 달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언덕 위 에든버러 성 옆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나를 처연하게 내려다보며...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불현듯 난 예감했다. 그때 그 순간을, 그곳에서의 일 년을 내 평생 결코 잊어버릴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을.
때때로 에든버러가 그리워진다. 내 청춘이 애틋하게 보고 싶어질 때, 오리지널 스카치위스키의 그 ‘맑은 목 넘김’이 생각날 때, 그리고 아름답던 백야의 순간들이 떠오를 때....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영상을 돌려본다. 'Welcome to Edinburgh'라는 영상을....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나간다. 내 청춘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열정을 되새김질하며 팍팍한 삶을 견뎌나갈 힘을 얻는다. 해서, 에든버러는 내게 평생 간직하고픈 보물 같은 ‘인생 도시’로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것이다..
p.s. 에든버러는 영어 연수가 주목적인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스코틀랜드의 억양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다. 독일어 같은 영어라고나 할까..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