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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Sep 02. 2024

새로운 소리로 더욱 견고해진 우리

인공와우 수술 

왼쪽 귀에 고주파수 잔존청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이 겨자씨만 한 가능성에 기대어, 나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소리를 들려주고자 재활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가 10개월이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오른쪽 귀는 전혀 들을 수가 없으니 한쪽 귀 먼저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수술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수술 외 선택지는 없었다. 


보청기는 작은 소리를 증폭시켜서 고막을 통해 자연스럽게 들리게 한다. 자연의 소리, 바람 소리,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 왜곡되더라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인공와우는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 수술 후 아이는 자연의 소리가 아닌, 기계가 해석한 전기 신호로 변환된 소리를 듣게 된다. 마치 자연 바람을 잃고, 그 대신에 평생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돌이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불과 80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에, 그중에서도 3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귀에 이토록 거대한 변화를 준다는 생각에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직 다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내는 느낌이었다. 한 번 일이 진행되면, 그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날 숨 막히게 했다. 귀 뒤를 절개하고, 인공와우의 전극을 달팽이관 끝에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사진 - 왼쪽 참고) 기술적으로는 복잡하지 않다고 했지만, 내 눈에 비친 아이는 수술을 받기엔 너무나 쪼끔 했다.

인공와우 - (왼쪽) 귀 안을 열어 심은 전극, (오른쪽) 아이가 귀에 걸치는 외부장치 (출처: 코클리어사 홈페이지)


수술을 앞두고 진행해야 했던 사전 검사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언덕 같았다. MRI, CT, X-ray, 혈액 검사... 이 모든 검사를 통해 귀에 기형이 없는지, 수술을 받을 체격인지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아이의 귀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었다. 너무 어려 수면제를 먹고 검사를 기다리기 위해 누워있는 아이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다행히도, 아이의 내이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의사 선생님은 예후가 좋을 거라 하셨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그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할 뿐이었다.


수술 전날, 2016년 6월. 아이가 태어난 지 11개월 만이다. 우리는 병원에 입원했다. 저녁에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 주사를 놓으려 했지만, 아이의 작은 팔에 바늘이 여러 번 10번 이상 들어갔다 나왔다. 평소에 잘 울지도 않던 아이가 그날만큼은 엉엉 울며 나의 마음을 더욱 찢어놓았다. 나는 이미 지쳐버렸지만, 그 덕분에 수술 당일에는 의외로 마음이 덜 무겁게 느껴졌다. 수술은 4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귀 뒤를 열어 전극을 삽입했고, 의사 선생님은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 언어치료사, 청각사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아이 입원실에 와서 따뜻한 말로 인사해 주시고 가셨다.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목사님과 친구들, 그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준 사람들이 아이의 병실을 가득 채웠다. 아이는 복이 많은 아이였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모여 아이를 보호해 주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수술 후 2주 동안 경과를 지켜보고 외부 장치(사진 - 오른쪽 참고)를 착용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고막을 통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와우 외부장치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가 전기신호로 뇌에 전해진다. 그러니 처음 착용 날에 소리가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인공와우로 소리를 처음 듣는 날에도 아이는 울지 않았다. 이제껏 들어보지 않았던 삐걱 대는 소리를 듣고도 울지 않다니... 울지 않으니 더 짠했다.  적응할 때까지는 로봇 소리처럼 들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연스러운 소리로 변해간다. 무채색 세상이 점차 현실의 색과 맞물린다. 그렇게 아이는 왼쪽은 보청기, 오른쪽은 인공와우로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한쪽 귀라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 


인공와우를 착용한 아이의 모습은 내게 여전히 낯설었다. 그 모습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친구를 만났는데, 생각보다 큰 와우의 모습에 내 친구마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얼굴표정이 머릿속에 오래 남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외출 할 때도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이 와우의 번쩍임을 보고 잠시 멈칫하는 그 짧은 3초도 나는 온몸으로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다가오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유심히 신경 쓰게 되었는데, 역시나 그 눈동자는 내 아이 귀에 몇 초동안 머물렀다. 어김없던 시선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이 시선들도 무감각 해졌다. 의레껏 쳐다보겠거니 했다. 그렇게 점점 익숙해졌다. 


거실 바닥에 플래시 카드를 깔아놓고 나는 입을 가린 채, "사과"라고 말했다. 그러면 아이는 사과 카드를 집어 들었다. "꽥꽥" 소리에 오리 카드를 가져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된다. 정말로 듣고, 사물과 연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우리 사과 냠냠 먹을까? 아삭아삭 맛있는 사과, 척척 잘라서 입속으로 아~ 쏙~" 사과라는 단어 하나에 나는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를 덧붙여 들려주었다. 책 역시 그 시절 아이의 듣기 능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작은 승리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그때 깨달았다.


치료실의 다른 엄마들과도 번호를 교환하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난청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나는 선배 엄마들을 알게 되었고,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전화해 묻곤 했다. 그들은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나의 고민을 자기 일처럼 친절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가 되어갔다.


이제 나는 장애라는 바다에 발을 담갔다. 처음엔 낯설고 두려웠던 그 바다가, 점차 익숙해졌다. 인공와우로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아이의 모습도 더 이상 이질적이지 않았고, 어느새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졌다. 아이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남편과 나는 앞으로의 일을 계속 이야기했다. 남편은 큰 힘이 되어주었고, 주말에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는 첫째와 남편에게 언어치료실에서 배운 것을 나누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아이의 재활에 온 힘을 다했다. 남편의 담담한 태도는 나에게 큰 기둥 같았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나를 잘 지켜주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출장을 갈 때마다 먼산을 바라보며 한숨짓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 내색 없이 나와 함께 잘 견뎌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당시의 상황은 마치 사막에서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모래 폭풍 이상으로 매서웠지만,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은 오히려 촘촘히 짜인 담요처럼 서로를 감싸 안았다. 그 담요 속의 온기는 우리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지지할 때마다 더욱 뜨겁게 피어올랐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삶이 거칠게 몰아칠수록, 가족이라는 이름은 더 단단히 엮일 수 있다는 것을.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쳐도, 우리는 그 안에서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었고, 함께한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건 예상밖의 성과였다. 그 모든 어려움이 쌓여, 우리 가족은 더 강해졌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견고한 유대를 만들어냈다. 예상치 못한 비범한 사건들이 우리 앞에 놓였지만, 그 과정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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