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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Aug 30. 2024

아이 덕분에 무너진 마음의 벽

더 이상 숨지 않기로 결심하다.

처음 몇 개월은 정말 폭풍 같았다. 아이의 청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며 재활에 매달렸다.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마음의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병원을 다니고 재활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력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의욕이 점점 사라져 갔다.


둘째의 재활과 검사, 그리고 첫째의 유치원 등하원 외에는 나는 점점 집 밖을 나가는 일을 피했다.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내 아이 귀에 걸린 보청기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첫째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둘째를 안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애기 귀에 이거 뭐예요?" 나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귀가 잘 안 들려서 보청기 착용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쯧쯧, 불쌍한 것."이라고 하시며 지나가셨다. 그 순간, 내 아이가 세상에서 불쌍한 존재로 여겨질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슴 깊숙이 쏟아져 들어오는 서러움과, 나를 짓누르는 좌절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더 깊숙이 숨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퇴근 후 건네는 '잘하고 있어. 오늘도 수고했네'라는 말, 첫째가 둘째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어제보다 더 듣기가 향상된 듯한 둘째의 작은 반응까지, 그 모든 순간이 우리 집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가족이 함께 있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세상의 시선과 동정에서 벗어나, 그 안에서만큼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더 깊이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켰다.

대학병원 대신 광진구에 있는 인공와우 전문 병원을 선택했다. 그곳의 원장님께서는 일회성 청력 검사로는 아이의 정확한 청력을 진단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대학병원에서는 보청기 재활보다 1년 후 인공와우 수술을 더 강조했지만, 이곳의 원장님은 아이의 잔존청력을 수개월에 걸쳐 확인하고, 아이의 듣기 패턴을 읽어보자고 제안하셨다. 수술 전 1년 동안의 보청기 재활이 정말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병원은 일주일에 세 번 갔는데, 한 번은 언어치료, 한 번은 음악치료, 다른 한 번은 청력 검사였다. 병원을 방문해 아이와 청력 검사실 부스에 들어가 소리 듣는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3개월을 꾸준히 검사하니, 아이는 일관된 듣기 패턴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저주파수 청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작은 가능성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했다.


병원을 오가는 길에, 둘째는 카시트에 앉으면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짠했다. ‘어쩜 너는 그렇게 잘도 자니.' 잠들지 않을 때는 운전석에서 내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방긋 웃어주었다. 엄마의 속도 모르고 웃는 둘째 덕분에, 병원으로 가는 길에 다리를 건너며, 나는 더 이상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웃음이 나에게 그 길을 건너는 힘이 되었다. 나중에는 병원이 우리 집에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조차도 감사하게 여겨졌다.

병원 오가며 쿨쿨 자는 모습

재활을 갈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부터 언어치료사 선생님, 청각사 선생님 모두가 아이를 반겨주었다. 그들의 환영과 따뜻함 속에서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도 점점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병원에서 같은 시간에 재활을 받는 다른 아이들과 엄마들 역시 같은 마음을 나누며 눈인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눈인사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특히 언어치료사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선생님께서는 "저랑 만나는 시간은 일주일에 1~2시간이에요. 어머님께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니, 제 옆에서 보시고 집에서 같이 해주세요. 아이에게 소리 듣는 일이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경험시켜 주세요."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보여주신 방법을 메모하며 집에서 부단히 노력했다. 절대 입모양을 먼저 보여주지 말 것, 어머니가 뒤에 앉아 소리를 먼저 내주고, 아이가 뒤를 돌아보게 할 것, 그것을 소리의 반응으로 간주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여줄 것. 나는 아이 뒤에서 "빵빵, 부릉부릉" 소리를 들려주고, 아이가 소리에 반응하면 뒤에서 자동차를 보여주었다. 그런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무력감은 점차 사라지고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따라 하며, 내 아이의 작은 진전 하나하나에 감사했다. 매일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반응들이 내게 점점 더 큰 힘이 되었다.


보청기를 끼자마자 울면서 빼는 아이들도 많다고 했지만, 둘째는 보청기를 끼워준 첫날부터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착용했다. 그 아이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0시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뒤에서 소리를 들려주고, 플래시 카드도 보여주었다. 첫째가 집에 오면, 딸아이도 어린 언어치료사처럼 동생에게 소리를 들려주었다.

우리집 언어치료사, 첫째

매일매일이 그렇게 이어졌고, 나는 아이가 수술을 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책을 읽어주며, 언어치료사님 흉내도 냈다. 둘째에게 "예쁜 소리 많이 듣자."라고 말하며, 소리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아이가 소리에 반응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반응하지 않았던 작은 소리에도 점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주었다. 이렇게 별거 아닌 보통의 사건들이, 어느새 나에게는 감사와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병원에서 수많은 검사와 재활을 시작하면서도,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집 안에 숨어 있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내 아이를 어떻게 볼지, 그 시선이 두려웠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차라리 집 안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다. 내가 스스로 쌓은 벽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를 세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성취들이 내 마음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었다. 처음으로 뒤에서 들려오는 '빵빵'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아이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던지. 누나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을 때, 나는 아이의 웃음 속에서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 차오르던 두려움과 불안이, 아이의 작은 성취 앞에서 조금씩 녹아내렸다.


‘이 아이는 이렇게 작은 발걸음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왜 그동안 두려움에 갇혀 있었을까? 왜 나는 아이의 성장에 맞춰 함께 걸어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가 쌓아 올린 그 두터운 벽을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아이의 작은 손짓과 맑은 웃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벽 너머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결국, 그 벽은 무너지고, 낯설고 두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라면, 그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숨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 길을 사실은 아이가 나를 이끌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그 손이 이끌어줄 새로운 날들을 기대하며, 더 이상 두려움 속에 머물지 않고 이 아이와 함께 세상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우리는 함께 새롭고도 비범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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