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장애 정체성
아이 7세 때쯤, 청각장애에 대해 알려주고, 우리 가족 모두가 '장애'라는 단어에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나는 아이와 수술 때 사진을 함께 보며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넌 정말 용감했어. 다른 친구들 응애응애 울고 있을 때, 00는 용감하게 수술받았잖아. 얼마나 대단해?!"라든지, "와우는 정말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소중해. 와우 찬 모습이 너무 로봇처럼 멋진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놀이터에서 아이 친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이는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한참 후, 아이가 내게 오더니, "엄마, 어떤 형아가 인공와우 물어봤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형이 아이에게 “너 귀에 이거 뭐야?”라고 물어봤다고 했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아이는 당당하게 답했다. "나는 청각장애인이라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인공와우라는 기기를 하고 있어. 왼쪽은 N7, 오른쪽은 칸소야. (기기의 명칭이다)" 그 말에 순간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굳이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싶으면서도, 아이가 이렇게 차분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너도 나도 이제 이 지독한 단어를 극복했구나.’ 드디어 아이와 내가 장애라는 단어를 넘어선 첫날이었다.
사실 그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유치원에서 처음 친구들이 아이의 인공와우를 보고 호기심을 가졌을 때, 아이는 얼버무리며 대답하기 어려워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네가 하고 싶은 만큼만 대답하면 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꼭 설명할 필요는 없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놀이터에서 있었던 그 형아와의 대화가 아이와 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변화였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고, 아이뿐만 아니라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청각장애 이해 교육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자 했던 작은 시작이었지만, 어느새 이 일이 나에게도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게 벌써 5년이 흘렀다. 강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아이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내일도 청각장애 이해 교육 가? 이번에는 어디로 가?” 아이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응, 내일은 00에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친구네 반에 가. 그 친구도 인공와우를 했대.” (나는 일부러 인공와우 착용한 친구들이 너 말도고 주변에 엄청 흔한 일이라는 듯 이야기한다.) 그런 대화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우리 집 대화 속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더불어 이제는 아이가 주는 듣기 관련된 피드백은 나의 강의 생활에 큰 도움까지 되고 있다.
처음엔 ‘장애’, ‘인공와우’, ‘난청’이라는 단어들이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될 줄 몰랐다. 복지카드, 장애 등등의 용어들은 한때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가슴속 깊은 곳을 무겁게 짓눌렀다. 내 입 밖으로 그 단어들이 나올 때면, 마치 나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 단어들이 남들이 아닌 우리 가족, 우리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어들이 마치 아이의 주머니 속 마이쭈처럼 익숙해졌다. 이제 그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불안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입에 담기 힘들었던 말들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오늘 뭐 먹지?" 정도의 가벼운 주제가 되었다. 청각장애라는 타이틀? 이제 우리 가족을 규정짓는 게 아니다.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마치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일처럼, 아이도, 나도 이 단어들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나는 그저 우리 집에만 머물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큰 의미가 되고 있다. 더욱더 사명감이 생기는 부분이다.
청각장애 이해 교육을 신청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난청아이가 있는 학급의 담임선생님이나 특수교사와 통화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왜 중요하냐고? 사실, 이건 그 아이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창문이자, 그 아이가 학교에서 겪는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첫 단추다. 선생님께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수업을 들을 때 어려움은 없는지, 혹은 자신의 장애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하나하나 여쭤본다. 사실,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사회생활을 지켜보시고 계시니, 어쩌면 부모보다 더 객관적으로 아이를 파악하고 계실 것이다.
그다음은 아이의 어머니와의 통화.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가정에서의 상황은 학교에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개인적인 부분이니 말이다. 어머니와 대화하면 가정에서 아이가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지, 엄마가 아이의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혹시 집에서 친구들 문제로 몰래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중요한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다. 이 두 통화를 마치고 나면 나는 자연스럽게 강의의 방향을 잡아간다. 마치 길을 잘 아는 가이드가 되는 기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어머니들마다 아이의 장애를 대하는 태도와 속도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의 장애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아이는 청각장애가 있지만, 뭐 어때요?"라는 마음으로 학교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필요한 지원을 척척 챙겨 받는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아이의 상태를 잘 알고 있으니, 자리 배치를 바꿔준다든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 선생님이 조금 더 크게 말해준다든가, 반 친구들과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는 배려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아이도 학교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게 다 잘 맞아떨어지는 그림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끔은 어머니께서 아이의 장애를 드러내기 싫어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요… 아이의 장애를 밝히지 말아 주세요." 하며 학교와의 소통을 최소화하려는 어머니도 계신다. 그럴 때는 학교 측에서조차 아이가 보청기를 끼고 있는지, 인공와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도와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아이가 더 잘 듣도록 환경을 세팅해주어야 하는 부분에서 아이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이런 차이들을 경험하면서, 난 항상 사전 통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게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아이의 학교에서의 듣기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거다. 엄마와의 대화는 그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지, 친구들과의 소통에서 더 수월한 방법은 무엇인지, 나아가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성장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만약 엄마가 장애를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면, 아이는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어머니가 장애를 숨기고 조용히 넘어가길 원한다면, 아이는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불편함을 홀로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아이는 어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엄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울이고 창문이다. 아이는 엄마의 한숨, 미소, 말 한마디에서 자신을 읽어낸다. 엄마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반응을 보고 아이는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세상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간다. 그래서 엄마가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아이의 장애 정체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나는 매일 새롭게 깨닫는다.
나 또한 처음부터 내 아이의 장애를 와락 껴안은 건 당연히 아니었다. 나에게도 시간이 정말 많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장애는 나에게 닥친 게 아니라, 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솔직히, 만약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그걸 극복할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불안을 붙잡고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분명 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니, 나는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일어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엄마의 모성 본능, 그 신기한 것이 작동했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그 마음. 그래서 나는 내 불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아이 앞에서는 강해져야 했다. 하루 종일 무너질 것처럼 흔들려도, 아침마다 다시 일어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오늘도 이겨내야지. 나는 무너질 수 없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나 자신은 절망적이지만, 00의 엄마는 위대하다.
엄마들마다 아이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그 속도도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엄마는 처음부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또 다른 엄마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첫 장애 통보를 받았던 그 병실에 마음이 갇혀 있는 어머니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왜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했냐"며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기도한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를, 엄마의 작은 한 걸음이 아이에게는 소통이라는 고속도로를 활짝 열어주는 길이 되니 말이다. 아이의 미래가 그 한 걸음으로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기에, 그 변화의 시작을 응원하고 싶다. 그래서 청각장애이해교육 강사로 일하면서, 부모교육의 중요성 또한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부모가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진정한 무게를 깨달을수록 부모교육의 필요성은 더 이상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아이가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부모들이 먼저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엄마가 장애를 바라보는 창문을 통해 자신의 장애를 바라보게 된다. 엄마인 나에게 던진 질문들은 매일같이 내 마음속을 울린다. ‘나는 내 아이의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내 아이는 나를 통해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내 안의 질문들이 생각날 때면 엄마인 나는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엄마인 나는 그 창문이 더 맑고 따뜻한 빛을 비출 수 있도록, 내 마음속 불안과 걱정을 닦고 또 닦을 수밖에... 웃어도 내 아이는 청각장애인이고, 울어도 내 아이는 청각장애인이다.. 죽었다 깨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우리는 어쩔 수없이 이불을 박차고 눈물을 닦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