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아닌 완성
결혼하고 첫째를 낳고,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게 다 갖춰진 듯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때 내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 나는 완벽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애쓰는 나는 늘 힘들었다. 어떤 성취를 이루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이뤄보려 했고, 더 많이 가지려 했지만, 그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했다.
모든 게 완벽해야만 마음이 놓이던 나에게, 둘째의 예상치 못한 '장애'라는 결핍은 마치 내가 쌓아 올린 완벽한 성을 낯선 누군가가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느낌이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왜 하필 내 아이에게?' 그 질문 속에서 몇 년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온 나는 억울했다. 일탈을 할 용기도 없었던 나는 평생 꽁꽁 싸둔 바운더리 안에서, 규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살아왔는데, 그런 나에게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이 온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듣지 않는 게 나았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에게 '장애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은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아이 3살 때, 나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기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청각장애를 가진 대학생 아드님을 키우고 계시는 집사님 한분이 선생님으로 계셨다. 그분은 나에게 유독 친절하게 다가왔다. 청각장애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만큼,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셨다. 그분의 눈에는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가 다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분의 친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내 아이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장애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다가와 위로하고 조언을 건네는 것이 마치 내가 그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집사님이 나를 향해 따뜻한 말을 건네실 때마다, 나는 오히려 더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말을 애써 외면했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잦았다. 그분의 친절한 손길은 내게 너무도 무거웠다. 내가 그 친절을 받아들이는 순간, 장애라는 현실을 마주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그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기에, 결국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왜 나일까? 왜 우리 아이일까?"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그 작은 손길과 웃음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조금씩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씨앗이 땅속 깊은 곳에서 비로소 싹을 틔우는 것처럼. 그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자, 내 안에 공허하게 남아 있던 공간들이 하나씩 채워졌다. 이 채움은 성취나 물질로 채울 수 없는, 훨씬 더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것이었다. 그건 아이의 존재 자체였다. 아이의 아주 작은 변화들—처음으로 소리에 반응했을 때,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을 때—그 티끌 같은 성장들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성장은 단지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나도 그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의 결핍을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 부족함은 우리에게 더 깊은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처음에는 원망과 혼란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더 이상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은 원망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탐구로 변해갔다. '나에게 이 상황이 주어진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나를 이끌었다. 아이의 존재는 나를 깨우고, 나를 변화시키는 씨앗이 되었다.
처음엔 그 변화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예전보다 덜 불안하고, 덜 초조하고, 덜 외롭다는 느낌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공허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 내 안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채워지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이의 장애가 오히려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걸. 처음엔 이 모든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신기했다. 내가 아이의 결핍을 통해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상치 못한 결핍이나 어려움을 맞닥뜨리면 사람은 처음엔 혼란과 공허함에 빠진다고 한다. 그때 허무함은 더 커지고,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오히려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들고,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과정을 만들어낸다.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핵심은 아마도 '수용'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아이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니, 그 결핍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내 성장을 위한 토양으로 느껴졌다. 만약 아이의 장애가 없었다면, 나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연약함을 마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연약함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그 안에서 진짜 힘을 발견하게 됐다. 결국 내가 더 강해진 건, 아이의 귀의 약함 덕분이 아니라, 그 결핍을 통해 내 안에 있던 진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그 가능성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고, 그 덕분에 나도 조금씩 자라났다.
아이가 4살쯤 되었을 때, 선배 어머님의 권유로 청각장애이해교육 강사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아직도 세상 앞에 나서기 두려웠고, 자신감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느라 늘 움츠러들던 시기였다. 그 교육이 내게는 큰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 시작했다. 하지만 강사로 일하면서 점점 더 많은 걸 보게 됐다. 난청아이들이 일반 학급에서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도 아니고, 비장애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어색하게 적응하려는 모습들. 온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결핍이 오히려 나를 자극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점차 해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맞춘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왜 이렇게 변화했을까? 어떻게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여전히 그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의 아픔은 나를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부족함이 있었기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를 통해 배운 것은, 그 나약함조차도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약함은 단순히 부족함이 아니다. 아이 덕분에 나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이 더 큰 강함으로 바뀌었음을 이제는 안다. 결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결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른 길을 보았다. 아이의 존재가, 그의 부족함이 내 안의 깊은 공허를 채우고 있었다. 성취나 물질로는 결코 메울 수 없었던 그 공간이, 아이의 작은 손짓과 미소 속에서 서서히 채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찾던 것은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것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아이는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삶은 그 결핍 덕분에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완벽함 보다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