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 아이의 클라리넷 도전기
작년까지 둘째는 청각장애 아이들 합창단인 "아이소리 앙상블"에서 노래를 불렀다. 합창단의 일원이었던 덕분에, 아이는 매주 토요일마다 난청 친구들과 노래를 불렀고,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물론 와우의 한계로 음이 정확히 들리지 않아 음치로 노래를 했지만 작년 말에도 멋지게 공연을 마쳤고, 노래를 즐기는 모습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부터 00 복지재단에서 청각장애 아이들의 합창단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아이는 합창단 활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합창단이 난청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아마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7살 때 처음 합창단에 들어갔을 때, "엄마, 와우를 착용한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라며 기뻐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와우를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신감을 얻었다. 매주 함께 연습하면서 박자를 맞추고 발성을 연습하는 과정은 아이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친구들의 소리를 듣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말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혔고, 발음 교정과 말하기 기술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소리 앙상블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아이에게 악기를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 가능할까? 처음에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악기 연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노래가 아이의 발음과 말하기에 큰 도움이 되었듯,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다양한 소리를 듣는 훈련이 되고, 청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클라리넷 앙상블을 찾게 되었다. 후원 단체에서 지원하는 이 클라리넷 앙상블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생까지, 보청기나 인공와우로 소리를 듣는 청각장애 아이들이 함께하는 연주단이었다. 작년 말, 아이에게 이 앙상블에 지원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올해 초 오디션을 보러 갔다. 오디션에 참석했을 때,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앙상블 연습은 아이소리 합창단과는 다를 거예요. 매년 11월에 열리는 연주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연습량이 많아요."라고 하셨다.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되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힘들겠지만, 한번 해보고 싶어."라고 결심을 내비쳤다.
사실 내가 아이에게 이 앙상블을 더 권유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앙상블에 있는 대학생 형, 누나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해, 지금까지 열심히 연주를 해온 그 형, 누나들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특히 그들은 모두 보청기, 인공와우를 착용한 난청 아이들이었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을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앙상블에 들어가 처음 기초반에 있을 때, 그 형, 누나들이 한 사람씩 붙어서 아이들에게 친절히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고 나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둘째도 형아들처럼 나중에 동생들을 가르치는 멋진 선배가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 앙상블은 단지 연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선후배 관계가 무척 끈끈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더 나아가 선배 어머님들도 후배 어머님들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도우며 으쌰으쌰 하는 그 분위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면, 클라리넷 앙상블은 단지 음악을 배우는 곳을 넘어 더 큰 의미가 있는 배움의 장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앙상블이 단순히 악기 연주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고 느꼈다. 단원으로서 함께할 형, 누나들과의 교류, 그 속에서 배우는 끈기와 협력, 그리고 서로 도우며 만들어가는 그 따뜻한 연주 환경은 아이의 성장에 더없이 귀한 기회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올해 초부터 둘째는 매주 금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약수역에 있는 00의 달팽이에서 클라리넷 연습을 시작했다. 매주 두 시간씩의 연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클라리넷 자체가 처음부터 쉬운 악기는 아니었으니까. 악기를 불 때마다 공기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부터 음정을 정확히 맞추는 일까지, 아이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11월 연주회에 참여할지 결정하는 시기가 왔다. 뜻밖에도 둘째가 연주회 일원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이 자랑스러웠지만, 동시에 연습이 얼마나 고되게 이어질지 예상이 되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클라리넷을 시작한 지 두세 달 만에 연주회 곡들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베토벤 메들리, 랩소디 인 블루,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그리고 싱싱싱 같은 고난도의 곡들. 아이가 처음 베토벤 악보를 받았을 때, 악보를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음계를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고, 연주법도 낯설었다. 나는 '과연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클라리넷을 불어 본 적도 없던 아이가 이 복잡한 곡들을 연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집에서도 앙상블에서 배운 것을 꾸준히 연습했고, 매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박자에 대한 재능이 눈에 띄었고, 음을 맞추는 감각도 점차 개선되었다. 가장 놀라운 건 아이가 그 힘든 연습 속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지치지 않고 매번 클라리넷을 들고 연습에 몰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될까?'라는 의구심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아이가 이 어려운 과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아이를 믿고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 되자, 8월에 아이는 1박 2일간의 클라리넷 여름 캠프를 다녀왔다. 이 캠프는 아이들의 연습량이 많아 지치는 연습 캠프였다. 그곳에서 아이는 클라리넷 연습도 하고, 수영도 하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캠프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아이가 눈을 심하게 깜빡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항상 조금씩 올라오던 틱 증상이었는데, 이번에는 특히 심해진 것 같아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연주회가 다가오면서 연습량도 늘어나고, 아이에게 부담이 많이 쌓인 게 분명했다.
아이가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스러웠다. 아직 작은 아이가 고된 연습을 이겨내며 부담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더군다나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는 쉬운 악기가 아니었다. 도레미부터 하나하나 익히고, 이제 막 복잡한 악보를 해석해 가며 연습을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압박이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 "00아, 엄마가 보니깐 처음엔 도레미도 잘 몰랐잖아.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악보도 보고 연주할 수 있게 된 게, 정말 대단한 거야. 엄마는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 연주회가 얼마 남지 않아서 많이 부담이 될 거야. 하지만 괜찮아. 잘 못해도 되고, 틀려도 상관없어. 마음을 좀 편하게 먹자, 우리."
내 말에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눈을 자꾸 깜빡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에게 계속해서 응원의 말을 전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행히도 캠프 이후 한동안 지속되던 눈 깜빡임은 2개월이 지난 지금 거의 사라졌다. 아이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가 다시 평온을 찾은 것 같아 너무도 감사했다.
돌이켜보면, 그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참으로 많은 것을 이겨내야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연습이라는 부담과 함께 다가오는 연주회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자신이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아이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아이의 마음에 큰 짐이 되었음을 느꼈고, 엄마로서 아이의 곁에서 이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요즘 아이는 연주회를 한 달 앞두고, 금요일에는 4시간, 토요일에는 5시간씩 약수역에서 클라리넷 연습을 한다. 처음엔 그 긴 연습 시간과 매일같이 반복되는 연습이 버거울 것 같았지만, 이제야 왜 매년 그렇게 높은 수준의 연주회를 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선배 어머님들께서 "아이들이 지치고 힘들겠지만, 꼭 칭찬 많이 해주시고 다독여 주세요"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시험 기간에도 열심히 연습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클라리넷 앙상블의 단단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들은 어느새 긴 연습에 적응해, 힘들어하면서도 마음을 굳건히 다잡고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둘째 역시 이번 주에도 연습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밝은 얼굴로 "재미있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엄마, 오늘은 00 부분이 어제보다 훨씬 나아졌어"라며 자신이 느낀 변화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이 작은 성취의 순간마다, 아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메타인지를 발휘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의 성장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뿐만 아니라, 연습을 계속하면서 아이의 청각적 능력에도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매일같이 바른 음정을 악기를 통해 듣게 된 덕분에, 난청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음정 인식의 어려움이 점차 해결되고 있었다. 아이는 어느새 익숙해진 음들을 흥얼거리며 노래했고, 그 음정이 정확히 맞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클라리넷을 통해 쌓아 가는 이 소리의 경험들이 아이소리 앙상블에서 시작했던 노래 실력을 더욱 완성시켜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음악을 통해 아이에게 이런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그 가능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노래, 그리고 악기 연주. 둘째는 그렇게 인공와우를 끼고 잘 들리지 않는 음을 붙잡고 노래하며, 악기로 그것을 표현해내고 있다.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클라리넷이라는 어려운 악기를 이겨낸 것처럼, 앞으로 삶에서 장애로 인해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때도, 아이는 그때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연습 속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을 이룬 지금처럼, 장애 앞에서 마주하는 그 모든 벽들을 하나씩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억하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리라 믿는다.
이제 11월에 있을 연주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긴 연습 시간에도 아이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보이지만, 아이는 매번 더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작은 성취감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매일 응원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는다. 이제 11월의 연주회는 그저 한 번의 공연이 아니라, 아이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력의 결실이 될 것이다. 클라리넷을 통해 듣고 연주하며 배운 소리들, 끊임없이 반복된 연습 속에서 다져진 인내와 자신감, 그리고 함께하는 친구들과 형, 누나들을 통해 얻은 소중한 교감들이 그 무대 위에서 모두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가 그날 무대 위에서 어떤 연주를 하든, 그것이 이미 대단한 성취라고 믿는다. 소리 하나하나를 제대로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는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내며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00아, 너는 정말 대단해. 연습하는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걸 다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너는 승리한 거야. 무대 위에서 틀리거나 실수해도 괜찮아. 네가 그동안 흘린 땀방울이 진짜로 너를 빛나게 할 거야. 엄마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끝까지 힘내서 멋진 연주 해보자."
이제 남은 건 무대에서 마음껏 즐기며 연주하는 일뿐이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그 무대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클라리넷을 통해 소통하는 그 순간을 진정으로 즐기기를 바란다. 11월의 연주회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가 인생에서 어떤 장애를 마주하더라도, 이번 경험처럼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나에게 큰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