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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Jan 08. 2021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인도 리시케시 생활 이야기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오늘은 아침 요가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러 가야 했다. 여느 때처럼 산책 길을 걸어 요가원에 도착한 후에 요가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역시나 수린다 선생님께서 철학 강의를 하셨다. 강의는 30분 이상 이어졌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우리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요가 수업을 마친 후에 여행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수련생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와 같은 길을 걸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러다간 점심을 못 먹고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가, 친구는 분명히 차 한잔 하자고 했는데'  하는 밥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숙소가 가까워지자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포장을 하기로 하고는 자주 가는 오아시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 알루 빨락 ( 감자 시금치 커리 )에 짜빠티 ( 밀전병 빵 ) 4장을 시켰다. 때가 때인지라 식당 안에는 냅킨을 접고 있는 직원뿐이었고 난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분의 시간이 흐르고 포장된 음식을 받고는 방으로 급히 올라갔다. 그리고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뜨거운 녹색의 감자 시금치 커리를 짜빠티에 싸서 빨리도 먹었다. 마음속으로는 약속을 10분만 미룰까 하기도 했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기에 그러지도 못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카페는 숙소에서 딱 6분 거리였고, 난 빠른 걸음으로 5분 만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리시케시에 오래 있었음에도 처음 가본 곳이었다. 갠지스강 지역 너머에 있는 주택가에 위치한 식당이자 게스트 하우스로 'Ira's kitchen and tearoom'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코코넛 나무 두 그루가 멋지게 잎을 펼치고 있었고 정원 중간중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건물 옆으로 죽 놓인 테이블 끝에는 여행자 가족들이 앉아 있었고 난 반대편 끝에 앉았다. 다행히 친구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메뉴를 받고는 조금 앉아 있으니 녹색깔의 귀여운 헬멧을 쓴 '미치코'가 스쿠터를 타고 정문으로 들어왔다. 털로 짠 긴 상의를 청바지 위에 받쳐 입고 연보라색의 파타고니아 재킷을 입은 그녀가 여전히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반갑게 인사를 한 그녀는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후에 끝에 앉아 있던 여행자 무리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주인 가족에게 인사를 한다. 아마 이곳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가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치코는 리시케시에서 카페 오카에리를 10년 동안 운영하고 있었고 2021년 1월 1일부터는 자유로운 여행자로 되돌아왔다. 10년 동안 리시케시에서 생활한 그녀가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가 아닐까.


리시케시에 온 지 10일째가 되는 나는 왠지 모르게 더 소극적인 여행자가 되었다. 원래 활달하고 웃는 얼굴로 다니는 여행자가 아니었지만 여행자가 드물기도 하고 아직은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더 그렇기도 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는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프마'라는 남인도 음식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점심을 허겁지겁 먹지 않았을 텐데 하며 프렌치 프레스 커피와 혼자 먹을 미치코가 부담스럽지 않게 과일 샐러드를 시켰다.


그녀는 얼마 전 내가 보러 갔던 카페인 오카에리에서 10년을 보냈다. 그곳에서 일본 정식과 인도 정식 그리고 일요일에는 스시가 아닌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건강한 비건 김밥을 여행자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항상 느릿느릿 그러나 경쾌하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그녀를 참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재작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음식과 커피가 나왔고 미치코는 환호성을 지르며 나에게도 한 숟가락을 권하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카페 오카에리를 그만둔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1년 전부터 이젠 그만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인도를 좋아하고 인도를 깊이 느끼는 여행자들이 카페 오카에리를 찾아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자들의 성향이 변했다고 느꼈단다. 리시케시가 요가의 마을이기 때문에 요가를 배우는 여행자들이 많이 머무는데 요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요가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너무 대단한 여행자들이 많이 왔다고 느꼈고 함께 정을 나누는 사이가 아닌 주인과 손님의 사이로 변하는 것에 적응이 안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테이블 끝에는 여행자 가족들이 옹기종기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코코넛 나무가 찬란한 정원에서는 두세 명의 꼬마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들은 코로나로 인해 인도가 락다운을 선언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도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 가족들이라고 한다. 여전히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없으며 아이들이 인도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시설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위험 국가인 인도에서 자녀들과 함께 아직도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며 웃었다. 코로나 시대에 인도로 들어온 너도 있지 않냐면서. 이렇게 인도를 좋아하는 여행자들로 가득했던 예전이 그립다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내게 미치코는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기회가 되면 리시케시 위에 있는 히말라야 산속에서 친구가 오픈 예정이라는 에코 빌리지에서 건강 음식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천천히 쉬면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풍족하게 벌지는 못할지라도 삶의 균형을 맞추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눈을 반짝이며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 말을 내 마음에 새겼다. 이렇게 주위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힘이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했다.


난 가끔이 아니라 항상 계획을 대충 세우고는 움직인다. 이번에도 그렇게 인도로 들어왔다. 인도에서 무언가를 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계획 아닌 계획으로 들어왔지만, 요즘은 자주 서울에서 요가를 하며 빵을 만들던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꿈꾸었던 인도 생활은 예상처럼 쉽지 않지만, 한동안 생각 없이 살아봐야겠다. 왜냐하면 그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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