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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Mar 25. 2021

순수한 파리지앵 마엘

인도 리시케시 생활 이야기

나는 선천적으로(?) 얼굴에 웃음기가 없는 사람이다. 얼굴은 표정이 없는 편이며 특별히 웃긴 일이 아니면 웃지도 않을뿐더러 입꼬리는 아래로 약간 내려가 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이 피곤해 보이네요''라는 듣기 싫은 말을 자주 들으며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아는 사람들에게나 말을 먼저 거는 법이 거의 없다.


물론 친해진 이후에는 말이 너무 많아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몇몇이 함께 시간을 갖는 모임은 대체로 피하는 편이고, 무리에 속하지 못할 때에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도망을 가기도 한다. 나에게 특출 난 매력이 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군중 속에서 홀로 고독을 씹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나의 성향은 리시케시의 아엥가 요가 수업에서도 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첫 수업의 어색함을 뚫고 매트를 들고 벽 쪽의 안전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로 옆자리에는 짧은 아엥가 요가 팬츠를 입은 서양 친구가 자리를 잡았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서양 친구 옆에서 요가를 하게 되었다.


사원 벽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


그 서양 친구는 아직 아엥가 요가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선생님께 매일 혼이 났지만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아마 요가 수업에 꽤 오래 참가한 것인지 어느 날은 선생님에게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잘생긴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혼자 조용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마치고 점퍼를 걸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옆에 앉아 노트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노트를 몰래 들여다보니 역시 활짝 웃는다.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작년 10월에 아엥가 요가 학생 비자를 받고 인도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말에 신이 나서 사실 나는 12월 말에 인도로 들어왔다고 주절주절 말을 하게 되었고, 서로 이름을 물으면서 조금씩 말을 나누게 되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거의 옆자리에서 요가를 하였고, 가끔 그가 머리통을 맞을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리시케시

이후 한 달 동안 내가 남인도를 다녀오고 다시 아엥가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그냥 안부 인사만 나누게 되었고,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요가원의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요가 수업은 보통 저녁에만 있고,  아침 시간에는 '셀프 프랙티스'라고 해서 전날 배운 수업을 혼자 수련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요가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셀프 프랙티스는 보통 방에서 하고 있었는데, 어제 처음으로 요가원에서  셀프 프랙티스를 하게 되었다. 한켠에서 요가 수련을 하고 있던 그가 아침 시간에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나마스테'  포즈를 취하며 인사를 하고는 언제 시간   인도 홍차인 짜이를   하러 가자고 했다.  말은 전에도 농담으로   하던 것이었는데  이유가 케랄라에서   친구와 함께 요가 코스에 참여하면서 무표정했던 내가 갑자기 활짝 웃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아엥가 요가 센터


오늘 저녁 요가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와 함께 나가게 되어 드디어 짜이를 한잔하기로 했다. 요가원 근처의 로컬 짜이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마주 보고 앉았다. 사실 나는 그의 이름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도 내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름을 다시 물어보았는데 그의 이름은 마엘이었다. 멋스럽지만 수수한 옷차림새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프랑스 남부 어딘가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짜이를 받아 들고는 요가에 대한 이야기와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음이 많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타입의 그가 오늘은 꽤 진지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갔다. 아엥가 요가를 몇 년 동안 더 배워서 나중에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코로나 때문에 다시 락다운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끔 선생님께 머리를 맞으며 매일 '프렌치'라고 불리며 혼이 나는데 가끔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남들이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는 마음이 있지만 오히려 자기의 '에고'를 없앨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에고라고? 넌 에고가 없어 보여'라고 웃으면서 말하니 '모든 사람들에게 에고가 있고 나도 물론 있어'라며 크게 웃으며 대꾸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러워. 선생님이 너에게 매일 관심을 가지고 자세를 교정시켜주고 있잖아. 선생님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데. 넌 행운아야"


 라고 말하니 그는 잘생긴 얼굴로 눈웃음까지 치며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웃는다. 거의 오 개월 동안 리시케시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는 마엘은 방안에 있는 작은 부엌에서 많은 것들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팬으로 구운 프랑스 빵은 물론 인도 커리와 중동 음식인 후무스까지 만든다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터라 인도 향신료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매일 선생님께 머리까지 맞으며 혼이 나는 '프렌치'는 수업 시간이 끝나고는 당차고 멋진 프랑스의 파리지앵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짜이 한잔으로 나와 그가 친해진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의 이름이 마엘이라는 것과 다음번에도 짜이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는 되었다는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나에게 조금의 위안을 준다.


친구가 거의 없는 나에게 짜이 한잔을 대접해준 프랑스 파리지앵 마엘이 요가 수련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밤의 이야기를 마친다. 내일 요가 수업을 위해 이제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만 않지만 (물론 기대하지도 않지만) 이런 사사로운 일상이 즐거움을 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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