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go Mar 19. 2018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잖아

인도에서의 보내는 매해 겨울

올해로 두 번째의 겨울을 인도의 시골마을인 보드가야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지냈다. 인도 동북부에 위치한 보드가야는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겨울이면 늘 순례자,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오래된 인도 친구의 식당 한편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켜고, 예쁘지는 않지만 곧잘 팔리는 빵과 케이크를 구우며 네 달을 지낸다.


스무 명 남짓의 인도 소년들과 함께 식당 안팎에서 또는 커피 머신 앞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나를 보면 보통의 여행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람의 감탄사를 내지른다. 까만 얼굴에 까만 눈동자 그리고 스카프로 목을 언제나 감싸고 있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본다. 사실 이곳엔 불심이 깊은 티베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고 내가 일하는 식당도 티베트 음식점이기도 하기에 의례 티베트 사람이겠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으련만 그들은 한눈에 내가 그들과 같은 여행자라는 것을 알아본다.


"인도에서 일을 하다니!"

"게다가 이런 시골에서"

"그것도 이렇게나 많은 인도 사람들하고"

"대단하다. 즐거워? 안 힘들어? 신기하다"

"어떻게 일하게 된 거야?"

 

등등의 많은 질문을 하고는 내가 커피를 가져다주면 '인도 시골에서 마시는 카푸치노라니' 하는 얼굴로 뜸을 들여 커피 맛을 본다. 그리곤 "와, 인도에서 맛본 최고의 커피야!"라고 찬사를 또 퍼붓는다. (여행자들의 낭만 어린 찬사일 뿐, 물론 인도 최고의 커피맛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표정 없는 평소의 얼굴을 펴고 접대용 눈웃음을 활짝 지으며 급히 그리고 짧게 설명을 한다.

"응, 오래된 친구들이고 그냥 이곳 보드가야가 좋아서 일을 시작한 거야. 커피는 중미에서 배웠어." 등 간단명료한 답만 하고 어색한 공기를 피해 괜히 바쁜 척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15년 전 난 화덕에서 빛을 발하는 이 불빛에 반해서 이들과 친구가 되었고,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뜬구름 같은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으로 인솔을 오는 틈틈이 그들과 차곡차곡 우정을 쌓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좀 오래 쉴 때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며 카운터도 봐주고, 참 초보자스러운 갈색 빵을 대강 만들어 굽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여행자들의 요청으로 이 친구들도 에스프레소 커피를 팔고 싶다고 했고, 마침 내가 호주에서 바라스타 일을 몇 개월 정도 하고 온 이후라 '그럼 해볼까?'하고 거의 준비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해에는 유난히 인솔을 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이태원의 작은 빵집에서 열리는 케이크 클래스에 몇 번 가서 배운 후에 겨울이 시작되기 전인 10월에 들어와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카페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원래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나의 버릇대로 그냥 들어가서 일을 하려니 쉽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아이러니하게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인도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나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보드가야에서는 커피에 관련된 어느 물품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커피빈은 물론이고 커피 잔, 설탕, 종이컵 등 모든 재료는 기차로 16시간이나 떨어진 델리에서 구입하여 일하는 소년이 물건을 실어와야 했다.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 시작한 장사였다. 그런데 막상 함께 일을 하려 하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커피머신을 첫 오픈하고 잠시 나갔다 왔는데 커피 머신을 누군가가 작동시킨 흔적이 남아 있었다. 커피 가루가 그라인더 아래 흩어져 있었고, 커피 머신을 작동시킨 것 마냥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 친구는 직원들에게 누구도 머신을 건들면 안 된다고 단단히 말하였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나 혼자 커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고, 나 스스로도 쉬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다고 에스프레소를 마셔 보지도 못한 소년들에게 커피 머신을 맡기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으려니 나 자신도 긴장감에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하는데 도대체 누구에게 커피를 부탁하겠는가. 행여 인도의 시골에서 기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소년들과 떨어져 고집을 피우며 혼자 일을 하니 노트에 쌓여만 가는 커피 주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오래도록 꿈꿔왔던  보드가야의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고, 커피 머신에서 떨어져 일하는 소년들과도 어색한 사이가 되어만 갔다. 그런 나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과묵한 내 친구는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커피 머신에 능숙한, 인도 북쪽 마을에서 카페를 하는 사촌 동생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래서 그 소년은 내가 힘에 겨워할 때 나타나 내 대신 커피를 뽑기 시작했고, 신나게 나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그를 보며 다른 소년에게도 일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해 겨우 찾은 내 시그니처 메뉴인 브라우니와 비건 당근 케이크도 만들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인도'라는 나라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들이 일하던 습관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족 제도에서 항상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인도에서는 혼자 잘하는 것보다 같이 잘 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내게 절실히 깨닫게 하였다. 인도에서 인솔자로 오래 일을 했고, 여행도 많이 했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내가 인도인의 습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친구는 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주었고, 난 그 손길에서 인도의 생활에 아주 천천히 적응하게 되었다.


역시 한 나라를 훑어보는 '여행'과 직접 살며 부딪치는 '삶'은 다른 것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천천히 적응 중이었던 관계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식당의 주인인 내 친구는 매 순간 부딪칠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소심한 나는 미안한 마음에 매일 사과하기를 반복했다.  안 그래도 대가족의 가장이자, 식당의 식구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내 친구는 신경 쓸 일이 아주 많았는데, 베스트 프렌드라고 칭하던 나까지 그에겐 하나의 짐이 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며 감정이 격해져 소리를 치고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나보고 주방으로 들어오지 말고, 내 자리인 커피 머신 앞에서 얌전히 지내라고 했다. '역시 친구와 함께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 즈음 우린 정신없이 바빠져 말을 할 시간조차 없게 되면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일을 시작했던 첫 해에 보드가야에서 큰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밀려드는 손님들로 테이블은 꽉꽉 채워졌다. 늦은 시간에 우리들은 아침을 겨우 먹고 늦은 밤이 되어야 식당 문을 닫고서 두 번째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서로 부딪힐 시간이 없었다. 큰 접시에 음식을 덜어 손가락을 오므며 입으로 가져가며 빠르게 밥을 먹으면서도 주문이 들어올까 봐 바짝 긴장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바쁜 시기를 보내며 일을 하다 보니 서로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며 아낌없는 도움을 주게 되었고, 기나긴 시간은 자연스레 흘러갔다.


야자수 나무의 큰 가지가 떨어져 한바탕 소동이 났다.

보통 사람들은 말한다.

"친구와 같이 사업을 하면 안 돼. 그리고 함께 여행도 가면 안되지. 결과는 안 봐도 뻔하거든"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와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나마 친구라서 함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지. 만일 혼자 시작했다면, 아니면 그냥 사업 파트너랑 일을 했다면 금세 포기했을 것이라고.


인도의 참을 수 없는 더위라는 혹서기 (4월-8월)가 시작되면 보드가야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 시기에  인도 친구는 가족가 함께 인도의 기나긴 여름을 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각자 생활을 하며 가끔 소식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하는 말은 이렇다.


"한 해가 지나갈수록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점점 같이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구나"  그리고  멀리서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인도의 시골, 보드가야에서 보내는 매해 겨울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일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힘든 시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우리가 사는 이 시간들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마음속으로 퍼지며 앞으로 올 다음 겨울을 기다린다. 스무 명의 소년과 왁자지껄 일을 하며 아주 즐겁고도 또 쉽지 않을 그 긴 시간들을 말이다.


함께 먹는 직원식, 그리고 함께 일하는 친구들



이전 09화 인도에서 커피 장사를 시작하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