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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Jan 16. 2019

별거 아닌 고작 신발이야기

인도 보드가야 카페 라이프

항상 그렇듯이 숙소에서 나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 채로, 맨발로 용감 무쌍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나 식당으로 빠르게 길을 재촉한다. 인도의 겨울은 생각보다 싸늘한데, 그 이유는 1년의 10개월은 날씨가 많이 덥고 고작 2개월만 춥기 때문에 집의 구조가 대부분 바람이 통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늘에 지어져 있어서이다. 낮에는 20도 정도 유지되고 밤에는 10도 정도로,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겨울 날씨지만 상상하는 것보다 너무 추운 날씨에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든 1월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헝클어진 머리를 마음껏 헝클어 뜨리고 아침부터 밖에서 쭈그리고 앉아 이를 닦고 세수를 하자마자 (물론 이마저도 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뛰어논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말이다. (여기서 신발이라 함은 보통 말로 우리가 '쪼리'라고 부르는 슬리퍼를 말한다.) 이제는 맨발로 다니는 그들이 너무도 익숙해서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인도 홀리 페스티발의 보드가야 모습

여느 때처럼 식당 마당의 흙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개들과 오리들을 깨워 빵과 과자를 먹이고 있는데 동네 아이 몇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흥미로운 얼굴로 우리(나와 개들)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화려한 신발을 신고 있는 여자애 둘과 남자애 한 명이었는데 남자애는 맨발이었다. 그래서 또 그냥 그런가 보다 하였다. 그렇게 며칠째 그들과 얼굴을 익히며 함께 과자를 먹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들과 과자를 함께 먹고있을 때 그 중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 남자애가 나에게 신발을 사달라고 했다. 힌디어로 슬리퍼를'짜뽈'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짜뽈'이 갖고 싶다고 했다. 발가락 사이가 유난히 벌어진 아이의 흙먼지가 가득 묻은 발은 건조했고, 드문드문 하얗게 올라온 굳은 살이 보였다.나는 손을 펼쳐서 그 아이의 발을 쟀다. 딱 한뼘 크기였다. 그리고 커피 주문이 들어왔다며 소리치는 식당 소년의 부름에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고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하루를 보내 버렸다.

요즘 한창 만들고 있는 치즈 케이크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우루루 마당으로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신발을 사주겠다고 한 것이 기억나서'나중에 사줄게, 조금 기다려'라고 말을 하고 커피를 만들러 들어갔는데 나중에 나가보니 식당 문 밖에서 신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손사래를 치며 지금 말고 나중에 가져 올테니 조금 기다리라고 했고, 주변에 같이 있던 신발을 신고 있는 여자애가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날 나는 점심 장사를 마치자마자 시장으로 가서 슬리퍼를 사러 갔다. 손으로 한 뼘 남짓한 그 아이의 슬리퍼를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신발 가게 주인에게 크기가 맞지 않으면 바꾸러 오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다시 받은 후에 개구리가 그려져 있는 주황색 슬리퍼를 사 왔다. 빨간 작은 상자에 든 어여쁜 슬리퍼를 아이에게 줄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저녁에 식당으로 가서 그 아이를 기다렸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커피 장사를 마치고는 식당 마당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갑자기 아이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을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새로 산 슬리퍼를 건네 주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한무리의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난 바로 아이를 구별해냈다.

"짜뽈 사 왔어. 어서 와서 신어봐"

아이는 한없이 해맑은 얼굴로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왔고, 다행히 짜뽈은 아이의 발보다 조금 넉넉한 사이즈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를 멀리서 보고 있던 같이 일하는 식당 소년은 아마도 그 아이는 내가 사준 신발을 신다가 아주 싼 가격으로 팔아 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신발을 구걸하고 팔아 버리는 아이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이후로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아이를 만나면 내가 사 준 짜뽈을 신고 있는지 아닌지 꼭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아이들이 식당 마당으로 다시 들어왔고 난 여전히 맨발로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 싸늘한 말투로 내가 사준'짜뽈'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아이는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난 그럴 거면 나에게 돌려 달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넌 내가 사준 신발을 팔았구나'하고 생각했고, 이토록 작은 아이에게 속은 내가 너무 한심했다. 며칠 동안 나는 아이에게 신발이 어딨냐고 물었고 아이와 다른 동네 소년들은 신발은 집에 있다고 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신으라고 사준 신발을 대체 왜 집에 놔둔다는 것인가!. 다시는 신발을 사주지 말아야지. 난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굿 모후삼 공연의 모습

그러던 어느 날이라고 해봤자 엊그제 이야기이다. 인도의 보드가야에는 겨울마다 굿 모후삼(좋은 날씨, 좋은 계절이라는 영어와 힌디어의 조합) 이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 기간 동안은 커다란 광장에서 공연도 하고 각종 특산품과 음식을 판다. 딱히 놀 거리가 없는 보드가야에서는 그야말로 굉장한 날들로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재미있는 축제이다. 이 기간 동안에 동네 아이들 한무리를 맞닥 드렸는데 글쎄 그 아이가 내게 달려오더니 주황색 짜뽈을 신고 있는 발을 손으로 가리켰다. 조물조물 한 발가락들이 벌써 지저분해진 주항색 쪼리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아이의 큰 눈은 빛을 발하며 반짝거렸다. 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버훗 아차( 베리 굳이라는 뜻의 힌디어)'를 몇 번씩 외치니 그 아이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별것 아닌 신발로 마음을 졸였다니 그저 헛웃음이 나오는 웃지 못할 아주 유치한 신발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축제 기간에 신으려고 집안에 고이 모셔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매해 설날이나 추석 때 새 옷이나 새 신발을 받으면 고이 방안에 모셔 두고 다음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며 잠들었던 나의 어린 기억들이 생각났다.


이후로 아이는 길에서 나를 볼 때마다 신발을 가리킨다. 주황색'짜뽈'은 항상 그 아이의 벌어진 발가락 아래 살포시 놓여 있었다.


아이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딱 한장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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