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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Sep 25. 2017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

남인도 케랄라 주의 코친에서 머물다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있는 곳 -남인도 케랄라주의 코친


내가 남인도의 코친에 들어온지도 벌써 2주가 넘어갔다. 원래는 오일정도 머물 예정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온 이곳에서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생각을 미뤄두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돌아오는 올 겨울에 '요가와 해변에서의 휴식'이라는 아주 근사한 테마를 가지고 내가 만든 남인도 여행팀 답사를 하기 위해 무작정 들어온 이곳 코친. 한 시간 반을 공항버스를 타고 거리를 탐색하며 코친 시내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코친을 그냥 한 바퀴 둘러볼 예정이었다. 중국식 어망 뒤로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아 온 어부들이 흥정을 시작하고, 물고기를 사들여 치지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리를 시작하는 분주한 거리의 식당들. 향신료 무역의 중개지로서 여러 나라와의 오래된 교류로 유럽 문화가 뒤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 마을이 아직도 존재하고 그 뒤로 향신료 시장이 죽 이어져 있는 특색 있는 거리. 그리고 곳곳에 있는  갤러리 카페.


아랫층엔 갤러리가 윗층엔 카페가
남인도 정식 '밀즈'

'음 이거면 되겠지' 하고 떠나려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맛있는 커피, 멋있는 아트 카페


워낙 길눈이 어두운 나는 거리를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에 작은 마을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러면서 곳곳에 들어선 아름다운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씩 하였다. 그런데 그 커피가 맛이 기가 막혔다. 나도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의 커피향은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커피보다 훨씬 진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남인도에서 나오는 신선한 원두를 커다란 분쇄기로 직접 갈아 모카 포트로 끓이거나 프렌치프레스를 이용하여 내리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맛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잔잔한 평화로움이 마음에 차오름을 느꼈고, 평소엔 커피숍에 앉아 있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던 내가 하루에 몇 시간씩 카페에 앉아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쓰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며칠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아날로그식 커피 그라인더가 있는 카페
코친의 명소인 카시 아트 카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체험


'코친'이라는 작은 도시에 마음이 가기 시작한 순간은 내가 머물고 있는 홈스테이 가족들과 고아원을 방문했던 그 날부터였던 것 같다. 별다른 일 없이 그저 마을 산책과 카페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홈스테이 문을 연지 1년이 되는 날이라며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고아원에 머물고 있는 100여 명의 소년들에게 식사를 주기로 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함께 묵고 있던 여행자 3명과 나 그리고 주인 커플과 함께 작은 차에 끼어 타고 고아원으로 가서 신부님과 수녀님들과 한동안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소년들이 들어오기 직전에 바나나 잎을 먼저 식탁에 깔고 카레와 밥이 든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는 세 가지의 카레와 오동통한 남인도 쌀밥 그리고 디저트로 바나나 칩과 생강 과자를 놓았다. 왁자지껄 소리가 나더니 먼저 40여 명의 소년들이 들어와 앉았고, 식탁에 놓인 특별 음식과 처음 보는 외국인 무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모두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 같이 한 공간에서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자연의 그릇인 바나나 잎에서는 신선한 잎사귀의 향이 났고, 그 위에 올려진 특별식은 40여 명의 소년들 뿐만 아니라 잠시 도우며 음식을 날랐던 나에게도 특별한 맛이었다. 그리고 '코친'이라는 도시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나나 잎에 차려진 근사한 점심
함께 한 여행자들과 평상복의 신부님
비가 몰아치던 날의 요가

거리와 식당, 카페 그리고 유대인 마을과 향신료 시장을 어느 정도 익혔으니 이젠 좋은 요가원을 찾아야 할 때였다. 마침 함께 묵고 있던 홈스테이의 주인들이 요가 선생님이었기에 그들에게 추천받은 동네 끝쪽에 위치한 한 가정집을 찾아갔다. 가정집의 위층에 요가원을 만들고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였다. 내가 찾아간 그날은 하필 폭우가 몰아칠 때였고, 나뭇잎을 길게 엮어 지붕을 만든 그곳은 축축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요가원 안에는 모기가 많았고 전기까지 나가 어두웠다. 안쪽 한 구석에 깡마른 사람이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도 미동도 하지 않던 그는 명상을 마친 후 나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의 요가는 인도의 수행자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그것이었다. 누워서 오랜 휴식을 한 후에 호흡을 하고 다시 휴식을 취한 후에 몇 가지 동작을 함께 했다. 그의 말대로 완전한 휴식 후에 하는 요가 동작은 신기하게도 내 몸을 유연하게 해주었고, 어려운 동작도 금세 따라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깡마른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와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비가 휘몰아치던 그날 요가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요가 선생님은 밥을 먹으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난 요가 때문에 또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후 여러 요가 센터를 체험하며 몇 곳을 돌아다니며 요가를 했고 각기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웠다.


명상을 하고 있는 요가 선생님
요가 후에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어느 날부터 챙겨주는 아침 식사

그냥 생각 없이 물었다. 숙소를 혼자 돌보고 있던 주인에게 " 밥은 먹었니"라고. 그것은 혼자 숙소를 지키고 있던 친절한 그에 대한 작은 배려였고, 흔한 안부인사였다. 그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엄마가 챙겨주는 것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일 집에서 아침 가져다 줄까?"라고 툭 던지듯 물었고, 난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 그냥 "정말?" 하며 웃기만 했다.


다음날 부엌을 써볼까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항상 쓸고 닦는 걸 즐기는지 주인은 여전히 청소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 올 겨울 시즌을 맞이하기 위해 두 명의 페인트공들이 하얀색으로  페인트 칠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내려오는 나를 보더니,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밥 먹어"라고 말했다.

"오늘은 어제 말한 것처럼 '아빰'이야"

'아빰'. 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찌어 만든 일종의 팬 케이크인 아빰은 야채 코르마 (크리미 한 카레의 한 종류)와 함께 먹는 케랄라 지역의 아침식사이다. 남인도는 쌀 생산지이어서 쌀이 주식인데 특이한 점은 쌀가루를 발효시켜서 팬케이크를 만들고 떡을 만들고 얇게 국수를 만들고 그리고 부침개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빰과 야채 코르마 커리

일층 거실에 있는 식탁에 음식이 차려졌고, 난 베트남에서 사 온 '핀'으로 커피를 내렸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그날도 커피를 진하게 내려 그에게도 한잔 주었다. 조금 수즙음을 타는 성격의 나는 아래층에 있는 주방을 쓸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이날부터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게 되었다. 다음날엔 내 진한 커피를 거부하던 그도 그다음 날부터 조금씩 조금씩 더 친해지자, 약하게 커피를 내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며칠 동안 그가 갖다 준 그의 엄마의 집밥을 맛 본 나는 점점 이 곳이 편해져서 떠날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가정집에서 배우는 남인도 쿠킹 클래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창박으로 코코넛 나무를 감상하고, 늦은 아침을 먹고 쉬다가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고 오후에 요가를 하는 편안한 시간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급하기도 하였다.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불안과 걱정 그리고 조금은 무료하기도 한 시간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남인도 음식을 배우고 싶다는 오래된 소망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래층으로 총총총 내려가 주인에게 물어보니, 가까운 곳의 가정집에서 쿠킹 클래스가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하든 느리고 주저하는 기색이 많은 내가 바로 그 가정집을 찾아갔다. 미소가 깊은 인도 여인은 십 년째 쿠킹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고 그녀의 친절한 미소에 반한 나는 한번 정도 들어보고 결정할까 했던 나를 바로 그 자리에서 네 번의 클래스를 예약하게 하였다. '한번 들었는데 안 좋으면 어떡하나'에 대한 작은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왠지 그곳이 좋을 것 같았고 그냥 그 예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이 남아 동네 주위를 몇 번 배회하고는 쿠킹클래스를 받을 가정집의 부엌으로 들어가니 이미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요리에 필요한 향신료와 양파 그리고 코코넛이 썰어서 준비가 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전날처럼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오늘의 요리는 '뿌뚜'. 역시 쌀가루를 채를 썬 코코넛과 함께 쪄서 떡처럼 만들고, 그와 함께 칙피스(병아리콩) 카레를 곁들여 먹는 남인도 아침식사이다. 그녀는 내게 그녀만의 '가람 마쌀라'(7가지 이상의 향신료를 섞은 것)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이 가람 마쌀라는 어느 음식에 넣어도 맛을 내주는 그런 매직 향신료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 외 여러 재료를 섞어서 믹서기로 갈고, 병아리콩을 넣어 걸쭉한 카레를 만들었다.


매직 향신료를 넣어 만든 칙피스 커리
남인도 아침식사 뿌뚜

코코넛이 올려진 보슬보슬한 뿌뚜를 손으로 떼어내어 따뜻한 칙피스 카레와 함께 먹었다. 오래전에 남인도에 처음 왔을 때 '뿌뚜'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그 귀여운 이름에 난 이미 뿌뚜에 반해버렸었는데 직접 내가 만들었다는 감격에 얼굴이 절로 환해졌다.

일본 친구에게서 주문이 들어왔다.


치앙마이에서 외로이 홀로 생활을 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밥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권했던 일본 친구 '아이'에게 받은 물건이 있었는데, 그녀가 작년에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가져서 당분간은 못 만날 것 같았다. 그래서 인도에서 원하는 게 있으면 보내주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친구들까지 모아서 물건을 주문했다. 그녀들이 원하는 인도의 향신료, 예쁜 인도의 옷감으로 만들어진 작은 가방, 수건, 옷가지 등등의 물건을 사러 다니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마을 곳곳의 작은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향신료 가게에서 싸고 질 좋은 향신료를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었다. 친자연적인 제품을 사랑하는, 산속에서 옹기종기 살며 장사를 하고 있는 그들의 주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그래서 더 머물러야 하는 다른 이유가 생겼다.



아, 이제 떠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뒤로 젖혀 두기로 했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마시고, 남인도 가정식 요리를 배우고, 카페에 가서 글을 쓰며 커피를 한잔 하고, 오후에 요가를 하는 생활을 조금 더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떠나기로 마음을 놔 두기로 하였다.


코친에서 조금 머물며 생활을 하니 동네에도 아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홈스테이 위층에 카페를 만들어 장사를 하고 있는 일본 친구 쿠르미와는 매일 요가를 함께 하는 친구가 되었고, 숙소 옥상에서 요가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과 숙소 주인 커플과는 상냥한 미소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친구가 되었다.


여기 와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

한없이 아름답고 즐거워 보이는 생활의 이면에는 어느 정도의 어려움과 슬픔이 있고 또 거기에 따르는 웃음이 있다는 것을.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있는 코친에서 소심한 여행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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