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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Nov 23. 2015

모하메드의 부엌

인도, 보드가야의  모하메드 레스토랑

인도의 동북쪽 비하르주에 위치한 보드가야는 수많은 수행자들이, 부처가 그랬듯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모여드는 곳이지만 내게는 친구들이 살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모하메드와 그리고 그가 13살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꾸리고 있는 티벳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스무 명 남짓의 소년들이다.


식당 안의 부엌은 밖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만이 세계이다. 모닥불과 석탄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항상 유쾌한 웃음이 흘러 다니는 그들만의 부엌이다.




곧 다음달에 나는 여행 팀을 이끌고 다시 보드가야로 갔다. 이젠 더 이상 보드가야는 그냥 거쳐가는 곳이 아닌 특별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 되었다. 지저분하고 거친 보드가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친구들을 만날 것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새벽녘에 아주 허름한 기차역에 도착하여 모기떼가 가득한 웨이팅 룸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것마저 즐거웠다. 동이 트기 바로 전 팀을 이끌고 보드가야로 털털거리는 템포를 타고 친구 모하메드가 운영하는 숙소로 들어갔다. 바로 짐을 풀고는 나는 그가 하고 있는 천막 식당인 모하메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커다랗게 인사를 했다.


반갑게 맞이하는 모하메드와 함께 식당 안쪽에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전에 한번 들어간 적이 있는 그곳은 전체 식당 크기의 삼분의 일은 차지할 만큼 커다란 공간이었다. 나무와 석탄을 이용하여 요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따뜻했다. 그가 마련해주는 긴 나무판자 의자에 앉아 안을  살펴보았다. 아주 작은 사내가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수줍은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후 나는 식당에 들어가면 항상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파란색의 기다란 나무판자 의자는 주로 내가 앉아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들이 음식을 만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이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야채를 썰고 있는 모하메드

키가 훤칠한 어느 노인이 인도 룽기 (남자들이 둘러 입는 천)를 입고는 야채를 머리에 이고 들어왔다. 그리고 털썩 야채를 부엌 바닥에 쏟아 놓는다. 그는 이미 70세가 넘은 모하메드의 아버지로, 근방에서 야채를 아주 싸게 들여와 매일 아침 야채를 아들을 위해 배달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두손을 합장하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 이후로도 몇 번을 보드가야에 팀을 이끌고 왔고, 그때마다 부엌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드디어 스스로에게 긴 휴가를 주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고, 바로 그해 겨울 보드가야로 다시 들어왔다.



바쁜 부엌의 모습


2005년 그 해 겨울, 나는 드디어 그들과 함께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만큼 하루 종일 부엌에서 머물며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 되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같이 웃고 떠들며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치웠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하메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소년들 대부분이 영어를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그들은 머리 속에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외우고 있었고, 음식이 나가자마자 주문지를 버렸다. 그래서 도대체 주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온 음식을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를 나는 도통 모르겠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손님이 서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해서 계산대에 사람들의 줄이 늘 길었고, 또한 몇 가지를 빼먹고 계산할 때도 있었다.


대부분 수행을 하거나 티칭을 받으려고 오는 여행자들이어서 항상 같은 시간에 우루루 몰려들었고 음식을 먹고는 같은 시간대에 나갔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식으로 식사시간이 반복되었고, 모하메드를 비롯해 소년들은 쌓여만 가는 주문지를 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대신하여 카운터를 지키게 되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메뉴와 주문지를 함께 주는데 나는 테이블 번호를 주문지에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엔 주문이 어디서 들어온 것이며, 음식은 어디로 날라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년들에게 주문을 받을 때 모두 테이블 번호를 써달라고 했다. 음식이 나가면 나는 주문지를 다시 받아서 미리 계산을 하여 써두었고, 손님이 나갈 때 바로 음식값을 지불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랑 함께 카운터를 지키는 친구인 '프렘'도 영어를 읽고 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어느 여행자를 나를 보고는 " 이 식당에는 역시 여자가 한 명은 필요했어. 이 소년들에게 정말 질려버렸지 뭐야" 라며 계산이 빨라진 것에 대해 농담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워낙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 계산대에는 주문지가 수북이 쌓였고, 하루종일 식사를 거루기 일 수였지만, 모하메드를 비롯한 소년들과 밖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이들조차 웃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항상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최고의 인기, 야채 튀김 모모(만두)


모하메드 레스토랑은 처음에는 모모 (티벳 만두), 뚝바 (티벳 칼국수), 뗀뚝 (티벳 수제비), 그리고 인도인들의 최고의 외식 메뉴인 쵸민 (중국식 볶음면)으로 시작했지만, 그동안 다녀간 수많은 여행자들의 조언으로 지금은 티벳  음식뿐만 아니라 세련된 영국, 미국식 아침 세트와 각종 생과일 주스 그리고 이탈리아 피자와 라자냐 인도 카레와 탄두리 치킨까지 파는 아주 다양한 메뉴를 가진 식당으로 변모하였다. 게다가 이곳에는 달콤한 디저트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애플파이였는데, 김이 나는 따뜻한 애플파이는  만들자마자 바로 주문이 들어왔다. 그 외  초콜릿볼과 다양한 케이크는 그 당시 주위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디저트는 모하메드의 사촌형 두 명이 만들었는데, 그들도 영어를 쓰지 못해서, 손님들은 직접 카운터 아래에 진열된 디저트 종류를 보고 '이건 얼마야? 이건 뭐야?"라고 직접 물으러 와야 했기 때문에 나는 곧 케이크와 애플파이 등에 푯말을 붙이고 가격 표시를 해놓았다.


모하메드는 13살 때 처음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는 형이 하는 티벳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몰래 몰래 음식을 만들다가 서양 여행자들의 조언으로 작은 천막 식당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또래의 친구 두 명인 프렘과 라메시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모하메드만이 영어를 몇 마디 할 줄 알았고, 나머지는 영어를 못해서,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가 있으면 손님이 왔다고 불려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13살의 조무래기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니 귀엽지 않은가?


2005년 그해 겨울 마침 모하메드는 그동안 여행자들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12월 31일에 매해 보드가야를 찾아 모하메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여행자들을 초대해서 무료 뷔페 저녁 식사를 제공하였고, 그 덕분에 신나는 음악과 맛있는 음식으로 2005년의 즐거운 마지막 날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매해 겨울 보드가야에서 시간을 보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카운터에서 계산도 하고, 후엔 스스로 브라운 브래드를 굽고, 때론 김치를 만들며 보냈다.


다음 이야기는 모하메드와 그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소년들에 대한 것이다.


초창기 멤버이자 메인 요리사인 라메쉬




짜파티를 굽고 있는 모하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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