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사회생활은 모두 상처였다.
딱 10년 전 이맘때쯤의 나는 내가 당당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다. 똑 부러진 성격과 꽤 괜찮은 일 머리를 가져 뭘 해도 잘 해낼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아르바이트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잘 해낸 적도 있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였고 자신감이 늘 충만한 아이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았던 아이였다. 대인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어딜 가든 인기가 많았던 내가 처참히 무너져버리기 시작했던 건 다름 아닌 '사회생활' 때문이었다.
살면서 인복이 늘 좋지만은 않았지만 대체로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친구들도 많았고 살아가면서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다. 한 번씩 가벼운 연을 맺게 된 사람들도 대체로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이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기에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주변 인복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사회생활 이후, 내 모든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고 내 일상과 내 자존감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이가 젊은 편에 비해 직장을 꽤 많이 옮긴 케이스였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며 '끈기가 없다, 오래 일하지 못한다'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직을 할 때마다 이력서 속 짧은 경력들에 인사 담당자들은 '직장을 몇 번 옮기셨던데, 이유가 있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유야 당연히 있었다. 그곳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 떠나고 싶었던 이유. 그만두는 것이 정당할 정도로 수많은 이유들 속에서 버티고 버텨왔지만 결국 그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이유들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대학생 때의 나는 꿈이 있었다. 심지어 아주 또렷한 꿈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사회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내게 끝없는 절망만을 안겨주었다. 늘 긍정적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해있었고, 웃음이 많았던 내가 웃음을 점차 잃어갔다. 쾌활하고 명랑했던 성격은 어느덧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져 내릴 것처럼 우중충해졌다. 멘탈 하나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가루처럼 부서져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런 답도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난 열심히 살아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생활 원래 그거 다 힘든 거야, 누구나 다 힘들어, 너만 힘든 줄 아니? 그거 엄살이야.' 하고.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똑같이 모두가 힘들겠지만 그 깊이는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깊이를 이해해 주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 아닐까.
찬란하게까지 빛나진 않을지언정 단단함 속에서 빛을 발하고 싶었던 나는 20대의 끝자락에서 이번 직장의 퇴사를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되었다. 20대의 내가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내 모든 사회생활이 상처였던 이유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고자 한다. 여전히 많이 아프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