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에게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열두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춘기와 더불어 엄마의 남자친구인 아저씨의 존재에 더욱 예민해진 나와 엄마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얇지만 높은 벽이 하나 생겼다.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그 행복이 우리들을 통해서만 유지되길 바라는, 잘못된 애정을 엄마를 향한 사랑이라 치부하던 나에게 아주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날은 여느 때와 같이 엄마의 야근으로 집에는 나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만이 집에 있을 때였다. 늦은 저녁, 드라마를 보는 할머니를 따라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누군가와 심각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통화 중간중간 ‘수술’과 같은 단어들이 들려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흘려 들었다. 우리에게 캄캄한 밤이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끊은 할머니는 심란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를 바라보는 그 표정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았다.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향해 물었다.
“할머니, 왜요? 누가 다쳤대요?”
한참 동안 답이 없던 할머니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네 엄마가 지금 수술 중이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동생의 손이 멈추고 꼼지락거리며 이불을 만지던 내 손이 멈추었다. 정적 속에서 시끄러운 TV 소리와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멍하니 누워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 부정을 했다. ‘아닐 거야. 할머니가 잘못 안 거겠지. 우리가 미워서 그냥 우리를 속상하게 하려고 하는 말이겠지.’ 그렇게 치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전화가 올 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전화기를 들어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통화연결음이 길어지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다시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아니야. 바빠서 못 받은 걸 거야.’ 애써 부정하며 두 번, 세 번, 열 번의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끄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 위로 툭툭 눈물이 떨어졌다. 정신없게 굴지 말고 일단 자라는 할머니의 말에 붙잡고 있던 전화기를 두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입을 틀어막고 쏟아지는 울음을 삼켰다.
그날은 난생처음 내가 밤을 새운 날이었다. 엄마에 대한 연락이 언제 올까 싶은 마음에 차마 잠이 오질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할머니 역시 이불을 뒤척이다 깊은 한숨을 여러 번 내쉬며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밤하늘 위에 반짝이는 별들이, 아득하게 빛나는 달빛이 그날따라 참 쓰라렸다.
엄마의 수술은 생각보다 길어졌다고 했다. 늦은 저녁에 시작된 수술은 거진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소식을 들은 큰삼촌이 원주에서 내려와 우리와 할머니를 데리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을 마치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마자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동생은 옆에서 ‘누나, 엄마 손 왜 그래?’라며 울먹거렸다. 의사 선생님과 큰삼촌이 나누는 어른들의 대화는 알아듣지도 못했을뿐더러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곱고 예뻤던 엄마의 손이 망가져 있는 모습에, 창백하게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마취에서 깬 엄마는 우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울지 마.”
하나도 괜찮지 않은 모습으로 괜찮다 말하는 그 모습에 난생처음 겪어보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을 때의 아픔은 아픔조차 아니었을 만큼 큰 고통이었다. 항상 말해주던 괜찮다는 말이 너무나도 아팠다. 애써 울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를
구석구석 살폈다. 엄마의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만큼 눈물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던 나는 잡고 있던 동생의 손을 놓고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잠근 채 입을 틀어막고 쓴 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내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아픈 엄마에게 더는 짐이 되지 않도록.
그날, 엄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빌고 또 빌었다. 신이 있다면 내 기도를 들어달라고. 그동안 엄마에게 했던 모진 말들, 다 벌 받아도 좋으니 우리 엄마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다 낫게 해달라고,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게 해달라고. 이것만 들어주면 뭐든 다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