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 & Talk] 403호 인터뷰
본가에서의 몇 년보다 이 곳의 6개월이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해주었어요.
안녕하세요 403호님! 간단히 소개 부탁드릴게요
컨셉진이라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회사에서 일하는 3년차 에디터입니다. 컨셉진은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잡지이고 창간한 지 8년이 되었어요. 맹그로브에는 7월에 입주해서 6개월동안 403호에 거주했어요.
매거진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초기에는 종이가 아니라 앱으로 된 잡지였는데 그 때부터 제가 봤었어요. 완전 초창기부터 봤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약간 그 유명하지 않은 아이돌에 입덕한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게 꽤 큰 매력이였던거죠. 초창기부터 알았다는 그 끈끈함.
컨셉진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조금 다정해지고 충만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이 일을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나도 이런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가 닿게 하고싶다는 생각을 한 때 부터인 것 같아요.
에디터로서의 삶은 어떠세요?
글 쓰는 것을 원래 좋아하던 편이였어서, 꽤 잘 맞았어요. 하지만 막상 에디터가 되어보니 글 쓰는 것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혼자 글을 쓸 때는 하고싶은 말과 쓰고싶은 말을 썼었는데, 직업으로서는 주제에 맞춰서 매달 유의미한 글을 써야해서 초반에는 조금 해매기도 했는데 "못 쓰겠다", "아... 힘들다" 해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보면 어느순간 써지는 게 글이더라구요. 그래서 1층 카페 구석에 앉아서 많이 썼었죠.
에디터 일은 참 힘들군요.. 글 외에도 사진이나 영상도 많이 찍으세요?
사진은 핸드폰이나 필름 카메라를 활용해서 자주 찍어요. 특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진짜 많이 찍는 편이에요. 뭐만 보였다 하면 일단 카메라를 드는데, 그 날 점심이던 뭐던 일상을 기록할 용도로 사진을 많이 찍어요. 그리고 그걸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필름 카메라는 친구들 만날 때 항상 들고나가요. 풍경사진에서는 크게 매력을 못 느끼고 친구들을 찍어요. 한 달에 1-2번 정도 인화하는데,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이나 웃는 모습이 담긴 게 좋아서 항상 찍어요.
사람에게서 매력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사람, 특히 친구들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보통 주말에 하루는 집에서 쉬고 하루는 나가던데, 저는 금토일 다 놀아야직성이 풀리는 편이에요. 워낙 성격이 집에 있는 것을 안좋아하고, 약속이 없거나 집에 하루종일 있으면 에너지가 오히려 빨리는 편이에요. 저는 바깥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맹그로브에서도 집이 아무리 좋아도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MBTI도 외향형이긴 해요. 그래서 자주 나가는걸까요? 근데 낯도 많이 가리긴하는데, 낯가리면서도 외향형… 네 뭐. 그렇습니다.
사람들(친구들)을 많이 만나신다고 했는데, 만나면 주로 뭐하세요?
술 마셔요. 지금도 사실 술이 좀 덜 깬... 제가 술을 워낙 좋아하니까. 주변 친구들 중에서 술을 안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더라구요. 만나서 술 먹고, 술 먹고, 술 먹고. 그냥 술을 먹는거도 술자리도 다 되게 좋아해요.
평소에는 와인을 많이 마시구요, 2020년에 가장 많이 마신 술은 소맥이였어요. 원래는 소맥을 별로 안마시는데, 갑자기 소맥이 시원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와인을 너무 밖에서 자주 마시면 지갑이 털리잖아요.. 그래서 조금 자제하죠.
사람 안 만나고 계실 때는 뭐하세요?
솔직히 그런 시간이 거의 없어요. 주말에는 항상 밖이니까. 평일에 일 끝나고 집에 왔을 때는 뻔하지만 영화를 많이 봐요. 컬쳐 코너에 영화 부분을 제가 소개하고있는데, 평소 틈틈이 많이 봐두지 않으면 소개를 못 하더라구요. 바운더리가 작으면 그만큼 소개할 영화도 적어지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자주 봅니다.
아니면 가끔 게임도하구요. 영화보면서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것도 좋아요. 집에서는 주로 와인을 많이 마시는데요. 혼자 마시는것도 나쁘지 않아요. 뭔가 알콜중독자의 인터뷰가 되어가는 것 같긴한데, 제가 술을 참 좋아하긴해요.
스스로 본인이 연상되는 동물이나 사물이 있으신가요?
캥거루였다가 연어가 되었어요. 30년 동안 저는 부모님 밑에서 캥거루 처럼 살아왔어요.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케어해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살림을 많이 의지했었더라구요. 이제 혼자서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당당히 독립을 했는데, 마땅히 이사갈 집을 못 찾아서 부모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연어가 되었어요.
돌아가는 기분이 참 별로에요. 저는 독립을 하고나서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어요. 아. 사람은 부모님이랑 살면 안된다. 부모님이랑 사는 건 어떤 면에서는 평생 어린이로 사는 것 같아요. 엄마 눈에는 제가 아직도 애라서 작은거 사소한 거 하나 하나 다 해주시려고 하니까요. 그러다보면 제가 성장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깨닫고 배우고 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거죠.
물론 혼자 살 때 그 때 만의 불편함이 또 있죠. 빨래, 청소, 먹을거 챙기기 등등, 귀찮은 건 분명 있지만, 이게 어른의 삶이죠. 내 삶을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것. 그래서 저는 제 삶을 오롯이 책임지는 법을 알게되어서, 다시는 들어가서 살고싶지 않았는데, 일단 상황때문에... 다시 들어가있다가 집을 잘 찾아서 다시 나오려고 생각하고있어요.
부모님 눈에는 제가 아직도 애라서 사소한 거 하나 하나 다 해주시니까요. 혼자 사는 건 귀찮지만 이게 어른의 삶이죠. 내 삶을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것.
독립을 위해 맹그로브를 선택하기 보다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평안하게 살다가 첫 독립을 맹그로브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평생 부모님이랑 살아서 독립을 결정하고 맹그로브에 온 건 아니였어요. 부모님이랑 최대한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인스타그램에서 맹그로브가 생겼다는 광고를 봤어요.
누구한테 말도 안하고 혼자 신청해서 투어를 했는데, 제가 3번째로 맹그로브를 보러온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혼자 결정을 했어요. 여기 한 번 살아보고싶다. 제 예산보다는 가격이 살짝 비싸긴 했지만, 부모님께는 살짝 줄여서 얘기하고. '살아보고 싶으니, 살아보자' 하고 생각을 했죠.
이사하기 3일 전에 부모님에게 얘기를 했어요. 보증금만 빌려달라고… 아주 진짜 호되게 혼났죠. 저는 독립을 위해 맹그로브를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냥 맹그로브에 살아보고 싶었어요. 여기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시도해보고 싶었던거죠.
반 년의 독립생활을 회고해보자면?
좋았죠, 혼자 살았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고 내 공간을 가지고 내 마음껏 꾸밀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물론 아쉬운 것은 있겠죠. 공유주택 자체가 사람들이랑 많이 만나고 이런 공간이니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면 참 좋았을텐데요. 문제는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생각보다 이야기를 많이 못했어요. 그게 제일 아쉬워요. 그걸 깨닫게 해준 이 시간들도 되게 소중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여기 살면서 느꼈던 것이 나는 공유주택보다는 자취를 해야한다는 결론이 생겼어요. 코리빙만의 시스템이 너무 궁금했고 매달 진행하는 소셜클럽도 좋고 이 시스템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집에 친구들도 초대하고싶고 실제로 여기선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힘들더라구요. 요즘은 '찬빈네집'이 제 이상형인 주거공간 같아요. 맹그로브 커뮤니티팀 찬빈님의 집인데, 그런 스타일의 자취가 더 잘맞는구나하고 알게된거죠. 경험하고 만나고 이야기 나누면서 사유의 폭이 넓어졌어요.
방을 제외하고는 어디에 가장 자주 계셨어요?
카페에 영업시간 말고 저녁 한 8~9시 즈음부터 새벽 1시까지 종종 있었어요. 저한테는 이 공간이 너무 많이 도움되었어요. 제가 집에서는 절대 일을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도 항상 카페에 가서 일을 했었는데, 여기서는 방에서 엘리베이터만 타고 노트북 들고 가서 일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그게 너무 편했어요.
또 카페에 갈 수 없는 시국이라 카페에서 밖에 글을 못 쓰는 저에게는 너무나도 편리하게 집 안의 카페를 이용할 수 있어서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방과 카페 공간만으로도 맹그로브가 너무 만족이었어요. 집인데 카페인 것이 너무 좋았죠.
밤 시간에 계신 분들은 다 일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12시에 내려와서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물론 맨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402호님, 306호님, 502호님, 504호님이 마치 게임 NPC마냥 계속 있긴 한데, 알게 모르게 의지가 되는 것이 있더라구요. 나만 이렇게 이 시간에 일하는 게 아니구나하고 말이죠.
그래도 입주한지 반 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맹그로브 사람들은 좀 알고지내시나요?
사실 잘 몰라요. 잘 몰라도 오가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잖아요. 저는 그 정도도 좋았어요. 집에와서 누구랑 인사를 한다는 그 자체가 말이죠.
와인을 노트북에 쏟고 맛이 갔는데
402호 님이 노트북을 빌려주셨어요.
완전 구세주였죠.
맹그로브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사건이 있으셨나요?
첫 번째는 402호님이 노트북을 빌려주셨던 날이에요. 마감 때여서 원고를 노트북에 다 작성해놨었는데 '와인을 한 잔 먹으면서 해야겠다'하고 생각하면서 와인 따르다가 쏟았거든요. 덕분에 노트북이 맛이 갔어요.
쓰던 원고도 날아갔지, 당장 다시 써야하는데 어쩌지하고 멘붕이 왔는데... 그걸 인스타에 올리고 피씨방에 가고 있었는데 402호님이 연락와서 노트북을 빌려주셨어요. 완전 구세주였어요. 맹그로브가 아니였으면 노트북 어떻게 빌려서 수습했겠어요. 너무 감사했었어요.
아, 샹그리아 파티 하던 날도 떠올라요. 그 때 처음 맹그로브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봤던 날이였고, 같은 건물에 살아도 오며가며 사람을 마주친 적도 적었는데 모여보니까 '아 여기도 사람들이 살구나' 했었어요.
마지막으로는 루프탑에서 왈이네 멍상을 한 날인데 너무 평화로운 기억이 남아있어요. 명상을 편하게 누워서 해도 된다고 하셨었거든요. 근데 그 날 그 자리가 너무 평화로운 거에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근데 잠에서 깨어 나니까 다들 앉아있고 저만 혼자 누워있더라구요. 솔직히 너무 창피했는데, 그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명상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이사온 뒤로 혹시 짐이 늘어나셨나요?
전에는 부모님이랑 사니까 방을 꾸미겠다는 생각조차 안했었어요. 꽃무늬 벽지 집을 어떻게 바꾸겠어요. 그대로 살 수 밖에 없었던거죠. 맹그로브는 깔끔해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보니까. 이것 저것 많이 샀어요. 오티에이치콤마의 한강 포스터, 인센스 스틱, 장우철 에디터님 사진 박스도 샀어요. 가격이 15만원인가 그랬는데, 예전이였으면 구매할 생각도 안했을텐데, 방이 예뻐보일 수 있는 소품들에는 다 관심이 가더라구요.
20만원이 넘는 러그도 할인을 하길래 샀죠, 이 다음 자취 때는 잘 모아놨다가 나의 공간이 생겼을 때 이렇게 꾸며야지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 공간을 어떻게 꾸밀 수 있겠다. 어떻게 꾸며야겠다는 그런 일련의 그림들이 그려졌어요. 다 맹그로브에서 조금씩 연습해본 것 같아요.
403호면 테라스가 있는 방인 것 같은데, 테라스는 어때요?
아... 테라스가 제 방에 있군요. 테라스… 테라스… 테라스는 외풍이 있어서 좀 추워요. 그래도 개인 테라스가 있는 방을 선택한 이유가 제가 방에만 있으면 답답해하는 성격이라서였는데 생각한 만큼 제가 잘 활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활용할 수 있는 계절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가을이 제일 좋겠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물론 좋은 점도 있죠. 테라스에 나가서 노을을 진짜 자주 나가서 봤어요. 저 하늘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 날씨 좋으면 바로 테라스에 나가서 하늘을 구경했어요. 한참동안 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죠, 밤에는 별동별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어요.
숭인동이라는 동네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잘 모르는 곳을 '동네'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예전에 아르바이트할 때도 항상 좀 멀리가서 했었어요. 집은 부천인데 광화문, 삼청동 이런 곳에서 말이죠. 거기서 일을하면 그 일대가 나의 동네가 된다고 생각해서 제가 가고싶은 곳에 가서 일을 했었거든요. 동묘나 숭인동에 있는 집에 사니까 저한테는 이곳도 동네가 된거죠.
길이 터프하긴 해요. 오르막이 꽤 있다보니 힘들기도하구요. 뒷산으로 올라가면 남산타워가 보이고요. 그 길이 드라마 '러너'에도 나오더라구요. 그 쪽 산책을 자주했던 것 같아요. 산책하고 내려오면서 꽈배기집에서 꽈배기를 사가지고 먹고 집에돌아오는 산책을 많이 했어요. 참 정겨워요. 진짜 '동네'스러운 동네에요.
원래 노포를 좋아해서 종로에서 많이 놀아요. 종로, 을지, 그리고 신당쪽도 좋아하죠. 근데 동묘에서 이곳들이 너무 가깝더라구요. 여기가 종세권에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어디든지 택시를 타고 5천원 미만이라 너무 좋았구요. 특히, 신당에서 놀면 그냥 걸어서도 올 수 있는 거리라 너무 좋더라구요.
저에게 '독립 연습장' 같은 곳이에요.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 테스트하고 알게됐어요.
맹그로브는 403호님에게 어떤 집인가요?
'독립 연습장' 같은 곳이에요. 이제 집을 구하려고 보니까 맹그로브는 참 좋은 곳이더라구요. 여기는 몸만 들어오면 되는 곳이잖아요. 그게 정말 편한거였더라구요. 그 때는 따로 생각해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편한지 뭔지 몰랐는데 이제와서 다른 데도 알아보니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더라구요. 옵션도 대출도 다 요.
맹그로브는 그런거 없이 그냥 '살아볼래'하고 들어오면 되는곳이라 편했죠. 여기서 살다보니까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테스트하고 알게된 거에요. 살림 문외한에 세탁기 돌리는 방법도 모르고 블라인드 내리는 것도 할 줄 몰라서 유튜브로 찾아서 배웠거든요.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럼 마지막 질문으로, 그럼 403호님은 맹그로브에서 어떻게 바뀌어서 나가시는 것 같아요?
저에 대해 확실히 더 많이 알았어요. 본가에서 지낸 수 년간 알았던 것 보다 맹그로브에서의 6개월이 제 자신을 더 많이 알게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공간을 꾸미는 방식이나 스스로 호감을 느끼는 사람 등 제 취향을 명확히 알게됐어요.
맹그로브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 홈페이지
나도 여기서 살아볼 수 있을까? → 입주 대기 상담
글 김기태
사진 엄종헌, 김기태, 4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