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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망 Mar 25. 2019

임신시켜주지 못해 미안해.

정관수술을 했다. 몇군데의 병원을 알아보고 여러번의 상담을 받고 큰돈 20만원을 납부하며 나의 출산계획은 이제 막을 내렸다.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남자로서 생산직에서 서비스직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하였지만 정작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 내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수술을 하기 위해 만났던 비뇨기과 의사들은 하나같이 자녀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이제 자녀를 낳을 계획이 없으신거지요?'


그렇다. 나는 이제 자녀를 낳을 계획이 없다. 


'사모님과 상의가 되신 일이지요?'


음....

사실 와이프와 상의가 되지는 않았었다...


////////////////////////////////////////////////


젊은 날 결혼하여 어느덧 집안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4명이 되었다. 3명의 남자아이와 1명의 여자아이를 키우며 힘들다면 힘들었고 힘들지 않다면 힘들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 열이면 열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애국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딱히 애국자란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애국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단지 아이가 생겼다면 마다하지 않았고 원래 계획이 아이들 4명 정도는 낳고 싶었을 뿐.


그렇게 4명의 아이를 키우던 중 다섯째 소식을 들렸다. 다섯째는 계획에 없었다. 피임도 잘 했다. 근데 와이프는 나에게 임신테스터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는 잘도 남편이 와이프를 바라보며 환희에 찬 얼굴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그러더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4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다섯째는 생각도 안했기에. 4명의 아이들 이름도 잘 지었다고 생각했기에. 이제 제법 아이들 나이차도 있고 항상 다섯째는 키우기 힘들겠지라고 이야기했던 우리였기에. 맑은 눈망울과 기쁨의 찬 얼굴로 와이프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지 못했다. 미안하게도 그저 멍하니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일주 이주 삼주. 한달 두달 석달을 보내며 조금씩 임신을 와이프나 나나 적응하며 다섯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을 오갔고 출산 후 조리원을 예약했으며 태명과 성명을 고민했었다. 조금씩 몸도 마음도 다섯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성장하고 있을 때 쯤 와이프는 하혈을 하였다. 급히 다니던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작은 병원에서는 제대로된 진단을 하기 힘들다고 하며 대학병원을 권하였다. 그렇게 대학병원에 들려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산모의 자궁에 다른 사람보다 많은 혈류가 흘러 태반이 이를 압박하였고 그로 인해 하혈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계속된 하혈은 산모 혹은 태아 혹은 둘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고 빨리 선택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런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의사가 사실 현실성이 없었다. 나는 유산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와이프를 잃는다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의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상담을 마치고 하혈상태를 보기 위해 입원했다. 입원병동의 이름도 무시무시한 고위험산모진료실. 그렇게 와이프는 산모를 위해. 태아를 위해 3일간 상태를 지켜보았다.


와이프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집에서 4명의 아이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 생각의 결론은 아이도 와이프도 중요하지만 나는 와이프를 가장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다짐이었다. 의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정말 최후의 선택일 뿐. 현재의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의 아내였다. 


와이프 퇴원 후 와이프가 안정될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기도했다. 둘다 무사히. 건강히. 시간이 흘러 볼 수 있기를. 그렇게 걱정과 근심의 시간을 우리는 보냈다. 


세번째 검진을 갔을 때 의사는 우리를 웃음으로 맞이했고 우리도 미소로 답하였다. 몸도 많이 좋아졌고 기분도 좋고 하혈도 없다고. 그렇게 상담 후 옆방에서 아이를 보기 위해 초음파검사를 하였는데 의사는 초음파를 한동안 바라보며 말을 잇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과 애써 삼키는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몇분의 침묵과 몇분의 눈치를 지나 어렵게 꺼낸 의사의 유산 통보에 와이프와 나는 부여잡았던 손 위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했던 다섯째 막둥이. 엄마 뱃속에서 생명을 키워가며 힘차게 뛰던 그 심장은 결국 조용히 멈추었다. 다섯째가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간 이유를 나는 나대로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자기 탓을 돌리며 자책하고 힘들어했다. 아이들에게도 다섯째 소식을 전하며 슬픔을 나누었고 한동안 우리 가족은 서로의 눈물을 숨기며 힘들고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쯔음 정관수술을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진작하지 않아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후회도 되었다. 다시 임신한다면 산모가 위험할 것이란 의사의 경고. 다시는 이런 슬픔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 와이프를 또 다시 임신과 입덧의 고통 속으로 보내고 싶지 않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제 정말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인지 고민을 했다.


넌지시 정관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꺼냈다가 우리는 차안에서 대판 싸웠다. 나는 와이프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와이프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이라 화를 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이런 아픔과 슬픔을 겪고 싶지 않았고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 4명이면 충분했고 와이프의 건강은 위험한 상태였다. 와이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와이프는 몇일 후 하고 싶으면 수술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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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하면 행복하진 않더라도 후련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분이 썩좋지 못했다. 정말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와이프에게 수술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와이프는 힘이 빠진다는 말을 하였고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되었다. 아마 와이프는 자신의 몸이 건강했다면 다섯째를 낳고 싶었으리라. 잃어버림으로 겪은 슬픔을 얻음으로 회복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남편은 그 바람을 이루어주지 못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또 다시 눈물이 났다. 

이제 임신시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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