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잘 안 나오는 학생이 있습니다. 학년을 진급하거나 졸업하기 위해 채워야 하는 정규 수업시간은 전체 수업 시수의 3분의 2입니다. 대략 60일을 결석하면 유급된다는 이야기지요. 작년도 재작년도 거의 60일을 가까이 학교를 나오지 않고 겨우겨우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요. 부모님과의 갈등도 있을 테고. 어릴 때 받았던 상처도 있을 테고. 지금도 말 못 할 사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떻게 다 알고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인내가 필요할 뿐이지요.
오늘도 일주일 동안 결석하던 학생이 점심 후 상담을 요청하여 학교에 나왔습니다. 한 시간 정도 상담을 했는데 삶의 의미를 모르겠어서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살이란 단어를 썼지만 특별히 걱정되지 않았던 것은 자살하지 않을 친구라고 믿어서였을까요. 덤덤하게 상담을 이어갔습니다. 저에게서 따뜻한 말이 나가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네요.
학생이 말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의미를 찾는 행위에 익숙함을 느끼죠. 선배가 나에게 사용한 단어의 의미. 옆 동료가 건네준 음료의 의미. 오늘 읽은 책 마지막 문장의 의미. 나의 존재의 의미. 세상과 우주 탄생의 의미 등.
그런데 그런 의미는 누군가 나에게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초등학교 때는 삶의 의미가 먹고 노는 것이었다면 왜 지금은 먹고 노는 것이 의미가 될 수 없을까요. 혹시 나의 존재에 대한 거창한 의미를 굳이 찾으려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의미를 찾는다면 오늘 내가 할 이유. 즐거울 이유. 만족할 이유와 같이 사소한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은 제가 너무 학생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저의 입장에서만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이어졌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만큼 학생도 삶에 대해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