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작가, 혼모노]를 읽고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로 유명해진 『혼모노』는 2024·2025 젊은 작가 상을 수상한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 「혼모노」를 비롯하여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스무드」,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등 7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길티 클럽은 감독 김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클럽 이름은 그의 세 번째 작품 「길티 플레저」에서 따왔다. 길티 플레저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주인공 나는 영화 「인간 불신」을 통해 김곤의 팬이 된다. 김곤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할 만큼 실력 있는 감독으로, 출중한 외모가 더해져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아역 배우와 관련된 논란이 발생한다. 그 사건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은 그를 외면하지만, 나를 비롯한 열혈 덕후들은 여전히 그를 지지했다. 그의 결백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은 사실로 밝혀지며, 논란이 된 아역 배우의 분량은 모두 편집이 된 채 영화는 개봉한다.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도덕적 비난을 받는 감독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믿었지만, 결국 그 일이 사실로 드러나며 진실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영상으로는 편집되었어도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 터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허구 아닐까 하는.
내가 실패한 영화를 본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이외에도 재미 한인 3세가 처음 방문한 한국에서 태극기 집회 사람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무드」, 고문을 위해 설계된 남영동 대공분실의 극악무도한 건축 과정을 그린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30년 차 박수무당이 신령으로 모시던 장수 할멈이 자신을 떠나 어린 신애기에게 가면서 진짜 무당인 척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혼모노」, 같은 꿈을 꾸었던 세 친구의 이상과 현실을 그린 「메탈」, 임신한 자식의 원정 출산을 앞두고 며느리와 시부가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며 다툼을 벌이는 「잉태기」, 지역 재생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인물들이 귀촌 한 이들과 만나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게 되는 「우호적 감정」이 있다.
혼모노는 ‘진짜’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끊임없이 묻는 것은, 이 책에 실린 7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인다. 진짜인 척하는 가짜들이 많은 세상에서, 이제는 진짜를 구별해 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시대다.
보통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단편집은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혼모노』는 7편의 단편이 저마다 다른 소재와 결을 지녀 흥미롭게 읽힌다. 가독성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명쾌한 결론이 나는 작품은 없다.
양경언의 해설을 보면 “성해나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끝까지 능동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책을 덮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더 생각이 필요한 책으로 느껴진다.
전언에 따르면 성해나 작가는 20대 후반의 나이다. 젊다는 말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나이인데 글의 깊이가 상당하다. 이 다양한 소재를 어떻게 생각해 냈으며, 어쩌면 이리도 섬세하게 그려냈는지 감탄스럽다. 작가는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결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사유하길 바라며 여운을 남긴다. 독자가 느끼는 대로, 독자의 해석대로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생각이 필요한 만큼 독서 모임에서 함께 토론하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입체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한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싶고, 나와는 다른 관점으로 인물들을 조명하고, 현실 세계와의 연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준다.
이 책은 익숙했던 나의 독서 습관인 이야기의 흐름만 좇는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줄거리를 위주로 읽고 이해했다고 여겼던 나에게, 작가가 심어 놓은 질문들은 내 생각을 한 발 더 내딛게 했다.
독서 모임에서 타인의 관점으로 해석한 것을 들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마주하고, 사고를 확장해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부엉이는 성급히 날아오르지 않는다.
날갯짓을 하기 전 충분히 주변을 살피고, 신중히 방향을 정한 뒤 착지한다.
나 역시 예리한 발톱으로 문장을 낚고,
너른 시선으로 사회의 아픔을 포착하며, 열린 귀로 멀리 떨어진 이들의
이야기까지 경청하고 싶다.
지금보다 묵직한 숨을 내쉴 때까지 가까이서, 먼 곳에서 지켜봐 주시길 바라며. <2025년 봄, 성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