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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21. 2020

일요일 오전을 진짜 알차게 보내는 방법

일상이 가장 소중하다.



그랬다.


1994 여름.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친구들과 7시에 집 근처 중학교 농구코트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방학을 시작한  일요일이었고, 보충수업이 없는  휴일이었다.
나를 포함한 일곱 녀석은 시간에 맞춰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어제저녁 약속했던 대로 우리는 농구공 한 개와 축구공 한 개, 그리고 테니스 라켓  개를 들고 모였다.

농구장에는 벌써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겨울 <마지막 승부> 덕분에 동네 농구코트는 연일 만원이었다. 모두의 옷에는 NBA 농구스타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공을 따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흙먼지 바닥의 코트였지만 우리들에게는 소중한 곳이었다.  녀석이 농구 코트에 가보더니 4 남았다며 끝나면 우리  6명과 6:6으로 10 넣기 시합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옆에서 몸을  그들의 시합을 구경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어젯밤 끝내지 못한 얘기 들과 함께 시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시합이 끝났고  경기의 승자들과 우리 6명의 경기가  시작하려던 때, 


대부분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이라 안면이 있었다. 동네에 있는 4군데 남자 고등학교의 선후배들이었다. 처음 본 선배들과 인사를 했고, 후배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후보로 남아 대기했고 친구 녀석들은 경기를 시작했다.

그날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는지 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새롭게 만났던 선배들과 후배들 그리고 그날의 날씨, 운동장의 상황은 어제의 기억처럼 선명하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 나는 정말 열심히 땀을 흘렸고, 친구들과 많이 웃었다.

10시가 넘어서 운동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과 당시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파워에이드라는 음료를 사서 마셨다.

땀을 흘리고선 보통 포카리스웨트는 마셨는데 슈퍼 아주머니께서 권하셔서 유리병에  파워에이드를 마셔보았다. 형광색 액체였는데 나쁘지 않았던  같다.




지금 내가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알차게 보냈던 일요일 오전이라는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2020 6 21 일요일이다. 그때로부터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육체적으로는 그때보다 익었고, 정신적으로는 그때보다  충만하다. 이제  아들 녀석이 그때의 나와  가깝다. 그런데 녀석은 어제도 새벽까지 오락을 했는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나는 아침 7시에 엄마의 전화를 받고 일어났다.
엄마가 놀랬다. “아들 잤어?   있나? 아프나?”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이것저것 한지도 수년째이다 보니 잠이 덜 깬 목소리를 듣고는 당황하셨나 보다. 

2주 전부터 나는 일요일에는 알람을 꺼두기로 했고, 새벽에 잠이 깨도 그냥 누워있기로 했다.


조금은 틈을 만들어 생활에 여유를 주고  몸에도 휴식을 줘야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그렇게 2주를 보냈더니 살이 2킬로그램 빠졌다. 살이  빠졌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최근 나는  생활의 루틴을 조금 느슨하게 바꿨다.

사실 어젯밤엔 너무 피곤했다. 11시까지 글을 쓰면서  번을 졸았는지 모른다. 따님에게 아빠가 잠자리에 누우면 3분 안에 곯아떨어질 거라고 장담했었다. 그리고 진짜 곯아떨어졌다.

8시간 정도를 잤더니 몸이 날아갈  개운해졌다. 엄마 전화로 깼고 곧바로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어제 생각했던 오전의 일과를 준비했다.

[ 하고 싶은  :  달리기 (5km), 사우나, 글쓰기, 독서, 유튜브 촬영, 휴식, 영화, 독서, 강연 초안 준비, 유튜브 편집, 집 청소, 차주 계획 요약정리 ]



지금 시각 오전 11 

나는 8시부터  30분간 달렸고, 20분간 걸었다.
차를 몰고 집 근처 사우나에 들러 한 시간가량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고 씻었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 10:10. 근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글을 먼저 쓰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커피숍에 앉아 이어폰에 흐르는 빗소리에 맞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매우 개운하고 몸이 까슬까슬하다. 물론 정신도 맑다. 약간 배가 고프긴한데 3일 전부터 시작한 간헐적 단식을 생각하며 참아본다. 12시까지 참으면 16시간 단식이다.
이제  아내 전화가 올 거다. 그럼 집에 가서 밥을 먹든, 밥을 사 먹든  것이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것이다.

한가롭고 충만하다.  멋진 일요일 오전의 루틴이다.

 글을 쓰고 나면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럼 앞서 말했던 오늘 하고 싶은  4개를 달성하게 된다.

기쁘다.

정말 이런 일요일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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