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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01. 2020

반려견, “함께”라는 의미를 다시 알려준 녀석들



동물을 좋아했지만 내가 강아지를 키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제법 깔끔한 성격이라서 누군가에 의해  삶이 방해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싫었다.
지금 아내가  그녀가 나의 애인이 었을 때도 나는 나만의 삶이 필요해서 가끔 그녀를 피해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즐기곤 했었다.

결혼을 했고, 언젠가부터 집에 사람이 없는 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방문을 닫으면 단절을 느낄  있지만 오롯한 단절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점점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아버지 어머니와 누나와 나의 관계에서는 함께였지만 적당한 함께였다. 아내가 살던 가족의 함께는  가족의 함께보다 훨씬 농도가 짙은 함께였다.
그래서 내가 정의했던 “함께 아내가 정의한 “함께 충돌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의 관계가 물과 기름이 아니기에  어는 지점에서 섞이기 시작했고, 둘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는 우리 둘이 합의한 “함께라는 지점에서 자신의 “함께 빚어가고 있다.



지금  아들이 생각하는 “함께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차를 타고, 같이 잠을 자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정도로 보인다. 녀석은 사춘기에 진입했고 조금씩 “함께보다 “혼자 맛보고 있는 중이다.

딸은 아직 엄마의 “함께 비슷하다.  순간 붙어있다. 가족은 어느 순간에도 “함께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원을 갔다 오면 누군가는 버스에서 내리는 자신을 맞이해주길 바라고, 학원을 마치고 전화기를 켰을 , 아빠나 엄마가 학원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를 기대한다. 혼자 오락을 하면서도 옆에 누군가가 있어주길 바라기에 항상 나와 아내의 주변에서 관찰된다. 주로 엄마의 몫이긴 하다.



이런 여느 집과 다름없는 일상에 강아지 두 마리가 불쑥 들어왔다.

큰 녀석은 김모카, 작은 녀석은 김젤리. 둘 다 장모 치와와다.

녀석은 강아지이지만 인간스럽다.

모카는 태어나서 한 번도 고생해보지 않은 귀한 삶을 영위하다 태어난 지 두 달째 우리 집으로 왔다. 가정 분양을 받았다는 말이다. 녀석은 건강했고, 개념이 없었고, 귀여웠다.
처음 손바닥에 올려놓을  있을 정도로 작았다. 밥을 주면 순삭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밥그릇에 코를 박고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400 그램도 안 되는 너무 작은 녀석이라 바스러지기라도   조심조심 애지중지 키웠다.

젤리는 태어나서 고생만 실컷 하다 다행히 우리 집에 왔다. 아내가 젤리를 데리고 올 때 했던 말이 “우리 집에서는 진짜 행복하게 게 해 줄게”였다.  녀석은 정확히 언제 태어난지도 모르고, 발육상태가 부진했다. 샵에서 김모카와 너무 똑같은 강아지가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어서 아내와 딸이 눈에 밟힌다면 데려왔다. 녀석은 파양견이었고, 예뻤지만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이전의 글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있듯, 젤리는 선천성 심장병(PDA)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걸 모른 채 분양받았고  2개월간 사투 끝에 수술을 성공했고, 얼마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힘들게 컸기에 지금도 눈치 보는 습성이 있다.
최근 젤리의 성장이 빨라지면서 이제 녀석이 우리 집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카도 윽박지르고  밥도 뺏어먹고,  간식도 뺏는다. 모카는 먹는 것에 민감한데 그냥 져주는 듯하다. 어차피 동생에게 양보하면 엄마가 챙겨준다는  아는 듯하다.



 녀석과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 가족의 “함께 정의가 많이 변했다. 이제 “함께라는 것에 김모카와 김젤리를 포함했고, 그들이 가족의 일에 동참할  있는지가 가장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외식보다는 포장 주문하는 것으로, 카페도 테라스가 있는 곳으로, 밤이면 녀석들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것으로 생활이 바뀌었다.

가장 좋은 것은 온 가족이 녀석들을 보고 웃는다는 것이다.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아무 데나 오줌을 싸도 그냥 웃는다. 치우면 되는 것이고 냄새나면 환기를 하고 청소를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녀석들로 인해  것은 있지만 얻는 게  크다는 것이다.

매일 새벽잠에서  서재로 걸어가는 나를 맞이해주는  강아지들 뿐이다. 매일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도 녀석들이다. 나른한 오후 소파에 기대어 졸고 있으면 좁은  옆으로 다가와 같이 눕는.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함께  깊은 잠을 청한다.

생명이라는 것이 따뜻하고, 심장이 뛴다는 것이, 말을 못 알아듣지만 행동을 이해해 간다는 것이, 함께 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몰랐다.

나보다 아내가  웃고, 아내보다 아이들이  웃는다.

그래서 좋다.

녀석들 덕분에 행복한 일을 매일 만난다.

이게 “함께라는 것의 진짜 의미 아닐까.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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