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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01. 2020

아빠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그리고 나

| 자신의 음악 세계관은 20대까지 듣는 음악으로 만들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20대를 끝으로 확장력이 확~ 떨어진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마흔을 훌쩍 넘긴 요즘 내가 듣는 음악은 요즘 발매되는 최신곡들이 아니라 20대까지 들었던 음악의 범주 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말이다.


음악을 듣는 시간도 많이 줄었고, 관심도 떨어졌다. 왜 그런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일상의 다른 것들이 음악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난 참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듣는 음악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조금씩 그 열기가 식어갔다.


음악은 발견하는 맛이 좋았다. 

잘 알지는 못해도, 잘 부르지는 못해도,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좋은 곡을 발견할 때마다 즐거움이 남달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내가 발견한 가장 최근의 가수가 조쉬 그로반 (그것도 7~8년 전이네) 정도인 것을 보면 스스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한때 음악이 내 일상을 대변하던 때가 있었다. Music is my LIFE.


한때 음악이 내 일상을 대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노래방에서 절규하듯 노래하고, 카세트 레코더나 시디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감동했었는데...

생일날 그 어떤 선물보다 음반 선물을 받는 게 좋았는데...

군 입대 후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게 되는 훈련소 퇴소식에서도 나는 누나에게 내 CDP에 이소라 1집을 넣어오라고 말했었는데...


지금 나는 그때 가졌던 음악에 대한 애착과는 제법 멀리 떨어진 채 살고 있다.





최근 아침 출근길에 다시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이라며 팟캐스트나 유튜브 영어강의를 들으면서 출근했었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도 그 연장선상에서 떠오른 생각을 끄적이는 것이다.


강산에, 조쉬 그로반, 카를로스 산타나, 스탠딩에그, 노 리플라이, 들국화...


연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런 곡들이 귓가에 흐르면서 불현듯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빠가 생각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생 시절 아빠가 “스위트 피플”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노란색 케이스의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사 가지고 오셨다. 가사가 없는 음악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나에게 전혀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김범용이나 김현식, 이문세 정도에 반응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 차에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라는 가수의 테이프를 보게 되었다. 아빠 말이 노래를 너무 잘하는 가수라며 축구선수였는데 지금 가수가 되었다고 했다.

차에서 그의 음악을 항상 틀고 다니셨는데, 듣다 보니 나 역시 그의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롭고... 암튼 좋았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부르는 노래였지만 필(Feel)이 왔다고 해야 할까?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 HEY!! (꼭 들어보시길)


당시 차에는 카세트 데크가 있었고, 아빠가 넣은 훌리오의 테이프에는 “Hey”라는 지금은 불후의 명곡이 된 그 곡이 들어있었다. 요즘처럼 음반의 트랙을 선택해서 듣기 힘들었기 때문에 테이프 앞 뒷면을 꾸준히 듣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음반 속의 곡 전체를 두루 들으면서 좋은 곡을 많이 알게 되었다.

 

아빠가 훌리오의 음악에 맞춰 핸들을 톡톡 두드리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빠와 온천장의 대중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와 맥콜을 한잔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듣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음악은 내게는 각인된 행복의 결정체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지금...

내 음악 세계는 아빠가 차 핸들을 두드리던 그 시절부터 다져온 경험치의 산물이다. 집에 인켈 전축을 들여놓던 일, 엄마가 선물이라며 심형래의 펭귄 캐럴 LP판을 사 온 일, 그러면서 함께 사 왔던 휘트니 휴스턴 2집, 런던 보이즈의 할렘 디자이어가 있던 LP, 큰집에 갔다가 들어본 조지 마이클 1집의 Faith, 헬로윈의 Dr Stein, March of Time, a Tale... 누나가 사모으던 이선희 음반, 내가 사모으던 이문세 음반, 마이클 잭슨과 머라이어 캐리, 토미 페이지, WHAM, 마이클 볼튼...

처음 미국에 발을 들여놓은 날 West Town Mall의 레코드샵에서 샀던 산타나의 Supernatural 음반까지...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지만 그때 모았던 음반을 버리지는 못한다. 추억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수많은 음반을 사모았고 들었고 느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들어왔던 음악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 반복의 세월이 10년이 넘은 듯하다.


이번에 음악을 다시 들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나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최신 음악에 도전하고 있다.

입에 작은 돌기가 난 것처럼 깔깔하니 내 귀에 잘 맞지는 않는데 그래도 자꾸만 들어본다. 그러다 가끔씩 멜로디가 익숙한 음악을 발견하면 그게 또 큰 기쁨인 것이다.


다시 조금씩 음악이 내 영혼을 살찌우려 하고 있다.


음악은 참 좋은 취미다.


아빠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https://youtu.be/t0brPexjPrk

조쉬 그로반 한번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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