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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04. 2020

이렇게 나는 중년이 되어간다

| 젊음이 무르익어간다


문득문득 나이를 더듬어 볼 때가 있다.


‘나 몇 살?’


나이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열 살 그리고 스무 살 즈음이었을 거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3학년 때 나는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내 두 자리 나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1~10까지가 한자릿수라고 말했던 선생님 때문에 기분이 너무 나빠졌었다.


‘나 아직 십 대가 아닌 거야?’

그리고 열한 살을 무척 기다렸다.




대학에 입학을 하고 생면부지의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재수 삼수한 동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즈음은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재수생은 말을 텄고, 삼수생은 형님/누나로 깍듯하게 대우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는 빠른!!이라는 문화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초/중/고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족보(?)의 꼬임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고등학교 친구 경우인데 녀석은 나와 같은 76년생이지만 3월생이었다. 며칠만 빨리 태어났어도 94학번이 될 수 있는 생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재수를 했고 나와 같은 과에 입학을 했다.

나는 95학번, 녀석은 96학번. 더군다나 부산 놈이다.


녀석이 같은 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녀석으로 인해 나는 제법 많이 애매한 포지션이 되었다. 녀석의 과 친구들은 대부분 재수생들이었지만 77년생들도 있었고, 녀석은 그들과 말을 텄다. 거기에 내가 끼면 그들은 내게 존댓말을 하고 나는 반말은 한다. 녀석과 나는 반말을 한다. 애매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베베꼬인 관계가 싫어서 내가 그냥 말 다 트고 지내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조금씩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96학번 후배들이 95학번 선배에게 반말을 한다라는...

그리고 그 당사자는 나였다.


어쨌든 결론은 해피엔딩이지만, 그때 우리들에게 나이 1살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권위였다. 그땐 그랬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가 29살이었다. 대학 동기들보다 2년 늦게 취직을 하다 보니 회사 선배들도 대부분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많았다. 이 곳도 제법 애매한 존댓말과 반말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회사 입사기준으로는 선배지만 대학 후배인 경우도 있고, 내 친구의 동아리 후배가 부서 선배인 경우도 있었다.


난 시원하게 “회사는 직급이죠!”라며 나보다 기수가 빠르면 모두 존댓말을 했다. 그게 편했다. 그렇게 나이 한 살의 가치가 무거웠던 시기를 거쳐 현재에 머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어린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출생연도를 따져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다 어리기 때문에 굳이 내가 그들에게 나이를 따져 형/동생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애매하게 꼬여있던 나이와 직급의 관계들도 이제는 정리가 되어버렸다. 회사생활 17년 사이에 나와 그들의 진급과 진급 누락이 발생하고 보직이 생기고 누구는 누구의 리더가 되면서 처음 선후배의 족보는 이제 거의 해체되었다.


예전에 운전하다 시비가 붙으면 창문을 내리고 “너 몇 살이야?”라고 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내가 너보다 일찍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너보다 어른이다. 이 관념의 문화속에서 나이에 집착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나이가 무덤덤해졌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새치라고 불리던 흰머리가 이제는 제법 보기 좋게 자리를 잡아가고, 함께 걸어가는 아내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앞에서 뻔뻔하게 개그를 보여주고도 멋쩍지 않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나를 보면서 나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젊음”이라는 단어를 놓기는 싫다.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그래서 나는 중년이라는 단어를 제멋대로 바꿔보았다.


“중년 = 젊음이 무르익어가는 시기”


내 젊음은 이렇게 무르익어간다.


나이를 잊어가는 만큼, 생각이 말랑말랑 해지는 만큼, 뱃살이 둥그레져가는 만큼 나는 점점 중년이 되어간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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