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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20. 2020

저를 설득하시려고요?

| DAY 20 | 정치는 설득이 아니라 납득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세상 가장 이상한 현상이 바로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와 언론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를 살긴 했지만 너무 어린 시기였기에 당시의 공안정국이 어떠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기억이 나는 건 가족이 모여 밤 9시 뉴스를 볼 때면 항상 대통령의 뉴스가 가장 먼저 나왔다는 거다. 또, 북한을 늑대의 탈을 쓴 인간으로 묘사하며 반공/방첩에 관련된 독후감과 글쓰기, 표어, 포스터를 열심히 학교 과제로 해냈던 기억이 있다. 3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다.




요즘 언론을 접하다 보면 과연 그들이 쏟아내는 기사가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들의 말초를 자극하는 헤드라인 한 줄만 강요하는 것 같다. 제목만 보면 마치 나라에 너무나 치명적이고 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은 문구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는 그 기사가 잘못되었다는 SNS의 글들이 개인들의 손에 의해 올라온다. 뉴스를 뉴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뉴스를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분석해서 받아 들어야 상황이다. 언론의 신뢰도가 전 세계 꼴찌 수준인데, 정작 언론인들은 진실의 반대면만 보면서 자축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 요즘 정치를 보면서 설득보다는 납득이 필요한 시기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글을 빌어 정치 편향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물론 이 글도 편향적이라고 시빗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가입해둔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보거나 페이스북, 트위터의 멘션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정의, 신념이라는 말들을 무수히 내뱉으며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의 연속이다. 안타깝다. 분명 사실이 있고, 진실이 있고, 옳음이 있고 그름이 있을 거다. 그런데 생각의 잣대가 얼마나 틀리면 하나의 사건을 이렇게 양극단으로 해석해내는지 모르겠다.




요즘 이문열 씨의 단편 <필론의 돼지>가 자주 떠오른다. 갓 대학생이었던 95년도에 읽었던 책인데 그 책의 마지막 필론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물론 이 글은 그의 젊은 시절의 글이다.)


... 필론이 한 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아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 이문열 단편 <필론의 돼지>에서 -


인간은 자신의 신념으로 산다. 신념이 충돌하는 순간 화가 치밀고 목소리가 커지고 싸움이 일어난다. 내가 옳아야 하는 것이다. 내 신념이 타인에 의해 부정당하면 그동안 살아왔던 내 인생이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이 잘못된 것이라고 타인에 의해 비난받는 것 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신념을 최고의 가치로 믿고 산다.


잘은 모르겠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현재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역사가 지금의 이 상황의 옳고 그름을 나눈다고 생각한다. 현재 최선의 결정이 훗날 최악의 결과로 초래될 수도 있고, 현재 최악의 결정이 훗날 좋은 기회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재를 마냥 방관해서도 안 되겠지. 그래서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고 정치에 무관심하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요즘 선후배들과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물론 30년 지기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정치 이슈는 피한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의 대화에서도 정치 이슈는 금물이다. 괜히 꺼냈다가 서로의 골만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 지금까지 각자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믿고 버텨온 신념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이 틀림으로 바뀌면 싸움이 된다.


부모님의 말이, 선생님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분들의 말을 신뢰한다. 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나만의 판단 기준이 생긴 것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면 그들의 말을 믿고, 어긋나면 왜 그런지 생각해본다. 나만의 판단 기준이 내 신념이겠지!


요즘 내 아들 녀석이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잔소리가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이 불쑥불쑥 내뱉는 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똑같이 겪었던 일들일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가 인내가 아니라 이해하면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나 언론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상대를 설득하겠다는 관점이 아닌,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납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 과거 서희의 외교 같은 그런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그렇다고...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정치 #설득 #납득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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