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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23. 2020

과학과 인문학, 그 절묘함...

| DAY 23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메가 쇼킹"


이 단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바로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아주 유명한 책이고 덤으로 SF과학소설이다. 가장 쇼킹했던 것은 이 책을 쓴 김초엽 작가 그녀는 매우 젊다는 거다.

1993년생, 올해 스물여덟 살. 이제 곧 서른 살이 되어가는 그녀가 알아낸 삶의 관점이 어찌나 깊은지 40년을 넘게 살았던 내가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그런 것들을 명확히 짚어내는데 진짜 감동했다.


이 책은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편 한 편이 모두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들이다. 그래서 마냥 주욱 읽어가는 것보다 한 편을 읽고 생각을 해보는 방식으로 읽었다. 읽고 났더니 다 좋았고 다 깊었다.


단편들 하나하나가 현재 이 사회가 잉태한 문제점을 미래를 빌어 드러내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또 읽게 될 독자들도 대부분 나처럼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의 마침표를 마주하는 그 순간 무언지 모를 표현하기 힘든 안타까움이나 상실, 슬픔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런 인간의 감정에 관한 내용들을 과학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과학은 딱딱하고 정확하고 날카롭고 예리하고 모순이 없다. 하지만 이런 정교한 과학 소재들로 모호하고 애매하고 이상하고 형용하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이 점이 가장 쇼킹했다.




김초엽 그녀는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가 궁금해서 찾아본 여러 인터뷰 영상에서 앵커들이 알려준 사실이었다. 그녀가 앓고 있는 청각 문제가 이 소설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짐작만 할 뿐이다. 나는 그녀의 생각의 깊이와 인간에 대한 고찰이 분명 청각이라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듣기 힘들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보았을 것이고, 좀 더 미루어 짐작했어야 할 것이다. 그 시간의 축적이 그녀만의 우아한 관점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한번 생각해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 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 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물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p.181



개인적으로 가장 생각을 많았던 문장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 안나는 "딥 프리징"이라는 인간을 산채로 냉동시켜 미래의 어느 시점에 깨우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다. 자신이 만든 기술 덕분에 인류는 한계라고 여겼던 연속된 수명의 삶을 초월하여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안나가 이 기술을 개발할 당시에 인류는 워프 항법을 통해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발전된 기술은 더욱 발전을 부추겼고 그러다 인류는 웜홀을 발견하게 된다. 웜홀의 발견은 인류를 우주 저편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발견은 종전의 오랫동안 날아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정착해 살 던 사람들을 고립시키게 되었다. 이유는 굳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인류는 훨씬 더 먼 곳의 어느 별을 발견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웜홀을 통과한다는 것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쪽에 구멍을 뚫고 펼치면 반대쪽에도 같은 구멍이 나있는데 이 홀을 통과하면 반대쪽에 도달하는 이런 원리다. 위 사진에서 보듯 인류는 ㄷ자 형태로 돌아가던 것을 웜홀을 발견하면서 단시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웜홀을 발견하지 못한 곳 중 이전의 워프 기술로 가던 아주 먼 곳(딥 프리징 기술로 사람을 수십 년 재워 그곳에 보내 다시 깨우는)의 개척지는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치 시골에 다니던 시내버스가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자 노선이 사라지는 것 같은...


이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기술의 발전이 소외와 상실을 야기시킴을 말하고 있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난 이 글을 읽으면 계속 놀라기만 했다.

   



과학은 인간을 편리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분명 그 이면에는 과학의 부조리와 새로운 불편함과 냉정함같은 반대급부가 존재한다. 세상은 단면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았던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고,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과학이 창조하는 극단을 보아왔지만 그녀의 글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깊이 숨어있는 어쩌면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버릴 수도 있는 작은 면을 다룬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참 좋은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다. 나도 이런 따뜻한 책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김초엽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과학소설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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