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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07. 2021

소설 속 상상과 현실,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에…

|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읽고



최근 김영하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아주 오래전 그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기는 한데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대학 시절 단편 몇 편을 읽었던 것 같다.


아무튼, 몇 년 전,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김영하 작가의 외모와 생각, 관점 등을 직접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TV에서 본 그는 약간 샌님 같고, 부잣집 아들 같고, 지적이고, 글 잘 쓰고, 한량 같아 보이기도 했다. 딱 내가 추구하는 인물상, 글 쓰면서 밥벌이를 꽤나 잘 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건네는 말에는 무게와 뼈가 느껴졌다. 특히 위트와 해학이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굉장히 세련되어 보였다.


그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당시 그가 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되려던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나는 그 책을 읽었다. 지금 기억을 되짚어보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내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장면은 거의 없다. 그 책은 내 관심을 못 끌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딸의 남자 친구(?) 경찰과 처음 마주쳤을 때 “살인자” 낌새를 알아채는 문장 정도가 남아있다. 그리고 영화도 관람했었다. 실망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면서 호감을 느끼던 김영하라는 인물은 점점 내 관심에서 흐려졌다. 그러다 재작년 그의 책 <여행의 이유>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호평을 받았다. 그 인기에 편승하고자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여행에 관한 에세이는 너무 좋았다. 마치 내 여행 같았다. 나와 비슷한 습성이 있었고, 나보다 더 나처럼 매우진지하게 내가 추구하던 것들을 실천하고 실현해내고 있었다. 딱 내가 바라마지않던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천편일률적인 따분한 일상에서 아주 주관적이고 별 것 없는 사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무언가 한가지에 푹 빠져 다소 매니악적으로 심취하며 집중하는 삶 말이다. 하루키 그의 책 속에 나오는 여행, 재즈, 담배, 술, 섹스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는 20~30대 내 삶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김영하 작가에게서 하루키 같은 삶을 본 것은 비단 나뿐일까?


각설하고…


최근 김영하 작가의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다. 오랜만에 일반적이지 않는 특이한 주인공들의 인생을 엿보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특히, 단편집 <엘리베이터…>를 읽다가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사는 어찌보면 특별하고, 또 어찌보면 찌질하고, 또 방탕하고, 또 혐오스럽고, 신비롭기까지 한 주인공을 엿보는 재미에 한껏 몰입했다.


영화를 보면 나와 너무 비슷해 공감되는 주인공이 있는 반면, 범죄나 스릴러 물을 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인물도 있다. 그의 단편에서 만난 인물 대부분이 후자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되짚어보는 것은 엿보기라는 인간의 숨겨진 본능을 자극한다. 특히 그 인물의 폭력적, 퇴폐적, 성적 행동을 볼 때면 나 자신의 에고(EGO)에 눌려있던 이드(ID)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자제해왔고 억압되어있던 본능적 욕구를 소설의 주인공에 투영해보면서 갇혀있던 욕구를 발산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오랜만에 이런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긴장됐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점이 상상을 통해 간접 경험을 직접 경험인양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 착각이 과해지면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 생각했던 일이 직접 행동했던 일로 바뀌는거다. 같은 거짓말을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스스로 그것이 거짓말인 것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인지, 그의 경험인지 모호해지는 순간을 여러 번 고민한 것은 그만큼 현실적이지만 또 현실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욕구와 현실 그 경계 말이다.   



오랜만에 꽤나 자극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었더니 생각이 많아졌다. 역시 소설은 이런 맛에 읽는 것 같다.


김영하 작가의 다른 책들도 계속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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