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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25. 2022

하루살이 인간

하루살이 인간 종족의 수명은 이십사 시간. 자정에 태어나 다음날 자정에 죽는다.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죽는다. 


태어난 인간은 부모의 시신을 먹으며 아침 아홉 시에 성인이 된다. 


그때부터 성인이 된 다른 하루살이 인간들과 함께 짝을 찾는데 몰두한다. 


저녁 여섯 시에는 모두가 짝짓기에 돌입해서 수정에 성공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이 짧기에 정신없이 움직이며, 고백하고 유혹하는 그들의 모습은 절박하다.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남자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여자들 간에도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다 죽는 인간들도 있다.


저녁 여섯 시가 되면, 짝을 구한 인간들은 아이를 만드는 행위를 시작하고,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짝짓기한 여자는 곧바로 임신이 된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열심히 음식을 먹는데 몰두한다. 자정에 태어날 아이의 소중한 식량이 되어주어야 하므로 자신들의 몸을 살찌운다.


하루살이 인간들의 삶은 그렇게 반복된다.


그 속에서 어떤 하루살이 인간 하나가 태어났다.


그는 자기 옆에 놓인 부모의 시신을 먹지 않았다. 그저 꼭 껴안고만 있었다.


아침 아홉 시가 되었을 때, 영양 공급이 부족한 그는 건장한 성인이 아닌 허약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는 짝짓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혼자만의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는 산책했다. 나무와 꽃을 보고 새들을 보았다. 


시간은 차분히 흘렀고, 저녁 여섯 시가 되었다.


갑자기 칼날처럼 파고드는 외로움이 그에게 찾아왔지만 자살하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 그 변화를 느끼며 황홀해했다.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자정이 되었다. 그는 괜찮은 하루였고 인생이었다고 생각했다.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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