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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Nov 20. 2020

극단바삭파 대 온건눅눅파

Part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_ 다름


심리적 지지 대 경제적 지지


 우리는 똑같이 인천에서 자랐지만 가족환경은 완전히 달랐다. 양육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지의 종류에 경제적 지지와 심리적 지지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자. 사실 두 가지 지지를 동시에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케이스고, 두 가지 모두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운 좋게도 우리는 둘 중 하나씩은 받을 수 있었는데, 룸메는 그것이 심리적 지지였고 나는 경제적 지지였다.


 "우리 가족의 목표는 각자 행복하게 사는 것"을 외치는 부친이 있는 룸메의 집안은 그야말로 자유방임주의적인 교육관이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에 입각한 내 가족의 교육관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 우리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은 집안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볼 수도 있다. 성격이 급하고 목소리가 큰데 소심한 성격의 나는, 느리지만 좋은 청자이며 필요할 때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개진하는 룸메가 10년째 감사하고 신기하다. 우리의 성격은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분명하다.


 가족의 경제적인 지원과 독립 이후 생긴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한 트라우마 덕분에 나는 빚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20대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느라 여러 차례 가족과 부딪치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완전한 경제적 독립에 성공해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룸메의 심리적인 지지가 빛을 발했다. 누군가가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안정감을 주는데, 그 사람이 룸메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극단바삭파 대 온건눅눅파


 주말이면 함께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하지만, 우리는 식성이 완전히 다르다. 시리얼로 아침을 시작하는 날이면 식사하는 모습에서 그 취향이 드러난다. 룸메는 바삭한 것을 좋아해 우유를 먼저 그릇에 부어놓고 시리얼을 조금씩 담가먹는다. 나는 시리얼을 먼저 담고 우유를 그 위에 부은 후 바삭함에서 시작해 눅눅해지는 그 스펙트럼을 즐기는 편이다. 가끔은 룸메에게 그렇게 바삭한 게 좋으면 시리얼을 먼저 입에 넣고 우유를 마시지 그러냐는 시비를 걸고는 하는데, 룸메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누가 그렇게 먹냐며 항변한다.


 호불호가 있는 식재료에 대해서도 취향이 갈린다. 나는 고수 러버이고, 룸메는 고수 헤이터다. 나는 펄프가 잔뜩 들어있는 오렌지주스를 선호하고, 룸메가 선호하는 것은 펄프 없는 훼미리 오렌지 주스다. 모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룸메는 항상 나 때문에 민트 초코를 담는 걸 포기한다. 요구르트 한 병은 내게 한 모금 반이지만 룸메에게는 일곱 모금이다. 나는 추석 즈음 나오는 파삭파삭하고 달달한 빨간 부사를 좋아하고, 룸메는 한여름 뙤약볕에서 나온 풋사과를 좋아한다. 앞니를 박아 넣으면 너무 단단하고 셔서 이가 썩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맛에 먹는단다. 다행히 치킨은 둘 다 후라이드를 좋아한다.


 입맛이 다르다는 이유로 룸메 되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이렇게 취향이 달라도 음식을 이유로 싸운 적도 없다. 보통 각자의 음식은 스스로 챙긴다. 상대가 챙겨주면 늘 변함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누군가가 나를 챙기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위계가 있을 때 당연함이 사라지고 갈등이 발생한다.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완벽히 평등한 우정이라는 관계에서, 아주 작은 일로 발생하는 갈등마저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엑셀 대 브레이크


 식성만큼이나 성격도 다르다. 룸메는 매사에 신중하고 완벽주의자다. 쇼핑을 할 때도 온라인, 오프라인 다 찾아보고 고민하는 데 몇 달이 걸린다. 가장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고 중고로 사는 경우도 있다. 직업도 꼼꼼하게 조항과 금액을 살펴야 하는 일이라 적성에 잘 맞나 보다. 제대로 된 브랜드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잘 구한다. 여행을 갈 때도 미리 다 알아보고 챙기고 준비해서 떠난다.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시작하면 집중해서 파고들고 좋은 성과를 얻는다. 돌다리를 건너라고 하면 튼튼한지 확인해본다고 돌이 부서져라 두들길 사람이다.


 나는 룸메보다 조금 더 즉흥적인 편이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보통 구매까지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옷이라면 장바구니에 막 담아두고 고르는 재미를 느끼고는 결제는 안 하지만, 누군가에게 맛있다고 추천받은 음식이나 기능이 필요한 물건은 곧바로 산다. 마음이 가는 일이 있으면 일단 추진해 본다. 가끔은 일을 벌여놓고 여러 가지를 챙기고 다니느라 너무 힘들어하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취미가 일 저지르기, 특기가 수습하기다. 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건너고 나서 돌다리인 줄 아는 사람이다.


  타고난 성격과 가정환경이 결합돼 만들어진 정반대의 성격은 각자의 전문분야에 있어서 빛을 발한다. 나의 직업은 클라이언트 및 현장과 미팅이 잦고 마감이 항상 촉박하다. 어떻게든 일이 진행이 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한 성향 '급한 성격'이다. 룸메의 직업은 일정이 루틴 하고, 정확하게 따지고 완벽하게 서류를 꾸려야 한다. 쫓기듯 하면 괴로워하고 자신만의 속도대로 가야 마음이 편한 룸메의 성향과 잘 맞는다.


 처음에는 룸메의 성격이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곧 이 친구의 시계와 내 시계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어떤 일을 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를 아니 그 시간을 고려해서 일정을 계획한다. 아침 샤워를 하는 시간도 서로 고려해서 움직인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니 각자 성격의 장점을 조금씩 닮아간다. 룸메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일이 많아졌고, 나는 저지르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거나 룸메에게 자문을 구한다. 서로 엑셀과 브레이크 같은 관계다. 엑셀만 밟았으면 사고가 난다. 브레이크만 밟았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둘이 조화롭게 누르니 안전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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