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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Nov 25. 2020

후라이와 삶은 계란 중 어느 게 더 귀할까?

Part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_ 비결 LIFE


계란 후라이 이야기


 계란 후라이와 삶은 계란 중 어느 것이 더 귀한 음식일까? 지인들과의 대화 도중 나온 주제였다. 재밌는 점은, 살고 있는 가족의 형태에 따라 대답이 갈렸다는 점이다. 혈연 가족과 살고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밖에서 사 먹는 삶은 계란이 더 좋다고 했고, 자취하는 사람들은 계란 후라이가 더 좋다고 했다. 각자에게 더 귀한 음식을 선호한다고 한 것이다.


 주방에 팬과 기름, 신선한 계란, 바로 먹을 수 있는 밥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계란 후라이는 흔하디 흔한 음식일 것이다. 아참,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 누군가의 체력과 시간도 필요하다. 늘 냉장고에 계란을 채워 넣고 밥을 지어 냉장고에 넣어둘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거나, 그 노동을 대신해줄 사람이 있는 경우라면 그렇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주 1회조차 집밥을 해먹을 여유가 없는 1인 가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계란 30알은 너무 많고, 계란 10알은 단가가 비싸지기 때문에 차라리 외식을 택하게 된다. 어쩌면 필요한 식재료를 다 넣지 못할 만큼 냉장고가 작을 수도 있다. 외식에서 접할 수 있는 계란 요리는 무엇일까? 편의점이라면 반숙란이나 구운란이 될 것이고, 식당이라면 삶은 계란이 들어간 장조림이나 떡볶이가 될 것이다. 대량으로 계란을 조리하려면 삶는 것이 일일이 후라이로 굽는 것보다 수월하다. 그러니 자취를 하는 이들은 계란 후라이가 더 귀한 음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이 사는 데도 얼굴 볼 틈 없이 바쁘게 한 달을 보내고 오랜만에 주말에 둘 다 쉬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쌀을 씻어 압력솥에 담고 불에 올리니 갓 지은 밥 냄새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솥에서 쉭쉭 소리가 나니 불에서 내리고, 바로 팬을 올려 계란을 써니사이드업으로 익혀냈다. 1년 만에 집에서 가져온 3/4포기의 김치 중 한 줄을 꺼내 썰어 앞접시에 담았다. 타인이 보기에는 그저 밥, 김치, 계란의 단출한 식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식당 밥이 아닌 우리 집 갓 지은 밥, 약한 불로 천천히 익혀내는 써니사이드업, 거기에 10년의 자취 생활 동안 몇 번 가져오지도 않았던 엄마 집 김치까지. 시간이 귀했던 한 달이었기에, 그 시간만큼 귀한 한 끼니였다.






밥은 해 먹고 사니?


 집에서 나와 산다고 하면 어른들이 제일 먼저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밥은 해 먹고 사니?”가 되시겠다. 해 먹고 산다. 그것도 제법 잘. 앞에서 말한 계란 후라이 얘기는 사실 정말 바빴을 때 얘기고, 집에서 나와 산 이래로 밥을 해 먹지 않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는데 하다 보니 실력이 점점 늘었다. 지금은 맘만 먹으면 파스타는 레스토랑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멋지게 만들어낸다.


 가사노동의 불평등한 분배가 결국 다툼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히 요리와 설거지의 영역이 그렇다.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면 생활규칙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적당한 수준의 양심과 이해가 존재한다.


 보통 한 사람이 요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이 치운다. 초반에는 요리를 하는 사람은 나였고 치우는 사람은 룸메였다. 지금은 룸메도 요리 실력이 제법 늘어 얻어먹는 기회가 많아졌다. 요리사가 메뉴와 순서를 정하고 뚝딱뚝딱 만드는 동안 치우는 사람은 훌륭한 보조자가 된다. 다 쓴 소스통을 냉장고에 넣고, 도마를 씻고, 식탁을 치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조자가 주연으로 탈바꿈한다. 마음에 드는 노래를 틀고 설거지를 한다. 그러면 요리사는 보조자가 되어 마른 그릇을 찬장에 넣고, 식탁에 남은 그릇을 갖다 주고, 행주로 주변을 훔친다.


 요리를 하고서 바로 치우지 않아도 별로 섭섭하지 않다.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날이 있는 것을 이해한다. 가끔 사흘 내내 주방이 어질러져 있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사람이 대청소를 한다. 상대방은 집에 돌아와 깨끗해진 주방을 보고 아낌없이 칭찬하고 감사한다. 알아주지 않으면 생색을 낸다. 10년간 변함없이 생색과 칭찬이 오간다. 취향이나 성격보다는, 서로가 생각하는 상식의 선이 같을 때 훨씬 안정적인 관계가 된다. 그리고 상대의 상식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는 함께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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