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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Dec 01. 2020

각자도생 하는 변방의 사짜들

Part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_ 비결 LIFE


각자도생 하는 변방의 사짜들


 우리는 직업에 '사'자가 붙은 전문직이지만 자격증을 따자마자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는 변방의 사짜들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산다는 것은 경력이 곧 연봉이 되지만, 영업과 실무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험을 먼저 통과한 후에 경력을 쌓아 정식으로 자격증이 발급된 룸메의 직업과, 일정 경력을 쌓아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나의 직업은 현대사회에서도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때문에 월급이 아주 적고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첫 직장에서 각자 인고의 4~5년을 보내며 경력을 쌓아야 했다. 그렇게 몸값을 올리고 나서야 제대로 연봉을 받는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각자의 인생이기에 서로 상의하고 직업을 정하고 직장을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사는 만큼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이렇게 다른 직업을 가지고도 비슷한 삶의 흐름을 겪고 있다. 서로 힘든 시기에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덕분에 취업준비와 수험생활이라는 암흑의 시기를 극복하여 입사와 합격이라는 경사를 맞았다. 기쁜 것도 잠시, 첫 회사에서 이른바 '조빱 시기(제 밥값을 하기에는 이른 시기)'를 겪으며 괴로워했다. 1년 차에는 사고 치고 눈치 보고 수습하고 적응하느라 바빴고, 2년 차에 드디어 업무를 한 차례 다 겪어보았고, 3년 차가 되어서야 일이 손에 익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필요한 경력을 채운 나는 먼저 퇴사하여 오랜 기간 공부한 끝에 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증을 취득했고, 룸메는 내가 시험에 합격하고 이직한 후 퇴사해 한 달 만에 원하던 회사에 바라던 연봉으로 단번에 이직했다. 그 과정을 겪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비틀림 없는 진실된 응원과 기쁨이 오갔다. 서로 잘 되는 것을 순수하게 기뻐해 줄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의 성패에 따라 내 운명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를 책임지지 않으면서 함께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각자도생’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다.


 각자도생이란 각자의 통장에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문제로 다툰 적은 없다. 가족의 지원 유무와 별개로, 우리 둘의 생활비는 거의 비슷한 편이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알바로 최소한의 생활 유지비를 벌었고, 회사를 다니고는 아주 약간의 생활비를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했다. 버는 돈도, 쓰는 돈도 거의 비슷했다. 공용 물건을 살 때는 상의해서 둘 다 진심으로 동의할 때 구매했다. 제한된 금액 내에서 어떻게든 최선의 생활을 꾸렸다.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난 더 행복해지겠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3시부터 행복감에 차올라 3시 50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있던 누군가는 늘 4시 반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친구 덕분에 행복이 반감된다. 개인의 시간관념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성격의 영역이어서 타인의 영향으로는 웬만해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잘 맞는 성격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긴 시간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어긋난 시간이 반복되면 그 누적된 시간만큼의 간극이 서로를 갈라놓기도 한다. 다행히 룸메와 나는 둘 다 여유 있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둘 다 10분 일찍 도착해 우연히 지하철 플랫폼에서 마주쳤다면 행복은 배가 된다. 만약 늦는다면 정말로 큰일이 생겼거나, 정말로 정신이 없는 경우다.


 3주 간 정말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자는 얼굴만 간신히 보던 때가 있었다. 침실도 거실도 함께 쓰는데 서로 깬 상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 일정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치킨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는 순간 룸메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 마냥, "야아, 잘 지냈냐, " "그럼 그럼, 나 이직했단 얘기 했었나, " "오우 근황 토크 좀 나눠야겠는 걸?" 하는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밤길을 걸었다.


너랑 오후 9시에 치킨을 먹으러 간다면, 나는 오후 1시부터 행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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