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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Dec 02. 2020

저맥락 대화를 하는 사람들

Part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_ 비결 _ 정서

의향을 10년째 묻고 존중한다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해?”라는 말은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그 날의 날씨, 기분, 상태가 다 다른데 어떻게 음식 하나만 꼽는단 말인가. 같은 짜장면이라도 몸이 힘든 날에는 한국 전통 스타일로 양파 가득, 조미료 가득 넣은 짜장면이 먹고 싶고, 마음이 힘든 날에는 좋은 재료와 훌륭한 실력으로 볶은 장인의 짜장면이 먹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의향을 묻고 답할 수밖에 없다. 노래방을 좋아하더라도 그 날은 아닐 수도 있고, 산책을 가고 싶더라도 그 순간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묻고 솔직하게 답한다. 상대를 배려해서 내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 대신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사실 룸메는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나는 편이라 표정만 보고도 승낙인지 거절인지 알 수 있다. 승낙일 때는 분명히 예스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고, 거절일 때는 먼저 알았다고 괜찮다고 한다.


 지레짐작해서 대답을 미리 예측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내가 그것을 원하니 상대도 그쯤 그걸 원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초대해 맛있고 거하게 점심 한 상 차려먹고 소화시킬 겸 산책을 나간 날이었다. 가는 길에 핫도그 가게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직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손님을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룸메가 먼저 “핫도그 먹을까?”하고 제안해왔다. 평소에 종종 사 먹는 가게여서 룸메도 눈에 밟혔나 보다. 흔쾌히 콜을 외쳤다. 아주 작은 에피소드지만 이런 소소한 데서 마음이 통하거나 상하는 법이다. 여전히 이런 마음이 잘 이어지는 걸 보니 계속 사이가 좋을 예정인가 보다.






저맥락 대화


 점심메뉴로 어떤 것이 먹고 싶냐는 말에 뭐든 괜찮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머릿속에는 메뉴에 대한 호불호가 있지만, 물어본 사람의 의향을 존중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묻는 이는 자신이 가고 싶었던 멕시칸 음식점으로 친구를 데려간다. 식당에 도착해서 부리또를 주문한 후, 친구가 말한다.


 "나 원래 이거 안 좋아해."



 고맥락 대화의 가장 일반적인 예 중 하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리고 돌려서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어찌 보면 한국 고유의 대화 방식일지도 모른다.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화법이기도 하다. 이런 의사소통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둘 다 배려받지 못했다. 친구는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했고, 맛있는 부리또를 함께 먹을 생각에 설레던 사람까지 기분이 상해버렸다.


 완벽히 솔직할 수 있는 관계란 어떤 것일까? 고맥락 대화를 지양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그 이면에는 거절해도 상대가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거절당해도 마음 상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친구는 멕시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마음 상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전에 그 상대방이 토라진 적이 있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 신뢰가 완벽히 형성되지 않은 관계인 것이다.


 룸메는 노래방을 좋아하고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서로 상대에게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겠냐고 종종 제안하지만, 열에 아홉 확률로 거절당한다. 그래도 꾸준히 가볍게 의사를 묻고 긍정하면 함께하고 거절하면 흔쾌히 혼자 나간다. 마음 상할 일이 없다. 가끔은 대화 중에 의중을 모르는 말이 지나가면 꼭 다시 묻는다. 어떤 의미로 말한 것인지 묻고, 대답을 들으면 의문이 해소된다. 둘 사이에 묵은 오해를 남겨두지 않는다.


 가끔은 소비나 결정에서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골랐는데 룸메는 마음에 들지 않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친구의 반대 의사가 곧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견을 존중하고 그다음 결정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서로 비꼬아 말하거나 듣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말할만한 신뢰가 형성된 것이다.


 둘 다 감성적인 것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다녀와도 기념품으로는 조각상이나 열쇠고리보다는 컵이나 차, 디저트 같이 실제로 사용하거나 먹을 수 있는 것을 사 온다. 내내 그 물건을 사용하며 여행의 추억을 곱씹는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농담을 할 때나 멍하니 있을 때 쓸모없는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묻거나 요청하는 대화는 의도를 명확하게 하고, 분명하지 않으면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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