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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Dec 03. 2020

쓸데없는 말의 대나무 숲

Part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_ 비결 _ 정서


공동생활경비구역


 서로 핸드폰으로 대화할 때 쓰는 어플이 두 개다. 카카오톡에서는 공동생활경비를 정산하고, 텔레그램에서는 쓸데없는 말을 주로 나눈다. 두 가지 대화가 섞이면 나중에 경비를 정산하기 힘드니 나누게 된 것이다.


 공동생활경비는 1원 단위까지 반으로 나눈다. 공동으로 쓰는데 한 사람이 호의로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생색을 내고 상대는 고마워한다. 예전에는 일일이 계산기로 두들겨서 정산을 했고, 최근에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경비를 정리하고 있다. 월세와 관리비는 룸메가 결제하고, 식비나 문화비, 기타 비품은 내가 결제한다. 월말에 정산해서 차액을 주고받는다.


 흔쾌히 누군가가 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반으로 나눠내는 것이 정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이다. 계산 가능한 금액은 얄짤없이 반으로 나눈다. 계산이 불가능한 노동은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따지지 않고 가능한 영역 내에서 적당히 하되, 양심은 지킨다. '내가 더 많이 내는 것 같은데?'라는 티끌만 한 불만이 계속해서 쌓이지 않도록 한다. 태산이 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말의 대나무 숲


 텔레그램에서는 정말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만나서 대화하는 것보다 이렇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화하는 내용이 더 많다. 귀여운 고양이 영상, 피식하고 웃게 되는 사진, 새로 알게 된 맞춤법 같이 별 쓸모는 없지만 기분은 좋은 것을 공유한다. 대화는 배고프다, 배부르다, 점심메뉴 추천해달라, 맛있는 거 먹고 싶다, 이따 치킨 시킬까, 역시 후라이드가 좋겠지 등이 주된 내용이다. 쓸데없는 말의 대나무 숲이다. 


 일하다가 화나거나 힘든데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을 때에도 룸메에게 보낸다. 어떨 때는 바빠서 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톡을 스무 개 서른 개씩 보내기도 한다. 당장 읽지 않아도 좋다. 읽고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 ‘저런’ ‘어휴’ 같은 답장만 와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그저 내 말을 언젠가 볼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언제든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안정감을 준다. 룸메도 힘들 때면 톡을 연달아 보낸다. 급할 땐 'ㅇㅇ'으로만 대답할 때도 있고, 서너 시간 지나고서야 답변을 할 때도 있다. 호응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어딘가 말할 곳이 필요해서 대나무 숲을 찾는다는 걸 서로 잘 안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


 여행을 떠나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019년의 봄,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 68일 동안 유럽 일주를 하러 떠났다. 볕이 좋은 테라스에 앉아 맥주 한 잔을 할 때,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 본 별이 너무 예쁠 때, 숙소의 고양이가 너무 귀여울 때, 파리 라 뒤레 본점의 마카롱이 정말 맛있었을 때, 혹시나 해서 사 본 초록색 사과가 역시나 내 취향은 절대 아닌 룸메의 취향이었을 때. 사진으로 글로 하나씩 남겼고 룸메는 한없이 그 순간들을 부러워하면서 유럽을 같이 한 바퀴 돈 것 같다고 했다. 실은 룸메 없는 방에 앉아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톡으로 풀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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