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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Dec 05. 2020

함께라서 지속 가능한 비혼 라이프

Part3. 함께 더 잘 사는 미래를 꿈꾸며


더 부지런해지는 함께 살기


 같이 살면 조금 더 부지런해진다. 혼자였으면 마음껏 어지르고 살았을 집안도 눈치를 보며 적당히 치운다. 늦잠을 자고 싶은 아침에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깬다. 퇴근하고 늘어져있는데 룸메가 산책하러 나가자고 대형견처럼 졸라대기도 한다. 룸메가 씻으러 들어갈 때가 제일 씻고 싶을 때다. 누군가 외박을 하면 남은 사람은 왠지 더 게으른 밤을 보낸다. 거실 의자에 마음껏 퍼져 있다가 피치 못할 시간이 되어서야 씻고 침대로 향한다.


 약 1년 전부터는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룸메와 나, 그리고 다른 친구들까지 합세해 단톡방을 몇 개 만들었다. 공부방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 30분 이상씩 공부한 인증을 올린다. 공부 내용은 영어, 기사, 자격증 등 모두 다르다. 종종 금토일에 몰아서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머릿속에 뭔가가 쌓이는 기분에 뿌듯하다. 글쓰기 방에서는 격주로 한 번씩 <글쓰기 좋은 질문 642>라는 책에서 랜덤으로 주제를 뽑는다. 최소 분량 A4 한 장으로, 아주 가벼운 글쓰기 연습이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을 보는 재미가 있다. 딱히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탓에 결과물은 때로는 줄글이 아닌 보고서나 시가 되기도 한다.


 함께 사는 우리 둘이 있는 덕분에 이런 스터디가 유지되고 있다. 친구들도 우리와 함께 있는 기분이라며 재밌어한다. 함께 으쌰 으쌰 잘 살아보려는 에너지가 우리를 둘러싼다. 좋은 친구는 또 새로운 좋은 친구를 데려온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주변을 메운다. 이들과 함께라면 앞으로 잘될 일만 남았다는 확신이 든다.






작가의 도자기 컵에 시리얼을 담는 어른으로 자라나


 다이소에서 가장 최선의 디자인을 찾으려 노력하던 자취 초기 얘기는 이제 전래동화가 되었다. 여행 때마다 부엌살림을 꾸준히 늘려왔지만, 본격적으로 컵을 사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봄의 유럽여행이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만난 한 편집샵을 구경하다가 알록달록한 유약을 흘러내리듯이 구워낸 컵을 발견했다. 덴마크 작가의 작품이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 두 개를 샀는데, 계속 몇 개 더 사 올 걸 후회했었다. 같은 해 가을, 동생이 유럽에 갔다. 갑자기 그 컵이 생각나 연락하니 마침 비엔나에 있고 별다른 일정이 없다는 것이다. 두둑한 운반비에 맛있는 식사를 사주기로 하고 같은 작가의 컵을 세 개 더 부탁했다.


 동생이 사 온 컵 중 두 개는 주둥이 한쪽이 뾰족해 무언가를 따르기 좋은 컵이고, 나머지 하나는 원래 갖고 있던 컵과 마찬가지로 손잡이 없는 둥근 형태의 잔이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기존의 것과 같은 사이즈인 줄 알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용량이 두 배는 됨직한 커다란 잔이었다. 찻잔보다는 고봉 밥그릇에 비견될 모양이었다. 한동안 방치하다가 어느 날 그 그릇에 시리얼과 우유를 담아 먹어보았다. 딱 알맞은 양이었다. 그 날 이후 내 시리얼 볼은 바다 건너 비행기 타고 날아온 그 덴마크 작가의 잔이 되었다.


 처음 그 잔을 시리얼을 먹는 데 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쓰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다. 예전에 건축주의 집에 가 보면 온통 예쁘고 귀한 디자인 소품들로 가득한 공간이 참 부러웠었다. 그 물건을 소유한 것 자체가 부럽기보다는 모 작가의 작품, 모 브랜드의 리미티드 에디션 등의 그 문화를 일상 속에서 향유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어느 순간 나 또한 작가의 작품에 코코볼을 담아 먹을 정도로 보통의 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깨달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도 꽤 괜찮은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의 확장 : 풍요로운 삶


 20대의 종말과 함께 연애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면서 주말에 시간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동안은 룸메와 잘 놀러 다니다가, 룸메가 없는 주말에는 다시 심심해졌다. 그래서 혼자 돌아다니기도 했다.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오면 하루를 꽉 채워 뿌듯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가족 외의 사람을 가장 가까이에 둔다는 것이다. 내 시간의 1/7, 혹은 그 이상을 할애해 상대에 대해 알아나간다. 20대 초반에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재미에 이 시간을 썼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결혼을 꿈꾸며 나와 잘 맞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으며,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룸메만큼 나와 찰떡으로 맞는 사람은 없었고, 30대가 되자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으며, 내 미래를 육아와 내조에 쪼개어 나눠주고 나머지를 커리어에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연애를 그만두자 주말, 즉 인생의 1/7이 붕 떠버렸다. 룸메와 그 시간을 꽁꽁 싸매어 둘이서만 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시작은 여행이었다. 먹는 재미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멤버는 최소 3인 이상이어야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친구를 이리저리 껴서 국내여행을 재미나게 다니기를 여러 차례,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멤버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넷이 떠나면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초면인 경우도 있었다. 제일 이상하고 재밌었던 조합은 대구 여행의 멤버들이었다. 우리 둘, 내 전 직장의 전 협력업체의 퇴사한 직원, 그리고 그 협력업체 대표님 아들의 여자 친구,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한 명. 총 5명으로 가장 많은 멤버 수의 여행이었다. 1박 2일로 맛집을 차례차례 정복하고 돌아다녔다. 밤이 되자 대구 멤버 둘은 집에 자러 가고, 서울에서 온 셋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아 신나게 놀았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만나 함께한 해장용 갈비까지 완벽한 여행이었다. 우리들은 이질감 없이 꽤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친구들을 서로 소개해주는 것은 새로운 재미다. 이 친구와 저 친구가 만나면 잘 통하겠다는 느낌이 있다. 룸메와 식탁에 마주 앉아 새해 계획을 세우며 연말에는 우리가 아는 전문직종 여성들을 모아 네트워킹 파티라도 열자고 했다.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부동산 투자 상담을 받으러 찾아간 모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소장님과 수다를 떨다가 이 계획을 털어놓았다. 부동산 소장이라면 원래 다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무려 파티룸을 가지고 있단 얘기를 들었다. 아쉽게도 곧 처분할 예정이라고 하여, 여름이 가기 전에 그곳에서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열기로 했다. 파티에 초대할 사람들의 조건은 간단했다. 여성일 것, 열정이 가득할 것, 그리고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을 것.


 그렇게 8명의 열정 만수르들이 모였다. 호스트 세 명이 다섯 명의 게스트를 모아 왔다. 공인중개사, 건축사 등의 전문직 3명, 디자이너 2명, 그리고 작가, 에디터, 애니메이터 각 1명. 책이라도 한 권 뚝딱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조합이었다. 식순도 짜 왔다. 각자 자기소개부터 열정으로 쌓아 올린 전문성이 가득 차 있었다.


 가을이 되자 모임 멤버 중 두 명이 각자 책을 냈다. 또, 출판을 준비 중인 멤버가 둘이었다. 원래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 책을 이렇게 많이 내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주변에서 책을 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출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즉 기획, 초고, 퇴고, 디자인, 인쇄, 등록, 마케팅 등의 과정을 단계별로 세세히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모임에는 넘쳐났다.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와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았다.


 갓 사회인이 되었을 때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근사한 사람 옆에는 마찬가지로 근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유명 건축가 옆에는 유명 셰프, 방송인, 작가가 있었고, 멋진 선배 언니 옆에는 멋진 작가, 에디터, 예술가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전시나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도 했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모임을 가지면 참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이상적인 미래의 삶이 어느새 현재가 되었다. 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전문 인력이 되었고, 친구들도 성장해 근사한 커리어가 생겼다. 함께 성장해온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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