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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Nov 21. 2020

서로 다른 분야에서 까다로운 사람들

Part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_ 다름

썬파워 대 문파워


 아침에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탄은 시대에 따라 말이 바뀌어왔다. 2000년대에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새벽공부나 새벽기도는 정성의 상징이었으며, 최근에는 자기 계발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라클 모닝이 퍼지고 있다. 정말로 아침에 일찍 일어난 사람은 밤늦게 깨어있는 사람보다 생산성이 좋을까?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 편이다. 한때는 새벽에 헬스장에 들렀다가 회사에 출근할 정도였다. 지금도 일주일에 며칠은 이른 아침에 현장으로 바로 출근하는 삶을 산다. 새벽 기상은 나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아침에는 영원히 움직일 것처럼 돌아다니다가, 정오가 지나면 집중력이 서서히 떨어지다가 밤 열 시가 넘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해가 떠 있을 때만 에너지가 있다고 해서 썬파워(sun power)라고 부른다.


 반대로 룸메는 문파워(moon power)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회사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일 정도다. 퇴근하고 지친 내가 먼저 안녕, 하고 자러 들어가면 밤새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있다. 둘 다 카페인에 취약한데, 룸메가 저녁에 커피를 마시는다는 것은 그날 밤에 기필코 해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뜻이다. 가끔 아침에 룸메를 깨우기 위해 이 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를 오디오로 틀어놓는다. 그나마 덜 괴롭게 일어나는 방법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와의 기억이 좋지 않은 친구들 중 많은 수는 생활리듬의 차이가 괴로웠다고 한다. 우리도 원룸에 살았던 1년 반 동안은 괴로웠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분리형 원룸으로 이사 가고 나서 아주 만족스러워졌다. 룸메가 잠들어있고 혼자 깨어나 움직이는 그 시간은 안정감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꿈과 같은 시간이다. 다행히 룸메는 아침 소음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편이다. 나는 저녁에 가벼운 운동을 하면 곧장 기절한다. 정 불빛이 신경 쓰이면 수면안대를 하거나 문을 닫고 잠든다.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더 안심하고 잠들 수 있으니 한 명이 깨어 돌아다닌다 한들 큰 걸림돌이 될 리 없다.


 룸메가 외박을 하는 날은 나도 어쩐지 한껏 게을러진다. 먹은 걸 치우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새벽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는 날도 있다. 신기하게도 룸메도 그렇다고 한다. 재작년에 홀로 두 달간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룸메는 최고로 게으른 두 달을 보냈다고 한다. 역시 상대가 있어야 부지런해지는 모양이다. 룸메가 씻으러 들어가는 순간에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최고점을 찍는다. 가끔은 씻으러 들어가는 뒤통수에 대고 먼저 씻어서 좋겠다고 부럽다고 외치면서 더 드러눕기도 한다. 물론 순서를 양보해도 사양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뽀송하게 씻는 저녁이 된다. 썬파워와 문파워가 함께할 때 생산성은 배가 된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까다로운 사람들


 "둘 다 고집이 세지 않아서 안 싸우는 것 아닌가요?"

 우리 둘을 최근에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조심스럽게 꺼낸 한 마디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3초 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뇨, 둘 다 고집 엄청 세요. 근데 다른 분야에서 세요."


 한 시간쯤 후에 귀가한 룸메에게 이 친구가 한 질문을 다시 들려줬더니 똑같이 3초간 말이 없더니 나와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둘 다 센데 고집하는 분야가 달라요."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주방이 깨끗한 것에 대한 고집이 있다. 항상 설거지가 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완벽하게 정리한 상태는 보기에 좋아야 한다는 고집이다. 그리고 그 고집의 기준은 내가 정리했을 때에 한정되어 있다. 룸메가 주방을 정리한 것이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를지라도, 나 대신한 것이니 고마운 일일 뿐이다. 나중에 쓱 가서 도와주면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정리해 놓는다.


 멋진 잔과 그릇에 차려 먹는 식사의 즐거움을 깨달은 이후로는 여행을 다녀오면서 하나 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비엔나의 어느 편집숍에서 멋진 도자기잔을 샀다.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룸메 취향은 아니었나 보다. 내 마음에 들면 사는데 자긴 좀 아니란다. 이렇게 빛깔이 고운 친구인데 별로라니! 잠깐 동안 속상했지만 내 취향이니 소신껏 질렀다. 귀국하고 그 잔을 부엌에 들인 지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정이 들었나 보다. 티타임에 종종 그 잔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룸메는 음악에 대한 고집이 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거실에 TV 대신 오디오를 놓았을 정도다. 좋아하는 톤으로 오디오를 세팅하고는 뿌듯해한다. 새로 알게 된 좋은 음악이 있으면 꼭 나한테 들려준다. 사실 난 음악을 집중해서 쭉 듣는 편은 아니라서 흘려듣지만, 들려주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에 오마이걸 유아의 솔로 앨범이 나왔는데, 앨범 중에 룸메가 좋아할 곡을 단번에 골라낼 수 있었다. 삐용삐용한 전자음이 취향인 모양인데, 처음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점점 듣다 보니 좋아져 요즘은 찾아서 듣고 있다.


 나는 그때그때 듣고 싶은 음악의 폭이 넓은 편이라 어느 날은 설거지 BGM으로 1910년대 가요를 틀기도 하고, 어느 날은 티타임 용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곡을 틀기도 하고, 또 한여름에 시원해지라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기도 한다. 룸메는 내가 튼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어 곡 정도 참고 있다가 다른 노래 틀어도 되냐고 묻는다. "노"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큰 의미를 두고 틀지는 않기 때문이다. 차를 사고 나서 함께 드라이브를 나서면 룸메에게 선곡을 맡긴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꽤 근사한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져 있다.






서로 달라도 룸메로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리스트


식성 : 같이 살아도 둘 다 직장인이라면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많지 않다. 주중에는 퇴근시간이 달라 저녁을 따로 먹고, 주말에는 외식이 잦다. 같이 먹는 음식의 식비는 나누고, 따로 먹는 음식의 식비는 각자 결제한다.


성격 : 다른 성격이라면 나의 단점을 보완해줄 것이고,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면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야 오히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생활습관 : 누군가는 행주를 짜서 놓고, 누군가는 펴서 널 것이다. 백 개의 집이 있다면 백 개의 규칙이 있다. 어차피 습관은 다르니 합리성을 생각해서 하나하나 맞춰나가면서 우리 집만의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보자.


취향 : 물건의 양이라면 맞춰가기 어렵지만, 취향은 의외로 쉽다. 일시적인 유행에 따르지 말고, 오래 쓸 수 있는 가구와 물건을 산다. 클래식한 디자인이 곧 친환경이라는 말을 되새기자. 한번 집에 들인 물건은 쉽게 나가지 않으니 잘 고민하고 상의해서 산다.


(번외) 미니멀 라이프 vs맥시멈 라이프 : 집 전체를 공동으로 쓰기 위해서는 취향보다는 물건의 양이 비슷한 것이 중요하다. 만일 개인이 가진 물건의 양의 차이가 크다면, 공용공간은 그때그때 치우기로 약속하고 방은 따로 쓰기를 권한다. 하우스메이트로는 괜찮지만 룸메이트로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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