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록 #2025년12월

고생했다

by 마니

1. '고생했다'는 한마디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가 있다. 한 회사에서 25년 동안 영업부서에 일하며 임원승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부장의 이야기다.


임원승진에 실패하고 지방으로 발령 받아 다시 본사로 가려고 발버둥 친다. 결국 퇴사를 선택하고 25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한다. 짐을 들고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김백수 씨'라며 놀린다. 그리고 이내 두 팔을 벌려 안기라는 몸짓을 하며 '고생했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나와 아내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났을까? 회사생활 하며 애쓰는 김부장에게 공감해서 그랬을까? 언젠가 나도 김부장 차럼 회사생활에 마침표가 오겠지? 하는 생각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드라마에서 '고생했다'는 단순하게 은퇴를 위로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다'라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옆에 있는 당신 자체가 고맙다'는 표현 아니었을까 싶다.


사회초년생 때는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가슴을 뜨겁게 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김부장 이야기'가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2. 그 사람의 마음에 귀 기울이기

어느 날 저녁을 뭐 먹을지 아내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침에 '어묵국수'를 먹자고 했었지만 아내는 저녁이 되자 '자극적이거나 매운 음식'이 땡긴다고 했다.


빠르게 배달앱으로 메뉴를 찾았다. 운 갈비찜이 생각이 났고 가게를 검색했다. '짚신 매운 갈비찜'을 종종 시켜 먹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먹어 보지 않은 다른 가게들은 맛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고민하는 나를 본 아내는 '저녁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메뉴를 골라'라고 했다.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배달앱에 나오는 가게를 네이버 블로그에 검색도 해보며 '옛촌매운갈비찜'을 주문자고 했지만 아내는 '맛없어 보여'라고 했다.


빨리 주문하지 못했다는 마음과 제안한 메뉴가 거절당하자 더 초조해졌다. '빠르게 메뉴를 골라'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그럼 그냥 어묵국수 먹자, 내가 마트 가서 어묵 사 올게'라고 말하고 아내의 답변은 듣지 않고 나갔다.


내가 어묵을 사 오자 아내는 말없이 어묵국수를 끓여주었다. 내 몫의 1인분을 해서 내주고 아내는 다른 음식을 하고 있었다. 감정이 상한 나는 ' 왜 따로 먹냐고' 한 뒤 그냥 우걱우걱 국수를 먹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맵고 자극적인 게 먹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운갈비찜'은 별로 땡기지 않아 싫다고 했고 그러면 내가 다른 음식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 걸음 뒤에서 보니 아내도 당황하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음식이 싫다고 했을 뿐인데 갑자기 나가서 어묵을 사 온다며 나갔으니 말이다. 거절당했을 때 '그럼 다른 매운 음식 한번 거 찾아볼게!'라고 했어야 했다. 아내의 마음에 더 귀 기울여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3. 직장에 마음 터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오랜만에 친한 직장 동료들끼리 모임을 가졌다. 모두 현재 직장에서 처음 만난 6명의 사람이다. 처음 시작은 술을 즐길 것 같은 사람끼리 서로를 알아봤다. 한 번 두 번 술자리를 가지다 보니 어느새 친한 동료가 되었다.


2명은 현재 이직해서 각각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6명이 다 함께 모이는 것은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모여도 어제 만난 사람인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좋은 직장이라고 하려면 여러 가지 요소가 있고 사람마다 우선순위도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중에서 중요한 요소 하나는 사람인게 분명하다.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소소한 것부터 커리어 고민, 일상의 고민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 없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 좋게도 현 직장에서 마음 터놓는 몇 명에 사람을 만나서 좋다. 술도 마시고 시답잖은 수다도 떨면서 서로 의지 할 수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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