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力을 넘기며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았다.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누가 봐도 그곳은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나 없는 곳에서 그들과 비교당했을 것이 뻔하다. 사실 나는 비교군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기회였으니 나는 누가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3번 면접자이겠지.
밖에서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월등했다며? 그 순간의 장악력이나, 그동안 살아왔던 배경에서나.
그랬지
그 나이에 거래처 사장과 그렇게 잘 아는 사이일 수는 없으니 말이야. 더군다나 업계의 역사까지 막힘없이 꿰고 있었잖아. 해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혜성처럼 실무자들을 캐묻고 다녀서도 나오지 않던 정보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더라고. 거기는 너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어. 왜 지원한 거야?
그러게. 왜 지원한 거지? 기원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착잡하진 않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너무 시끄럽네. 좀 닥쳐봐.
나는 새어 들어오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집 밖으로 나왔다.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젖은 공기의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어느덧 어두워져 있었고, 누가 말을 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했다.
헛소릴 들은 건가 하고 다시 돌아섰을 때, 다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머리 위에서 들려온 게 뻔했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니 사포지 같은 밤하늘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늘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가 보여?
보이긴 뭐가 보여, 평소에 매일 보던 밤하늘이고. 평소보다 밝은 것 같네
커다랗고 하얀 달 하나밖에 안 보이지? 사실 저 녀석 말고도 밤하늘엔 빛나는 광원이 많단다. 그리고 더 재밌는 건 희뿌옇게나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많아. 그리고......
나도 알아. 그건 더 어렸을 때 충분히 배웠어.
그리고 저 별거 아닌 별 사이에서도 누가 더 빛을 강하고 아름답게 발하는 별들이 또 있거든?
정말 별 볼 일 없는 별들 사이에서도 말이야. 걔네들한테는 따로 이름도 있어. 여기 중심에 발 딛는 수많은 관측자들이 모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거지.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각자의 그릇에 따라 절대적인 차이는 있어. 푸른빛을 내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억울해하지 마. 얘네들은 소멸하기 직전에는 말이야, 생에 가장 밝게 발한단다.
달리 말하면, 평생을 어둠 속에 살면서 한 번은 그 시점에 누군가는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그때 달이 그 앞을 가리면, 별 수 없지만 말이야
지구는 돌지 않는다.
나도 천구에 붙은 미명들을 다 걷어버리고 싶어졌다.
소리를 밖에 혼자 남겨두고 나는 몰래 들어오기로 했다.
2025년, 달力이 또 달력을 넘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