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닭장에 들어간 진욱은 한숨을 내뱉으며 죽은 닭을 꺼냈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 철저히 준비해 야심 차게 실천한 귀농이었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 신입 시절에 연 마감 실적을 나 혼자 펑크 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심적 괴로움이 찾아왔다.
‘원인을 모르겠네’
진욱은 죽은 닭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죽어 있던 녀석은 털이 조금 빠져 있었지만, 큰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명체 특유의 떨림만 있다면 졸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닭 사체를 한 손에 든 채로 앞뜰로 갔다. 창고에 기대어져 있던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귀농해 닭을 치기 시작한지 일주일째로 벌써 닭 무덤이 세 개나 생겼다.
진욱은 10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퇴사하고, 아내를 설득하느라 온 에너지를 쏟았다. 그는 회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지금보다 못한 환경에 아내를 두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공표하였으나, 지방으로 내려오자마자 이렇게 가계에 손해를 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향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욱은 허리를 펴고 전원주택을 주시하며 몸서리쳤다. 자신 때문에 새로 지방에서 직장을 구해야 했던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왔다. 아내는 가뜩이나 벌레를 무서워해 시골로 가기 싫어했었는데 진욱도 행동해야 했다.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하겠어’
진욱은 쑥스럽지만 당장 마을회관으로 가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귀농을 결정하고 나서 인터넷 커뮤니티, 기사에서 봤던 글들 때문에, 진욱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인터넷은 진욱에게 원주민들의 텃세나 마을발전기금 강요 등의 부조리한 상황을 자극적으로 경고하였다.
전원주택을 매입하여 내려오던 날, 그 모든 걱정은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은 친절했고, 젊은 사람이 왔다며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의 속내를 모르기에 마음의 문을 걸어두어야 했다. 특히 처음에 마을회관에 와서 잔치를 벌여야 한다고 했을 때는 터를 잡지 못할 만한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움이 절실했다.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은 분명 아름답다. 종종 주말에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와 구경했던 풍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만큼 사람보다는 경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 없는 콘크리트 길 가장자리에 과실수가 심어져 있었고 콘크리트 아래로 이어진 논길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다 보면 하늘과 닿아있는 미루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 있으면 벼락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진욱은 걸음을 옮겼다.
마을회관은 조용했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한가운데 TV를 보며 이장과 친구들이 낮술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벌써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장님”
“어~ 빨리 와서 앉어~”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이장은 친구들과 껄껄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온 젊은 친구 구만, 와서 한잔 받고 혀야지"
진욱은 자리에 앉으며 놋그릇에 막걸리를 받아 한 입에 삼킨 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꾸 닭이 죽는다고? 거 여기선 여우나 부엉이가 물어가기도 하는디, 문을 꼭 잠가놔야 혀”
“그 뜻이 아니고요, 닭장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파먹은 흔적이나 상처도 없고요”
“그려? 내가 한 번 가서 보고 와야지”
이장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이 친구 집에 갔다 올 테니까 더 먹지 말고 남겨놔”
“보니까 이 친구 집이 저 위에 있지? 아직 아무도 못 본 거 아녀?”
“내가 닭만 30년을 쳤는디 딱 보면 알어 죽은 건 어디 있는겨?”
“땅에다 묻어놨어요”
진욱은 이장을 대동하여 마을회관을 나섰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욱의 집은 생계를 위해 일터와 가까이 지은 집이 아니라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기 위해 높은 위치에 지은 집이었다. 나이 든 노인들이 가려면 꽤 힘들 텐데도 선뜻 호의를 베푸는 모습에 진욱은 감동하여 그동안의 경계심이 일순간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10년 간의 영업 현장에서 마주한 거래처 사장들과 분명 친하게 지내고 있었으나 각자의 이해관계는 다른 방향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블러핑을 습관으로 들여왔다.
“아직 멀은겨?”
“저 콘크리트 길만 따라서 올라가면 됩니다.”
“어디 있는지는 내가 알어, 그냥 따라오기나 혀”
어느새 이장이 앞장서고 있었다. 진욱과 아내가 귀농한 것에 관심은 있었으나 배려로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다 왔습니다.”
“저런 집이 우리 마을에 있었나, 영화에서 보던 집 같구먼”
진욱은 앞뜰에 묻힌 닭을 꺼내 이장에게 보였다.
“이것 참 몸에 생채기는 좀 있는디, 어디 이거 때문에 죽은 건 아닌 거 같은디, 닭장은 어디 있는 겨”
“집 뒷마당에 있습니다.”
“좀 보자”
진욱은 닭장으로 이장을 안내했다.
“아니! 이 이 양반아”
이장이 소리쳤고 진욱은 눈을 끔뻑거렸다.
“요만한 데에 이렇게... 닭을 이렇게 많이 넣어두면 어떡햐! 봉다리에 구슬모아 놓는 것도 아니고, 참”
이장은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이렇게 놔두면 다 죽어, 도시에서 와서는 처음이지? 얘네들도 다 자기네들 뭐 하는 공간이 비어 있어야 혀, 이거 이렇게 놓다가는 싹 다 죽는다. 지네들끼리 자리 차지한다고 쪼고, 죽이고 한다고”
“이게 너무... 많았나요?”
“정도라는 게 있어야지 이 사람아! 내가 낼 자리 넓히는 거 도와줄 테니까, 일단 절반은 빼놔! 알았지?"
이장은 닭장 기둥 끝에서 사방으로 몇 걸음 가늠한 다음에 선을 길게 그었다.
“자 봐봐, 닭 이만큼 칠라면 이 정도 공간은 있어야 한다고,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가둬놓으면 안되는겨, 얘네들도 숨 좀 돌리게 해야지, 서로 이렇게 두면 되나. 남는 자리다 뭐 한다고 이렇게 좁혀놨디야”
“저 여기에다가는 매실나무 좀 심어보려고 했습니다”
“생각을 좀 혀, 술 깨기 전에”
이장이 어이없어하며 진욱의 등을 두드리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처음이라 그래”
진욱은 이장이 걷는 방향으로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진욱은 한참 이장의 뒤통수를 바라보다가
뒤로 늘어진 그림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각, 한 무리의 벌떼가 처마 밑 벌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