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In도 표류기
정말 오랜만에 서신을 드립니다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며 제 진심에는 변화가 없음을 알아주십시오. 그러나 저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감안하여 주시고 말미에는 그에 따른 질문이 있으니 동포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내가 백여 일 정도 표류했을 당시의 일입니다.
반제동맹에서 발각된 이후, 북해도로 잡혀온 이야기는 이미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 그들은 매일 나를 고문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내 몸뚱이를 두드리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 나날이 지속되어도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더군요. 저보다 먼저 잡혀간 선배들과 동지들을 생각하면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소득이 없자 그들은 질색하며 나를 강제 징용소에 가두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군수공장에서 족쇄를 찬 채 하루 열여섯 시간씩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지만 폭언이나 구타는 견딜 만했습니다. 일본 욕은 이상하게도 별로 무섭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허기였습니다. 내가 매일 꽉 조여 매던 나사처럼, 내 위장도 누군가가 틀어쥐고 조여매는 듯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말라빠진 소금밥을 한 입 씹을 때면 마치 누가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킨 것처럼 눈이 감겼습니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빡였다고 느낀 찰나에, 눈을 뜨면 나는 다시 내 작업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곳을 탈출하리라는 희망이 제 몸을 움직였습니다. 함께 잡혀온 동지들과 매주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으니까요. 그들 중 몇은, 더는 나사를 조이지 못하게 되었지만, 곧이어 다른 손들이 그 자리를 메웠습니다.
내가 부산부 출신이라는 것을 일전에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래 봬도 수영에는 자신이 있고, 해안가 생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바다에는 주워 먹을 것이 많습니다. 갯강구를 구우면 새우와 비슷한 맛이 나죠. 그래서 어느 날 밤,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무작정 해안가로 향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들을 미리 주워 두었다가 숙소에서 가스불에 구워 먹을 심산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열두 명의 징용자들을 감시하던 타니무라 중사와 감시관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틈을 타 기숙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놈들도 북해도 출신이 아닌 듯했습니다. 날이 그리 춥지도 않은데, 밤만 되면 오들오들 떨다가 실내로 돌아가 난롯불만 쬐면 고개를 떨구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놈들은 곧바로 나를 잡으러 달려왔습니다. 여기서 붙잡히면 족히 이레는 먹이지도 않고 두들겨 맞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죠. 마침 근처에 포신을 나를 때 쓰던 목재 받침대가 있어, 그것을 붙잡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수온은 그렇게 차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굶주림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입천장이 바싹 마르는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얼마 못 가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나는 아주 아름다운 섬에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처음에는 삼도천을 건너 도원에 닿았다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섬에는 초록빛 수목이 가득했고, 과수의 가지 사이사이에는 이름 모를 붉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젖 먹던 힘을 쥐어짜 푸른빛의 언덕을 기어올라 나무에 열린 과일을 정신없이 삼키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닷새들이 나무에 함께 몰려들어 있었고, 녀석들 역시 이 과실을 통째로 삼키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읽은 바로, 이 새들은 사할린에 가득한 도요새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여기는 아마도 북해도와 사할린 사이에 있는 작은 섬 중 하나일 테죠. 나는 정신이 팔린 한 마리를 잽싸게 붙잡아 목을 비틀었습니다. 놈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다행이었죠.
저는 해변에서 날카로운 돌을 찾아내 녀석의 배를 갈랐습니다. 내장을 제거하고 바닷물로 피와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놈의 위장 속에 좁쌀만 한 검은 알들이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몇 마리는 벌겋게 드러난 몸체를 꿈틀대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체를 바다에 내던졌습니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문명인들이 야생동물을 잡아먹지 않는 이유는 기생충 때문이다.]
그러나 새를 제외하고도 섬에는 수많은 열매들이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배를 채운 뒤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둘레가 이백 리쯤 되는 섬에는 인적은 전혀 없었고, 그렇게 며칠을 지냈습니다. 동문들과의 치열한 경쟁도 없었고, 나를 계속 다그치는 그 생산 공정도 없었습니다. 햇살은 너무나 따스했으며 싱그러운 바람은 내 지친 심산을 매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해가 지면 언덕에 몸을 뉘어 끝도 없이 펼쳐진 미리내를 보다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던 교우가 넌지시 알려줬던 별을 헤던 시를 한 번 읊어보기도 했습니다. 언제 잠든 줄도 모른 채 늘어지게 자다가, 배가 고파 눈을 뜨면 도원경의 복숭아처럼 주렁주렁 열려 있는 열매를 따 먹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저 바닷가의 새들이 지저귈 때마다 제 머릿속에서는 그 알집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내 눈으로 그것을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나는 다시 새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서였죠.
새의 위장을 깨끗이 꺼내 조심스레 닦은 뒤 면밀히 관찰해 보니 내가 그동안 먹어온 붉은 열매가 소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거무튀튀한 작은 알들이 뒤섞여 있었죠. 몇 차례의 해부 끝에 나는 그것들을 ‘삭기(削器)충’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생물의 알을 밴 어미는 과실처럼 보이는 붉은 몸으로 일부러 새에게 먹힙니다. 새들에게는 그 통통하고 붉은 몸뚱이는 그 달디단 열매처럼 보입니다. 새는 통째로 먹이를 삼키기에 어미와 알들은 무사히 위장으로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모체의 육신은 위산에 녹아내려 알에 영양을 공급합니다. 알은 산성 속에서도 소화되지 않고 버티다 창자를 타고 이 과수원 근방에 안전하게 배설됩니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들은 새의 배설물 속에 남은 어미의 살점과 알껍질을 먹고 영양분을 채운 뒤, 다시 수관으로 기어올라 어미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죠. 순환의 주기는 한 달 정도면 족합니다.
그 부풀어 오른 암컷의 탐스러운 몸뚱이는 가끔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저 열매와 비슷한 맛이 날까? 그러나 처음 보았던 검붉은 좁쌀 같은 알을 함께 삼키게 될까 두려워, 입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새에게 먹히지 않은 상태로는 보름이 지나더라도 알이 부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성충의 복부를 갈라보니 그 알들은 전혀 부화하지 않더군요. 아마도 암컷의 자궁에 든 수컷의 정자는 새의 위장처럼 따뜻한 환경이 아니면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듯합니다.
모체가 스스로 먹혀 죽지 않으면 자녀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계의 순환은 마치 내가 노역하던 공장의 나사와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였습니다. 이 미물의 모체는 훗날의 자손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관찰하며 대학에서 들었던 국가관 수업과 생물학 수업을 떠올렸습니다. 오래된 것은 쇠하고 젊은것의 양분이 되어야 한다. 이 지능 없는 미물이 마치 제국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정확히 이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수업을 하던 일본인 교수 역시 자국의 명치유신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양식 양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머리를 짧게 깎은 노신사였죠. 그는 자신이 남은 여생을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업을 이어갈 재목으로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오쯤 수업을 마치면 항상 나를 교수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사 먹였습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김 군, 변화를 잃은 노욕은 암의 형태가 되어 군집을 죽이는 걸세.’
조업에 나섰던 부모님을 일찍이 바다에 잃은 뒤, 나는 경성에서 그를 의견이 조금 다른 아버지처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지만 부모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식이 독립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작은 삭기충부터, 저를 지나, 국가까지도 말이죠.
몇 달 동안 그렇게 새와 벌레를 관찰하며 지내던 중에, 우연히 양인들이 배를 타고 섬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양인들은 막 나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지더군요. 인디펜던스, 독립이라니요? 맙소사. 드디어 우리가 비밀리에 해온 일들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까?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이라는 단어를 대장님이나 동포가 아닌 양인들에게 인디펜던스라는 외국어로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일본인 교수와는 확연히 다른 발음입니다. In-dependence, 그런데 왜 디펜던스라는 단어가 어근이라는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음매에서 자꾸 붉은 나무 열매와, 반쯤 녹은 성충의 시신과 함께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그 검은 알집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지금 나는 철제 의자에 앉아, 북해도 공장의 숙소에서와 똑같은 자세로 있지만, 이들은 나를 고문하거나 겁박하지 않습니다. 표정과 손짓을 보아하니 곧 통역사가 올 모양입니다. 나는 곧 대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살아남은 저희에게는 조국의 품에서 재회할 날이 멀지 않았군요. 이만 편지를 줄이겠습니다.
추신:
그런데 대장님,
대한이 독립한 지금,
나는 이제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추신2: 제가 그동안 보아온 그것들은—정말 자살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