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라마

停景

by 일요일의 조작가

소나무 장작이 불에 그을린 향을 맡으며 잠시 기다리자 대문이 열렸다. 나와 황 기자는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앞에는 백발을 뒤로 묶은, 마른 체형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꽤 키가 컸으나 계속 흐느끼며 몸을 떨다가 겨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이곳입니다. 선생님들, 이곳이요.”


정원석이 군데군데 박힌 길을 따라 단층의 고풍스러운 목조 주택으로 들어섰다. 정원수들이 정갈하게 가지런히 서 있었다. 흰 자갈이 발끝에서 바스락거렸다. 마치 동양화 속의 서양식 정원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나무의 향기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그러나 집주인은 정 반대의 상태였다. 그는 거실에 우리를 앉으라고 권했다. 카시나 소파에 앉아 앞의 티테이블을 바라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세 개 놓여있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으나 그는 계속 서성이며 계속 한 쪽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겨우 진정시키고 소파에 앉혔다. 뜨거운 차를 두 손에 쥐여주니 그의 흐느낌이 조금 멎어든 것 같았다. 그러나 손에 든 찻잔과 잔받침에서는 아직도 도기와 도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소식을 전하려는 휴대폰처럼 찻잔을 바들거리며 들어올렸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깊게 숨을 내뱉은 뒤 그는 입을 열 수 있었다. 황 기자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는 디오라마를 좋아합니다. 아십니까?”

“레고나 피규어 같은 것 아닌가요?”


그는 차를 몇 모금 더 홀짝였다.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점토로 된 人形을 좋아합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플라스틱 모조품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가 사진 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듭니다. 시간을 박제한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전부 다 제가 만든 것입니다. 저기 있는 것들은.”


그의 손짓을 따라 우리는 그가 내내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방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점토 인형이 가득했다. 광대가 찢어질 정도로 불거진 피에로, 손에 풀피리를 쥐고 언덕을 내려가며 울고 있는 목자와 양떼, 황금빛의 광활한 밀밭과, 밀짚모자를 쓴 농부, 쟁기를 끄는 힘찬 황소까지, 각양각색의 점토 인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창조물들은 투명한 유리 케이스에 담겨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내가 손짓하자 황 기자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녹음을 시작했다.


“계속해 보십시오.”


그는 여전히 손을 떨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제가 만든 것들을 모두 외우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이 찻잔도 제가 만든 것이죠.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이것들은 잘 팔리지 않습니다.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지요. 하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달랐지요. 그놈의 싸구려 플라스틱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실 흙에서 나온 것이 맞습니다.”


나는 그의 표현이 중의적이라 느껴졌으나 그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내 인내의 대가로 그는 이어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시선을 진열장으로 옮겼다. 우리의 시선도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양 벽면을 가득 메운 투명한 유리 진열장에는 화려하면서도 투박한 삶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은 정지된 진열장에 있었지만 생생한 표정과 몸짓 덕에 마치 금방이라도 재생될, 일시정지된 영상 화면같았다.


“도예를 50년째 해왔지만 이렇게 일이 없었던 적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취미삼아 하나 둘 만들다 본게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정확히 기억합니다. 여기에는 삼백 두점의 인형이 있고 바다와 습지, 숲과 사막, 해변과 산맥까지 있습니다. 그들의 직업, 이름 하나하나 전부 제가 붙인 것입죠. 그리고 적절히 녀석들을 배치했습니다. 이들의 표정하나하나, 제가 흙으로 이들을 빚을 때부터 정확히 계산해둔 것입니다. 인형의 키, 체형, 표정부터 어디에 둘지, 어떤 직업을 줄지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남쪽 진열장 위에서 맨 위층, 좌측에서 두 번째를 보시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왕관과 이기지도 못할 큰 망토를 두른 어리석은 왕이 있습니다. 저 녀석은 신하 하나, 백성 하나 없이 저 고즈넉한 고성을 지키며, 착각 속에 박제될 운명으로 정해졌죠.”


우리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거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름다운 무늬의 커다란 도자기가 복도를 따라 진열되어 있었고, 방을 나서자마자 점토 인형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더니 숨을 급하게 삼켰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제가 모르는 한 놈이 있습니다. 분명 제가 만든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그놈이 매일 저를 쳐다봅니다. 저 점토 인형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들은 본인의 일에 아주 충실한 놈들입니다.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 위의 어부는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그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고, 뒤편의 갤리선에서는 항해사가 해도에 정신이 팔려있죠. 해변가에서는 조개를 줍는 아이가 있고 울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넓디넓은 세상에 단 한 놈뿐입니다. 일없이 저를 응시하던 놈은요!”


그는 티테이블을 쾅하고 내리쳤다. 순간 놀란 황기자가 녹음기를 떨어뜨렸다. 그가 도예가의 눈치를 보며 카펫 위에 떨어진 펜 모양의 녹음기를 주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십니까? 인형 하나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아주 가끔 주문이 들어오는 접시를 빚는 와중에도 그것을 굽는 와중에도, 그리고 포장하여 고객에게 내드리는 중에도 말입니다. 그 눈빛은 아주 소름끼칩니다. 마치 그 낚싯바늘 같은 눈빛이 내 대뇌를 비집고 들어가 두개골의 내벽을 긁어내는 느낌입니다. 왜 놈은 나를 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나를 보는 걸까요? 내가 70년간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정해진 장소에서 정지된 표정으로 고정된 행동을 해야하는 인형들 중 하나가 말입니다. 몇 날 며칠 동안 저는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눈을 좀 붙이려는 순간마다 그 눈빛은 눈꺼풀 안에서도 저를 주시하고 있죠. 아내가 아들놈을 두고 집을 나가버렸을 때에도 잠을 자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그때 녀석은 열 살이었죠. 엄마가 집을 나간 뒤에도 내게 말 한마디 없이 흙장난만 하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슬퍼하며 술로 밤을 지새운 적은 딱 하루뿐이죠. 저는 아내만큼이나 제 직업을 사랑했으니까요. 그러나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되짚어봐도 저는 저 인형을 만든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저는 망가진 몸과 정신때문에 결국 망치를 들고 놈의 머리를 내리쳤어요. 산산조각이 나더군요. 그런데 혹시 아십니까? 원래 상통(santon) 인형은 빵으로 만들어졌다는 걸요. 저는 분명 도기를 빚는 놈이올시다. 그래서 제 모든 작품은 흙으로 빚었죠. 그런데 녀석은 안에 딸기잼을 넣어 구운 빵처럼 터지더군요. 머리가 깨져버렸는데도 그 놈의 눈깔은 저를 그대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의 깜박임도 없이…!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온 몸이 땀으로 축축하고 팔은 좀 저렸지만 제 마음은 홀가분해졌죠.”


그의 눈은 장작이 타오르듯 서서히 벌개지고 있었다. 황 기자가 바싹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날에는 그래도 푹 잠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아… 제가 너무 오만했던 것일까요? 제가 교회를 구워내고 덧칠을 마무리할 때였습니다. 색을 입히는 도중에는 목사를 구워내고 있었죠.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은 무엇보다 마음을 포근하게 만듭니다. 목사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길잡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목사가 없다면 제가 더 만들어낼 신도들도 무의미해지는 것이죠. 그들을 위해 저는 화구에 있는 장작을 보충하러 일어섰습니다.”


황 기자가 또 다시 펜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교회를 두려고 비워둔 공간에 그 놈이 뻔뻔스럽게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명 내가 어제 박살을 내버렸는데요. 놈의 표정도 어느새 바뀌어 있었습니다. 표독스러운 눈을 한 채로 저를 노려보며 입꼬리는 한 쪽을 치켜올라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비웃는 것처럼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분명 놈은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피스 디오라마를 제작할 때 만들었던 원 사원인줄 알았었습니다. 전혀 아니죠. 원 사원은 키가 멀대같이 크고 남색 넥타이를 한 다부진 청년이니까요. 그대로 방을 헐레벌떡 빠져나왔습니다. 이불 속에 숨어 ‘무언가 잘못 봤겠지’라고 억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다시 교회를 들고 방을 돌아가보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흰 토가를 걸친 녀석이 진열장 맨 상단에서 턱을 괴고 앉아 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하는 사람’이 눈을 들어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진열장이 지옥의 문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생산적인 진열장에 없는 직업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저는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도 모르면서 그대로 기절해 버렸습니다.”


황 기자가 불현듯 내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것같았으나 나는 손짓으로 그를 제지시켰다. 그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나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어 건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까요.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가져온 교회는 눈 앞에서 처참하게 깨져 있었습니다. 저는 제 몸보다 목사와 신도들이 걱정되어 진열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이번엔 놈이 작업복을 입고 앉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닳아 빠진 빨간 옷에 얼룩진 청색 앞치마를 걸친 모습으로요. 그는 제가 만든 가마 앞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한껏 꺾어 제 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벌개진 눈으로 입을 벌린 채 내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처럼 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를!”


그의 열기와 반대로 찻잔은 어느새 식어 더 이상 김이 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그를 따라갔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좌측으로 돌았다. 보일러가 기름내가 진동하는 곳을 지나 우리는 뒷뜰의 커다란 흙가마로 향했다. 그의 몸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저는 생각했죠. 이놈을 다시 가마에 구워야겠다고. 그것은 일반적인 화구에서는 낼 수 없는 온도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880도까지 가열해야만 이들이 정지됩니다. 그보다 약하면 인형이 굳지 않고, 강하면 깨지죠. 저는 진열실에 있기만 해도 뒷뜰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온도계의 눈금을 읽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제 공방에 움직이는 것은 저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는 커다란 가마 옆에 가지런히 쌓인 장작을 하나 집어들었다. 잘 정돈된 장작들 사이로 청색 앞지마와 검붉은 체크무늬 옷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는 흐느끼며 한 손으로는 얼굴을 부여잡고 부들거리는 손가락을 들어 벽을 가리켰다.


“이 가마 뒤에는 제 진열장이 있습니다. 그놈이 더 나타나지는 않지만 저는 무서워서 더 이상 열어 볼 수가 없습니다.”


나와 황기자는 서로 얼굴은 한 번 마주본 뒤, 화구의 손잡이를 잡았다. 가마의 잔열 때문에 아직도 손잡이가 후끈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연료구의 입구를 무겁게 열었다.


그 안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人形이 이쪽을 향해 기어오다 멈춘 듯 정지해 있었다.


하얗게 질린 황기자가 겨우 속삭였다.


“입…”


입? 인형에게 입이 있었나?


그 순간 머리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의식이 멈춘다. 그 찰나, 머릿속에서 뒤섞이는 솔향과 흐느낌, 그리고 또다시 떨어지는 펜 모양의 녹음기. 공방의 디오라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