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와 진화
0.
“어젯밤, 시화공단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안에 있던 다섯 명의 노동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방당국은 공장 내 적재돼 있던 가연성 화학물질 때문에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밝혔고, 사망 원인은 방치된 우레탄 원료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유독성 물질임을 밝혔습니다. 소방재난본부에서는 안전 규정을 위반한 공장 내에서의 취식 행위를 화재의 원인으로 보고 있으나 방화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
어제 아침에는 조간회의가 끝나고 김 부장이 흡연부스로 나를 불러내었다. 그는 청색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디스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는 내게 습관처럼 한 대를 건넸지만 나도 습관처럼 손사래 쳤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내게 건넸던 담배를 자신의 입에 물었다.
“어제 회식은 재미있었나?”
“... 술을 너무 마셨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비까지 써 가며 노력했는데 참 아쉽게 됐어. 그냥 들어가서 일이나 봐.”
그에게 인사하고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에 흡연 부스로 향하는 한 무리의 남성들과 마주쳤다.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을 들고 입에는 마찬가지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양손에 종이컵을 들고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류 과장은 일부러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등 뒤로 낄낄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철문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돌아왔다.
사무실 안에서는 창 밖으로 흡연 부스가 직접 보인다. 침침한 백열등이 비추는 사무실과 반대로 햇빛이 직접 내려앉는 부스는 화사하기만 하다. 밝은 얼굴로 짓궂게 어제의 회식 자리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고 떠든다. 불쑥 류 과장이 손을 들어 저속한 손동작을 취하자 김 부장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지러진다. 그 밝은 웃음소리가 어두운 사무실까지 새어 들어왔다.
2.
어제 점심에는 다 같이 백반집을 갔다. 조 대리가 약삭빠르게 물컵을 돌리고, 이 주임이 수저를 놓는다. 갈 곳 없는 내 두 손은 다시 내 무릎 위로 돌아온다. 민망함에 시선을 돌린 TV에서는 아동 성범죄자의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외설물처럼 모자이크가 씌워져 있었다.
“저런 것들은 싹 다 사형시켜야 해! 아니면 독일에서는 법으로 가능하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거세를 도입해야 해요.”
류 과장이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가운데 끓고 있는 찌개에 들어갔을까 싶어 밥만 몇 숟갈 뜨고는 숟가락을 놓았다.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고 있다. 류 과장만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다.
“저런 놈들을 뿌리 뽑아야 사회가 발전하죠. 그리고 저런 놈들이 아기를 갖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주 개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을까요? 범죄자 자식이 불우한 환경에서 크면 또 범죄자가 되는 거라고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사람의 성향은 대부분 유전자에 기한다고 합니다. 저런 유전자가 아예 태어나지 못하게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니까요. 우리처럼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악독한 유전자를요.”
김 부장이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밥이나 먼저 먹어.”
“부장님 따님은 이번에 과학고에 진학했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역시 부장님을 닮아서 그런지 똑똑하다니까요?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겁니다. 부장님이 우리 회사를 리드하는 것처럼요.”
“밥이나 먹으라니까?”
그러나 류 과장의 그릇은 말끔히 비워져 있던 상태였다. 그가 곁눈질로 날 본 것 같았지만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보다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3.
어젯밤에는 얼굴이 잔뜩 상기된 류 과장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는 동시에 내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주었다. 나를 둘러싼 열개의 시선이 꽂힌다. 나는 그가 나름대로 나를 배려하며 떠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사시대 때부터 무리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은 도태된단 말이야. 우리 회사를 봐. 내가 처음에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인 10년 전에는 1년에 10억의 매상고도 올리지 못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어때? 지난달에만 17억 원가량의 수주를 따냈고 올해는 130억의 매출을 달성했어. 이건 우리가 한 팀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야. 지금은 나 혼자 저 정도의 매출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우리 공장이 없고, 공장장님, 김 부장님, 조 대리, 이 주임, 그리고 여기 앉아 있는 오 사원이 없었다면 내가 이런 성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는 언제부터는 나에게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비록 제 승진을 축하해 주신 자리이긴 하지만 저는 이걸 ‘우리’의 팀에 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 태어날 내 아들에게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컵에 든 알코올을 단숨에 들이켰다. 공장 내부의 바닥에는 꽁초가 가득했고 공장 안에는 매캐한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공장장님이 보셨다면 알코올 창고로 불똥이 옮겨 붙는다며 길길이 날뛰셨겠지. 김 부장이 빈 술잔을 내밀자 류 과장이 술병을 붙잡았다가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빈 병을 내게 건네주며 말한다.
“더 사 올 수 있지? 우리 오 사원님? 가득 채워 주세요.”
류 과장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과장된 표정으로 말하자 다들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나는 혈관 속으로 침입한 알코올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정신은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힘차게 류 과장에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부리나케 공장문을 나섰다. 그러고는 철문을 걸어 잠근다. 물론 공장장님 몰래 하는 회식 자리이니만큼 문은 원래부터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차에 준비해 둔 휘발유가 가득 든 말통을 챙겨 온다. 2년간 일해온 만큼 이곳의 지리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알코올창고가 있는 사무실 옆쪽으로 향한다. 창문을 열고 휘발유를 쏟아붓는다. 그 냄새가 사무실 안까지 스며든 담배 연기와 섞여, 역하고 매운 악취에 몸서리쳤다.
아직도 공장 안은 수컷들의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내 팔은 아직도 부들부들 떨린다. 말통의 무게에 휘청거리며 걸어온 길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다. 주머니에서 전날 회식자리에서 챙겨둔 라이터를 꺼낸다. ‘장미 노래방’. 기억이 안 날 리가 없지.
말통 주둥이에 끼워둔 길쭉한 호스에서는 아직도 휘발유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자, 진화해 봐라. 아종들아.”
부싯돌에서 튄 불꽃이 내 눈앞이 번쩍이자 화마가 나선형으로 꼬인 두 갈래의 불길을 타고 달려간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