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건 말이죠. 연회입니다.”
그는 붉게 상기된 얼굴을 위아래로 끄덕이며 말했다. 그 바람에 몇 올 남지 않은 머리털이 힘없이 나부꼈다. 입을 열 때마다 그의 튀어나온 입에서 나온 침방울이 햇빛에 비치었다.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가 계속 말을 이을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나의 기대에 정확히 부응하였다.
“아주 기다란 탁자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질 않는 긴 연회용 테이블이요. 잘은 모르지만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식탁은 정교한 문양이 가득한 식탁보로 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커다란 은촛대에 눈부시게 흰 초가 놓여 빛을 발합니다.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곳곳에 매달려 그 빛을 사방으로 반사합니다. 그곳에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좌우로 가지런히 정렬하여 앉는다고요. 그 끝에는 가장 수염이 긴 사람이 앉습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게 되죠. 물론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지기 전까지 만입니다. 수염 난 사람을 쳐다보는 것보다 당장 내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보는 것이 훨씬 보기가 좋지 않습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정갈하게 음식을 덜어냅니다. 각자 앞에 놓인 은그릇으로요. 혹여나 내가 욕심을 너무 보인 것 아닐까? 하며 옆 사람의 은그릇을 보기도 합니다. 거기서 나만 욕심꾸러기로 보이고 싶진 않거든요. 비교적 많은 양을 덜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시작하면 점점 몰두합니다. 물론 내 앞에 산해진미에죠. 상석에 앉은 수염쟁이가 제게는 보이지도 않는답니다. 아! 제 자리는 그와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군요. 당연히 상석과 가까이에 앉는 수염 난 놈들은 그에게 집중합니다. 말 한마디 놓칠세라 부단히도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마치 타조가 물을 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들 앞에 놓인 귀한 음식들은 저희의 만찬이 끝날 때까지 줄어든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 정신없이 식사를 하다 보면 간혹 수염쟁이가 사라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으로 수염이 긴 사람이 그 자리에 앉더군요. 그리고 사라진 수염쟁이의 식기는 깔끔하게 바뀌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이 쓰던 식기를 그대로 쓰고 싶진 않겠죠.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수긍이 갑니다. 앞선 수염쟁이의 입에서 튄 침이 가득한 음식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은 빼고 말이죠. 음식은 식기와 달리 주인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연회장에서는 그들만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회는 꽤나 오랜 시간 진행되는데 반드시 초가 다 타야만 끝난답니다. 가끔 긴 초가 준비가 안 될 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촛불이 다 타면(마치 촛대에 장식된 저 문양이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야만이 도처에서 솟구칩니다. 암전.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그리고 그들은 은식기를 식사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남의 식기를 훔치기 때문이죠. 은식기를 도둑맞은 이들은 손으로 음식을 헤집습니다. 입이 아닌 호주머니에 케이크를 쑤셔 넣기도 하고, 때로는 이 틈을 타 상석에 앉은 자의 수염을 나이프로 잘라버리는 이도 있습니다. 이때를 노리고 연회장 밖에서 들어와 초를 자르거나 훔쳐가는 놈들까지 있습니다. 저희는 제 것을 지키고자, 혹은 우리 것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주머니를 뒤지고, 탁자를 부수고, 식탁보를 찢고, 음식을 훔치고, 그릇을 숨기고, 포크로 찌르고, 나이프로 자르며 입으로 가져가 음식을 삼킵니다. 참으로 바빴던 암전이 지나가면 다시 연회가 시작됩니다. 야만은 순간입니다. 침입자들은 그 기다란 탁자의 끝자락, 가장 아래쪽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상석에 앉은 수염쟁이는 가지런히 정리된 수염을 뽐내며 다시 연회의 시작을 알린답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앉은 우리들은 언젠가 수염이 날 때를 기다리며 다음 연회의 순간을 고대합니다.
그렇죠. 그것이 모두 연회입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연회요. 저는 언제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는 말을 마치고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더욱 붉게 상기된 그의 머리에는 은색의 나이프가 꽂혀 따뜻한 석양을 시린 빛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마실 것을 요구했다. 연회장의 식탁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테이블에 놓인 컵을 집어 물을 따라냈다. 그에게 컵을 건네려 할 때, 나는 그의 양 어깻죽지 밑으로 뻗은 여덟 개의 팔과 그 팔의 끝에 피어난 여덟 개의 손 중, 어느 손에 컵을 쥐여 줘야 할지 꽤나 오랜 순간을 고민했던 것 같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