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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Mar 05. 2022

젊은 시인과  젊은가수는 노인을  왜 no 人으로 봤나

-내 노인 다큐 ,내 셀카를 내가  찍어 봤는가?-

몸이 망가지면 금방 세상의 이 달라진다.  교사시절 동료교사의 아버님이 공원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동행했다가 도착 직후에 막 숨을 놓아버리신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충격이었던 것이 숨이 끊어진 그 순간부터 시신이 되어 아주 가까운  병원까지 옮기는데도 정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아했다는 것이다 .병든 내몸도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반쯤 죽음에 발을 걸친  불량품ㆍ

응급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신분, 나이, 재력.. 상관없이 남자냐 여자냐 몸이 크냐 중간이냐 작냐  (S, M, L)  선택 기준이 몸 자체에만 있는 옷 .망가진 몸에게 장신구는 병원 공간에서는 사치다. 생, 사의 경계선 상에 서게 된 몸에게 옷은 딱 한벌이면 된다. 한밤 중 통증으로  병원 복도에서 유령처럼 배회할 때는 잠옷처럼, 아침 회진 때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외출복처럼.   식사할 때는 일상복처럼. 검진받을 때는 환자복처럼.   늙은 , 더 늙어가는 내 몸이  자주 입게 될 환자복이다. 산 몸으로 이 생에서 마지막 입을 옷도 병원 환자복 아닐까....





    이동용 침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드라이빙 인 마이 바디가 내 두발이 아니다.

침대에서 침대로 이동 시마다 병원 직원 , 누군가의 손의 힘을 빌어  옮겨진다.  낯설다.   불편하다.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옮겨가겠다고 고집하다가

 그 행위가 업무상 방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냥 하라는 대로 움직인다.

 늘어난 내 몸무게가 움직이는데 힘들까 바  옮겨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호흡을 참는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서 부담이 안 되기를...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이동용 침대에 누워서 보니 내 시선이 낮아졌다. 땅바닥에 더... 가까이.

사람들의 시선은  높아졌다. 그 시선들과 마주칠 때마다 낯설고 어색하다. 아직은 질병의 호출을 받지 않는

건강한 몸에 외출복을 걸친 사람들의 활기와 생기와 마주치면

나 혼자  세상으로부터 쫓겨난  느낌이다. 부끄럽고  외롭고 슬프다.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가 정면으로  응시해보다가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응급실과 방사선과가 있는 본관 건물을 잇는 긴 복도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이동용 침대 바퀴가 멈추었다. 눈을  떠보니

촬영을 위해 방사선과 앞에 죽 늘어선 이동용 침대들. 침대 위 앉거나 누워서 순서를 기다리는 분들 이 대부분 흰머리. 활기 없고 지치고 조용한  침묵.. 노인의 나라에 온 듯싶다.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시가 생각난다


늙은 사람


-기형도 -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노인은  젊은 몸을  탐욕스럽게 본다고? 가본 적 없어 침을 뱉고 추방된곳이 노인세계이기

때문에 노인적인 것은 모두 거절한다고?

수긍할 수 없다.

노인은  지나온 것 경험한 것은 다 시시하다. 아무리 젊은 몸이라도 이미  젊어보았던 몸은 시시하다

 차준환의 우아한 피겨스케이팅처럼 젊은 몸 자체가 발산하는 몸의 아름다움을 볼 때만  이다.

 그건 늙은 몸으로는 불가능의 세계이기 때문에

 젊은 그 몸 , 그 몸 때문에 겪을 온갖 희로애락.. 짠할 뿐이다



물론 이 시에서 노인은 물론 지금 내 앞에 펫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진짜 몸이 늙은 노인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시세계가 늘 젊은 청년 정신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그  비교로 늙은 사람을 등장시켜 늙은 사람을  조롱하고 침 뱉으며  배척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해철은 그의 솔로 2집 앨범 '50년 후의 내모습' 에서



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일들 50년 후의 내 모습

주름진 얼굴과 하옇게 센 머리칼 아마 피할 순 없겠지

강철과 벽돌의 차가운 도시 속에 구부정한 내 뒷모습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적을 그때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새월에 떠다니고 있을까

노후연금 사회보장 아마 편할 수도 있겠지만

벤치에 앉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긴 정말 싫어

하루하루 지나가도 오히려 길어지는 시간들


 - 50년 후의 내 모습 가사 일부-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no人 을

  노인으로 보았으며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도시 공원 벤치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잉여인간이

노인이라 본다


그래도 모든 것에 편견 없이  열려있는 시인, 락커 조차 늙은 사람에 대해 이렇게 부정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니.. 너무 일찍 요절해 본인은 늙은 사람도 되보지 못한 기형도 시인이나 신해철을

무덤에서  불러서 따지고 싶다.


노년의 지혜 , 꿈... 여러 예술가들이 철학가들이 노인들 편을 들어주어 , 나름 책도 내고 독립영화도 만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분들 프레임에 맞는 노인들 이야기라 반쪽 자리이다


이제 노인들이 노인들 자신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기록 하고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왜 ????


노후생활도 이전보다는 한 걸음 진화되어야 하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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