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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Jul 05. 2022

개 할머니들의 해방 일지 1.

- 1박 2일 다큐 -

개 할머니들의 1박 2일 다큐 개 할머니들의 1박 2일 다큐


남들은 첫 만남에도 옷 벗고 목욕탕, 온천탕도 잘들 가시더구먼.. 우리 모임은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 나이 65세를 가뿐하게 넘은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들 멤버임에도 옷 벗고

만나는 걸 쑥스러워하고 수줍어하고 단톡방에서 옷 벗는 게 이슈가 되는 모임이다.

이 모임? 멤버가 여섯이며 각자 인생에서 가슴 떨리는  첫 교사 발령지인  시골 자취방에서

만난 선생님들이다. 영화 한 편 볼 수 없고 티브이 안테나 상태도 아슬아슬하여 지상파 방송도 시청하기가

쉽지 않았던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에 한 템포 늦은 촌선생님들이었다. 학생 시절 토오일 오후에 시내 중심가에서 만났던 후츨근한 촌선생 모습으로 변해 실망했던 대학시절 베스트드레서 선배님들.

 그들이  후줄근한 촌 선생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 충분히 납득이 갔던  시골 중학교

교사 생활.   귀양지 같은 시골이었지만 귀양 온 선비들이 있어서 서로 기대며 잘 살았다. 그리고 의무 기간이

끝나고 도시로 떠나면서  아쉬워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이름은.. 그냥 oo 모임이다. 00은 지역 이름.

 이제 이름도 만들어야겠다.




     '티타임'이라는 칠레 다큐 영화가 있다. 보셨는지.. 여고 졸업 후 60년쯤 지나

      80대  된  다섯 할머님들의 계모임을 4년 동안 다큐로 찍은 영화다.  감독은 그 할머님들 손녀  따님

한분.  특별한 사건이나 스토리가 없는 그냥 찐 일상을 그대로 찍었다. 메이드들이  티파티 준비하는 것 이 조금 낯선 풍경이었을 뿐. 어느 나라나 할머니들의 인생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나이 들었다고 할머니들 안의 세속적 욕망이 승화된다거나 정신이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고. 잘 사나 못 사나  느리게 만나거나 좀 일찍 만나거나 할 뿐 마지막에 는 몸의 망가짐을 거쳐 점점....   티타임 좌석에 앉는 것이 힘들어지고 어느 날 사라지는 게 인생임을 알게 해 주었던 영화.

 

문득 우리 모임의 역사를 생각하니 어언 40여 년이다.


한국에서는 65세 이상을 법적으로 어르신 대접을 해준다. 65세를 가뿐히 넘은

우리 모임도 이제 어르신 모임이 되었다. 같이 흘러 보낸  40년 동안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이 우리 모임에만 비껴갈 리 없고 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나름  자신의 운명에 맞서

어쨌든 살아서 이렇게 만나니 우리는 다 운명의 승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오리라 믿으라.


푸쉬킨의 시 구절이 적힌 사진관 사진들이 흔한 풍경이었다.

 성실과 인내가 시대정신이었다.

      

여자에게는 미개한 사회였다

 슬픔도 부당함도 내가 잠시 참고 견디면 세상이 조용하고 결국 기쁨의 날이 온다는 프레임에 가두어

 부당함에 대한 분노도 , 하고 싶은

  말도 , 마음 한쪽에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에 다 묻어버리게 했다.


그래서 늘 발설의 욕구로 목구멍이 근질거리고 답답하다가 겨우 발설하면

집단 왕따 되기 십상이었던  어둠의 시절. 젊음의 파일을 십 프로도 로딩을 못했는데  

이제 어르신이란다.  어르신이라는 대접은

고리타분한 유교 노인 이미지로 우리의 입을 더 틀어막으려는 음모 아닌가?


 대선 선거장에서 만난

시원시원하게 발설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개혁하는 2.30대   개딸들을 만나니...

시* ,.... 시원하다.

우리도 개 할머니가 되어 우리 마음의  무덤을 파헤쳐 속시원히 해방되고 싶다는

간절한 심정이다.


해방되고 싶은 개 할머니의 아지트는  얼마 전 여동생들과 같이 가서 내 노후 공간에 대한 영감과

 희망을 찾은 공간. 모임의 시작이었던 초임지 근처 감성 펜션...

특히 그 공간의 자쿠지를 보면서.. 해방공간의 핫플레이스로 맘먹었다.

이 해방 여행이 우리가 해방되어 개 할머니로 탈바꿈하는 첫 여행이라 기록으로 남긴다.



S#1  무주 구천동 '서림 연가'펜션

 

 


무진장은 우리 지역에서는 무주. 진안, 장수의 약자이다.

불교에서  쓰이는 끝이 없는 공덕의 의미가 아닌 이 지역 최고  오지 중의 오지라는 단어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단어다.

"무진장만 아니면.."

새내기 교사들이 첫 발령지로 피하고 싶었던 곳.

성적이 별 로거나 인사담당 인맥에 기댈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거나 - 당시의 시대 통념 -

그런 분들이 발령 난다는 무진장. 그중 한 중학교 교사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학교 옆 착한 젊은 교사들이  불시착해서 방 한 칸씩 차지한  자취집. 그 한쪽 귀퉁이 방에 겨우  

끼게 된 것이 1980년대 초반이다


냉장고도 드문 시절이라

마당 한쪽의 깊은 우물에 도시에서 공수한  플라스틱 김치통들을 매달아 김치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난방은 연탄 화덕이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주말에 썰렁하게 꺼진 연탄불을 살리려

풀무질까지 해서 번개탄에 불 붙이던 따뜻한 주인집 할아버지가 계신... 그래서 월요일 퇴근길에

들어선 방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긴장되고 얼은 마음이 편해졌던. 그렇다고 방세를 더 주거나 수고비도 주지 않았던 것 같은.. 지금은 사라진 시골의 순박한 인심.



대부분 교사들이

주중에는 시골에서 자취 생활하다 주말은 시내 집으로 나오고

월요일 아침 직행버스로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 민선생 사 표 내고 시내 사립학교로 간다네. 사립은 결혼하면 바로 사표 받는데... 아깝네 , 유능한 교산데  ”     


“ 잘했네. 그 집안에서 이런 시골에 딸을 함부로 내 돌리겠어. 아...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서  내조 잘하면서 가정 잘 건사하면 젤여. 가만.. 애인 없던가. 우리 조카 내과 의사 인디 중신이나 서 볼까 “   

 

버스  안   뒷자리 타학교 교감선생님과 나이 든 남선생님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버스

 도시 사립학교에  줄 댈 백그라운드도 없고  시골에 내돌린 별 볼일 없는 집안의 딸인 내 정체성에 잠시 비참해졌고 그분들 생각에 강한 반발의 언어가 솟구쳤던 기억에 잊히지 않는 대화다.


결혼 후 여자의 직장생활은 남편의 수입이 생계유지에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으로 폄하하는  예술가들에게도 여류라는 말을 꼭 달아주는 후진 시대였다.     


시대야 어떻든 어떤 자취방에는

쿵쾅쿵쾅~~~~

"가방을 둘러맨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다가

활짝 핀 웃음이...."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 노래를

구들장이 깨지도록 발 구르며 춤추며 부르는 젊은 여교사들이 있었고



그 옆방에는  인생의 고민을 홀로 짊어지고

정태춘 박은옥 님의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라는 노래를 재수 없게 혼자 조용히 듣던 나 같은 인간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울 그 화려한 곳으로 날고 싶어

여성 잡지사 직원 응모용 자기소개서를 밤새 썼다가

  찢고  어느 날은

정신의 극지까지 도달한 스님들의 선방을 흠모하여

학교 근처 암자로 짐을 옮겨 며칠을

보내다가 그 장아찌 반찬에 질려 하산한 반 미친 내가  있었다

내 안정된 월급이  없으면 일찍 세상을 뜨신 아빠라는 가장 없는 친정가족들의 생계가 위태위태하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 오지였던 무주구천동이 영화제. 스키 명소, 휴양지로

바뀌고 여동생들과 방문한 이 공간에서

개 할머니 여행지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신발이야기에 있다.

 


S#2.  5켤레의 신발, 그리고 한 켤레의 신발




 먼 길을 걸어 이제는 거울 앞에 선 신발 다섯 켤레가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였다. 누가 저렇게

잽싸게 가지런히 정리했을까 ? 여행내내 그녀의 손이 닿는 곳은

깔끔깔끔..잠시 머물다 간 이 공간 뒷처리까지 깔끔하여 퇴실 때  일행임이 자랑스러웠던

 그녀는  깔끔한 스니커즈 신발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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