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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Jul 09. 2022

개 할머니들의 해방 일지 2.

-1박 2일 다큐-

S#2.  5개의 신발, 그리고  오지 못한 한 개의 신발




저 신발  다섯 개 , 아니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은 함께 하고 있을 신발 하나 (오늘도 

잉그리드 버그만을 닮은 최고 멋쟁이 신발은 참석 못했다.)를 포함

신발 여섯 개는 40년을 참 바쁘게 열심히 걸으면서 살아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 첫 만남의 학교와  아주 가까우며  은밀한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잠시 들어와  얼마 남지 않은 아니 백세 시대라면 아직도 많이 남은 길을

잘 걷기 위해 무거운  잡념은 툴툴 털어내고 재충전을 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가 머물 공간, 서림 연가는 조경부터

 윤기 나는 피부에 고급스러운 색감의 화장을 한 풍성한 화초들이 있는 부귀영화 필이 아니고

 그냥 손질도 안 한 윤기 없는 가늘고 긴 머리채를  흔드는  것 같은 들풀들과 바위 한 두 개로 된  조경이다.

건물은  다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긴 스님들의 선방처럼 거추장스러운 세속의 옷을 다

거절하는 노출 콘크리트 옷을 입었으며  미로처럼 만들어 은둔자가 꼭꼭 숨어있기에 좋은 장소다

한번 들어오면 세속을 버리고 잊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얼마 전 자매들끼리 왔다가 반해서 추천한 장소.

마음속 무덤에 쌓여있는 것들을 꺼내어 해방시키기에 딱 좋은 곳이다.


 출입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하니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던 신발들이 어느 팀엔가 쫘악 정돈되었다

  갑자기 머리가 심플해지면서 우리가 걸어왔던 길도 단순하게 정리가 된다.


사회 초년생, 각자 혼자 몸이었던 우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른 자신들 만의 

마이웨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북적북적  남들 다 사는 것처럼  남편과 아이들하고 같이 걸은 신발도 있었고

같이 걷다가 가족 중 누군가를 잃은 아픔도 겪은 신발도 있었다.

여자가 독신으로 사는 삶을 색안경 쓰고 보는 미개한 시대에 당당히 똑똑하게 

   끝까지 혼자 걸어서 사회적 성취를 한  신발도 있었고

불의의 사고로 몸이 불편하게 되어 이 자리에 같이 참석 못한 신발도 있게 만들었다 

부모님들이 백일날 돌날 우리가  꽃길만 걷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꽃길만 걸을 수는 없는 게 인생길이었다

    

가족들과 아이들과 걷는 길은 외롭지는 않았지만 가족 수만큼 몸과 마음의 번민도

 2배 3배였고 당연 자신의 내면 욕구는 외면하며 살아야 했고   

혼자 걸으신 분은 외롭기는 했지만 자유와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었고

 그래도 사회적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몸이 불편해진 신발은 큰 상처와 고통이  본래 그리던 그림에 

자신이 만난 하느님의 영접을 더해 성화 예술가라는 길을 걷게 했다  


"우주의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안 주신다."

"  인생은 공평하다" 하고 하셨던 어른들의 말이 맞았다

젊을 때는  불공평한 것 같이 보였는데 이 나이에 도착하고 보니   공평하다

우리 모임에서도 

젊은 시절 에는 은밀하게  서로의 인생을 비교도 해보고 질투도 해   보고 은밀히  과시욕도 부렸는지 몰라도 

지금은 저 신발들처럼 그냥 수식을 다 떼어내고 내 발에 맞아서 걷기에 편안하면 되는 신발들을 신는다.

유명 브랜드 , 칼 힐 샌들도 없다.




초임지 신발에 교실에서 단체로 신었던 , 학생들도 신었던  슬리퍼가 자쿠지 주변에 조르륵 

물을 빼느라 서있다. 반가운 추억 하나가 인사한다.  




#S 3. NO 먹방. NO  인스타  


느지감치  도시의  아파트 안 정자에서 모여서 차 한 대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났어도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이 지역에 거주하시는  두 분의 

아파트 이름과 평수와 집값이 궁금하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병원 가까운 데로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는 권고에

다시 도시로 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궁금해서 물어본다

검소하고 허투루 돈을 쓰지 않으신 두 분 답게 평수도 아파트도 좋은 곳이었다

  

한 분은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도시 인근에  주택을 지으려고 땅을 보러 다니신

단다. 그런데 한 번도  이 모임에서 자랑질하는 언어를 들은 적이 없다 

다 다른 길을 걷는 마당에 내 성취가  남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겠지.

그래서 다 벗은 몸을 가까이서 마주치기보다  배려라는 약간의 거리감을 둔...  

아마도  우리의 모임이 40년 동안 깨지지 않고 한 번의 다툼도 없이 오래 지속된 이유

이지 않을까...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마음을 나누었나?

생각해보니 우리의 마음 나누기는  같이 모여 음식 먹는 거였다.

   

인생이 위 태위태 하고 힘들 때 해결해 줄 현실의 힘이 인맥이라면

우린 인맥 하고는 거리가 먼 관계다 

그 냥 인생의 희, 로, 애. 락 때마다 같이 있어 주었고 같이 먹고 마셨다


희.. 기쁠 때라. 맞다.  진짜 쇠고기의 맛을 경험하게 한 삼천동 축협 직영점 회식.

  고기를 별로로 생각하는 내 입에도 살살 녹는 소고기를 먹게 해 준  김샘의 승진. 

   교사 승진의 마지막 화룡정점은 교장이 주는 근무성적이었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족들의 가장인 남선생님보다는 덜 힘든   혼자 사는 여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미끄러졌던 김샘.

   선생님이 승진하셨을 때는 모두 우리 일처럼 기뻤다. 연이어 오심의 승진. 가장 클라이 막스는 젊은 나이에 

    바라보기도 아까운 젊고 멋진 남편을 떠나보내는 힘든 일을 겪고 혼자  아이 셋을 키우면서 

   그 힘든 사립학교 교장까지 되신 이 샘의 인생 승리 날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같이 먹고 기쁨을 나눈 일. 


노.. 동해해물탕도 생각이 난다. 그 넓고 시끄러운 식당 속 속에서 우릴  분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공감하고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었고


애...  불의의 사고로 친정으로 되돌아온 이선생님이 그 불편한 몸으로 러시아 유학길을 떠났고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같이 밥 먹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우리만 먹어야 했던 그 독특하고 담백했던 러시아식 붉은 야채수프. 정작 본인은 에스컬레이트에서 미끄러져 병문안을 가야 했던 일. 우리만 먹는 것이 슬퍼서 잊히지 않은 수프.

 

락... 그리고  오늘 먹은 점심. 오늘 점심은 즐거움을 나눈.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어느새 말없이 영문학 박사가 되었고 한 번도 자식 이야기 입에도 안 올린 그녀.. 알고 보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의사 둘을 키워낸 엄마이기도 하다. 그 아들의 결혼식도 조용히 치르고 조용히 밥을 사고 조용히 같이 즐겼다. 정갈한 한식 상을 받았는데.. 그 다섯 사람 중 누구도 먹방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없어서 다큐 사진을 못 올린다.

  ㅎㅎㅎ 젊은 사람들은 먹는 것보다 사진 찍고 올리기를 더 좋아하던데...

  내가 준비해 가서 함께 마신 십 년 익힌 쾌활 보이차, 호중거 샘에게 선물 받은 대만 무이 수선 차 지리산 고차 수차 , 사진 없다. 오로지 잘 먹은 점심 때문에 간단하게 샴페인과 닭다리 두 개씩 뜯은 

저녁 사진만 남아서 올린다.

           



                         


먹방이네 인스타네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해도  

지금 우리의 이 순간순간 같이 먹는 마음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지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나이 든 우리에게 중요하겠는가?



S#4.  자쿠지, 마음의 무덤을 열고

              


자쿠지에 물을 채운다. 뜨거운 물을..

어두 컴컴해지면서 아침부터 찔끔찔끔 떨어지는 빗방울이 멈추고 하나씩 둘씩

별이 보인다. 얏호 ~~~

할머니들의 로망인 

발가벗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맘껏 소리 지르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물을 채우는 내내 우리 다섯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보다 너무 작은 자쿠지를 보며 마음 졸였다

드디어 물을 채우고 

나부터 입수.. 차례로 입수 

바로 들어오는 사람 ,, 조금 머뭇머뭇하다가 어색하게 

가린 수건 풀고 들어오는 사람.


다행히 다섯 사람에게 딱 맞는 공간이었다. 더도 덜도 아닌...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속에 , 준비해 온 듯 분위기 있게 너무도 감성적으로 잘 부르는 노래 속에

티 없이 맘껏 웃는 웃음소리 속에 

내 가 살면서 묻어둔 마음의 무덤을 생각한다. 


 

시대를 앞서 간 마음이어서 발설 못한 마음, 사회가 요구하는 조신하고 품위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깊은 굴속에 숨겨놓았던 마음, 싸울 용기가 없어서 억울하지만 넘겼던 마음

돈이 없어서 실천하지 못했던 마음, 뒤늦게 서야 깨달았는데 사과할 용기가 없었던 마음,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두려워 피했던 마음....... 40년 동안 마음의 무덤들에  숨겨 두었던 마음들이

은밀한 은둔지인 이곳에서 모락모락... 하지만 40년 동안의 것이  단 하루 밤

만에 기어 나오겠는가....

노래나 부르자.

그러나 뜬금없이

내 마음의 무덤에서 나온 목소리는


씨발 ~~~

인생 지랄 같아


진지충이라고 딸이 놀릴 정도로 일상 언어도 고상한 인문학적 용어로 만들어 쓰는 내 입에서 

고상한 깨달음의 언어를 기대한 내 허영을 깨트린....

맞아. 이게  나야

ㅎㅎㅎ 이제 참지 말자. 욕이 나오면 욕을 하고 싫으면 싫다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지르자


 


S#5.  해장 수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찍부터 일어난 우리는 어제 남은 과일에 달걀 몇 개

찌고 싸구려 드립 커피에 우유 놓고 해장을 즐긴다.

우리의 해장은 역시 수다, 밤에 못다 한 마음속 무덤을 열고   시작한 수다.


혼자 걸어왔던 신발은 어느 날부터 아름다운 자수 바느질을 하여 

전시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번 총선에 떨어지신 분에게 

마음이 쏠려  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려고 정치아카데미를 

단톡에 올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ㅇ은퇴 후 직장맘인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해 타 지역으로 떠난 신발은

   일찍 떠난 남편의 재능에 빙의되었는지 그림을 시작했다. 스케치한

   그림이 가능성이 넘친다


교장  은퇴 후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신 전생이 형사 출신처럼 느껴지시는 

이 분은 발길을 어디로 향할지... 


 은퇴 후 시작한 춤이 몸까지 우아하게 바꿔 사진 속에서 혼자만 돋보여 우리들의

 부러움을 산 이 분의 발길은 자수 바느질, 진보정치 참여...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수다이다




S#6. 뒷방 아닌 벙커로 GO!! 



다음 여행지를 

마지막 작당 모의하고 있다 


뒷방 늙은이라는 말이 있다.

평행 자기가 놀던 물에서 못 떠나고  그 놀던 물의 후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돈 버는 사람들.

뉴스에서 자주 만나는 전직이 화려한... 로펌에서 돈 버는 사람들.부터

우리 집 근처 알부자 철물점 할머니. 착한 사위에게 산뜻하게 못 물려주고 불편한 몸으로

계산대에서 졸고 있는

적어도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 늙고 싶진 않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는 

뒷방이 아닌  벙커로 여행을 떠나는 

개 할미가 되고 싶단다. 


나? 나는 

나는  차 한 잔 타 주면서 기록하는 여자  


젊은 사람은 늙은 사람 모른다

젊은 사람이  쓰는 늙은 사람 이야기는 젊은 사람이 바라는 늙은 사람 이야기 일뿐

늙은 사람 이야기는 늙은 사람이 써야 한다.

그 늙은 사람 이야기를 정직하게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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