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혼자 산다, 나 혼자 죽는다-
가.. 족
가족은 집 밖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 마지막까지 기댈 든든한 언덕인가 ,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내 가장 약한 허점을 발견하고 물어뜯고 위협하다가 복종하지 않으면 폭탄을 터트리는 스토커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오늘도 티브이에서는 자식들에게 든든한 언덕이 돼주려다 공과 사 경계에서 오버하여 자식들과 본인들 인생을 더 꼬이게 하고 , 법정 출두할 때마다 카메라와 마이크든 기자들에 쫓기는 인생샷을 보여주는 부모와 자식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예인 동생의 수입을 자신의 것인 양 쓴 써서 법정에서 서게 된 형제라는 가족 이야기로 발전하더니 급기야 전직 대통령의 손자가 가족들의 비밀 폭탄인 장롱 속 은밀한 금고 이야기를 터트렸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내게도 언제 닥칠 줄 모르는 일이고 나 역시 그 경계에서 저분들처럼 안 되리라고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가족문제는 항상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요 화두다.
노후준비.. 가 돈, 돈, 돈... 할 정도로 돈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 애면글면 모은 노후자금도 "노후자금이 필요해"라는 일본 영화 속 주인공 오십 대 주부처럼 시어머님 호화장례식, 부잣집으로 혼인하는 그래서 부자사돈 집안과 격을 맞춘 딸 호화결혼식 비용에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노후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가족문제를 잘 통과해야 한다.
"참.. 나도 자식과 이렇게 척을 질 줄 몰랐어. 그렇지만 보면 열불이 나고 만나고 싶지 않아. 부모를
속인 놈..." 술 한잔 마시면 시작하는 반복되는 남편의 레퍼토리.
" 엄마, 나도 엄마 맘은 잘 알겠는데.... 나도 아버지를 보면 말이 안 나와."
일부러 집에서 가장 먼 거리로 직장을 옮긴 거라고 강한 의심이 드는 아들의 전화 음성..
부모를 속인에서
"속인 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객관적 인 내 언어를 발설이라도 할라치면 남편의 화는 두배로 증폭하고 큰 싸움 터진다. 참고 참고 나 혼자 애만 타다 '나도 모르겠다' 미루고 또 도망간다. 우리 집은 아니 나의 가족에 대한 내 마음속 장롱 깊숙한 곳에서는 늘 묵은 빨래 이불 한 채가 숨겨져 있다.
남편과 아들의 불화라는 밀린 빨래 이불 한채 같은 근심 한 조각. 이제 정말 다 빨아서 쨍쨍한 햇빛에 말려 보송보송하게 깔아주고 그 위에서 숙면하는 걸 보아야 내 생의 숙제가 끝인데 왜 그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가슴에 쌓인 것들은 솔직히 이야기하면.. 홀가분하게 정리될 텐데... 이 가족문제 통과가 쉽게 안 되어 잘 흘러가던 이 브런치글이 열 번도 더 발행 직전에 삭제를 하면서 거의 한 달을 지내고 말았다
왜? 이유는 내가 엄마노릇을 잘하지 못해서라 생각을 했다
엄마노릇...
어젯밤에 푹 빠져 열 시청한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는 학폭 당한 딸에게 큰 상처와 과로움을 주는 엄마가 나온다. 돈에 눈이 뒤집혀 합의서가 딸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지도 깨닫지 아랑곳하지 않는 무지한 동은 엄마,
자신의 딸에 대한 내면의 성찰 없이 무조건 딸의 욕망을 채워주는 -딸이 내 욕망대리자이기 때문에 -가해자 연진엄마. 막상 딸의 위기에는 외면하고 철저히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는 무서운 이기적인 연진엄마,.
피할 수 없는 아빠의 폭력 속에서 , 파워게임인 세상의 힘에 밀려서 도망가지도 않고 딸의 시신을 지킨, 그래서 끝끝내 딸을 새 세계로 보내는 이모님,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엄마. 특별하고 훌륭한 엄마들
나는 어떤 엄마였나? 아들 서너 살 때
"엄마. 가지 마" 울고불고 매달리던 아들을
월요일 새벽 시외버스 타고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정집에 떼어놓고 오던,
그 컴컴하고 우울했던 젊은 워킹맘의 어느 일요일 저녁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였으며 아들의 엄마보다는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친정엄마에게 슬쩍 엄마역할을 밀어 두고 주말 엄마로 지냈던 시간들.
신중하지 못하게 이사하여 도와줄 친구 하나 없는 모든 게 새롭고 낯설게 중학 신입생을 보내게 한 것,
먹던 도시락을 아들에게 던졌다는 학급의 씨름선수와의 티격태격. 지금 생각하면 학폭인데...
그냥 무조건 아들만 혼내는 ... 이야기가 안 통한다고 남편도 아닌 남동생과 상의해서 근본적 성찰 없이
가볍게 그냥 지나가 버린 일.
냉정할 때 냉정하지 못해 중요한 인륜지대사에 과감하게 손절매할 힘과 용기를 주지 못한 것..
집안일보다 가족일보다 내 일만 열심히 했던 그러면 그냥 가족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알고 방치하고 도피한 내 무심함 이기심 나를 자책한다. 엄마노릇을 내가 한 적이 있기는 한가...
체벌과 분노 사이의 남편의 폭력으로 아들을 용감하게 지켰나... 아니다.
나 역시 체벌과 분노 사이에서 아들을 때렸다
명절날이면 이 자책은 최고조에 이른다.
내게 명절은 뿔불이 흩어진 점 같은 인간들이 한 번쯤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러 모이는 축제였다.
자기 몸의 생성, 근본, 핏줄이라 이름 붙여진 조상들로부터 나까지의 히스토리인 세로축 y ,
몸이 아닌 내 마음의 근원, 위아래 가 없는 엄마의 무한한 지평선 같은 사랑 가로축 X.
좌표를 확인하는 날. 밥벌이와 꿈을 찾아 세상을 떠돌다가
모든 걸 받아주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주는 엑스축의 엄마의 사랑,
과 내 몸의 핏줄 속에 계속 이어지는 조상들에게서 연대감과 기댈 언덕이 되는 는 내 몸의 와이축 아버지
의 사랑을 확인해보기도 하는 축제인 명절날
내가 그동안 수없이 읽어재낀 책들 언어를 빌리면 이렇게 그럴싸한 언어가 조립되지만
그냥 내가 꿈꾸는 명절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한 끼라도 같이 음식을 나누며 완벽한 사진을
찍는 날이 명절이다는 생각이다.
누군가가 빠지는 그래서 유일한 가족사진은 딸 백일날 찍은 가족사진뿐인 나의
명절날은 이 빠진 것처럼 허전한 결핍된 가족사진을 확인하는 괴로운 축제였다.
. 올해도 끝내 원하는 가족사진은 못 찍었다.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인 아들과 남편은 올해도 끝내 풀지 못했다
나는 엄마노릇 엑스축 역할을 제대로 했나?
남편은 와이축 역할을... 제대로 했나?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 속 엄마처럼 자식과 가족을 위해 온전히 순수하게 사랑을 품는 그런 엄마가 못 되는 나를 자책하며 신경숙 님의 '아버지의 집에 갔었어'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장남과 평생 신뢰와 애정의 관계로 편지를 주고받는 아버지에 택도 못 미치는 남편을 비난하며
아버지로보다는 자신으로 살고 싶어 다른 도시에 다른 여자랑 딴살림을 차린 소설 속 아버지에게 눈물
호소한 소설 속 장남의 그 절절함에 자신의 삶은 버리고 자식들의 학사모 사진들을 죽 방안에 걸어놓고 가족을 지켜내는 소설 속 아버지가 걸어놓은 그 소설 속가족사진.
올 명절도 아들을 위한 갈비찜은 상에 오르지 못하고 아들은 집으로 귀향하지 못했고 , 명절 전날 늘 하는 세리모니 부부싸움을 올해는 엄청 크게 벌렸다.. 명절날만 되면 내 인생이 잘못 산 것 같은 이 열패감... 이제 몇 정거장 안 남은 기차역을 남긴 나는 끝내 완벽한 가족사진을 찍지 못하고 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