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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Oct 22. 2023

썩어도 준치라고? 맞네. 늙어도 사람이고.

-사람의 향기-


늙고 아프면서 사진을  거의 안 찍는다. 얼굴은 못 생겼어도 분위기 있다는 말은 가끔 듣고 살았는데  그것마저 순간순간 강직이 오면 얼굴이 굳어져   그나마 가족들이 내 얼굴 중 봐 줄만 하다고 한  양쪽 볼의 보조개마저  귀여움 대신 근엄한 험상궂은 표정을 만드는데 더 보탠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들여다보는 것이 예전처럼  재미가 아니라 잊고 사는 내 질병의 현타를 확인 사살하는  행동이 되고 말았다.


특히 "라떼는 말이야, 왕년에 나도..."라고 꼬리표 단 옛 인연들을  만나면  십중 팔구

"어디 아파? 왜 이렇게 얼굴이  변했어"

 한결같이  똑같은 말씀들을 하시곤 해 기분이 늘 다운된다. 듣기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싫증 나고 지루한데... 모임도  세 개로 다이어트했다.   아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피하는 중이다. 그래봤자  좁은 이 도시에서 가는 장소가 다 거기에서 거기다 보니 어느 장소든 가면 단 한 분이라도 안 만나는 날이 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고 평생을 거주한 이 도시를 떠나기는 싫고.

그래서 덜 상처받으려 궁리하다가  상대방이 머라 말하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친다.

" 저 변했죠? 아파서...  이 얼굴로 어디 나 댕기기 쫌 거시기해서 잘 안 나 댕겨요. 미안해요. 전시회 때  참석 못해 "라고 먼저  자진신고를 한다. 그러면 막 나오려는 말을 어쩔 수 없이  집어삼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이 상황도 내가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튼 더 이상의 말은 생략이 되어  요즘은 조금 편해졌다. 이게 내 최선이고 못난 자화상이다.





썩... 어도,  준치!!!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썩어도 준치라고. 아직 카리스마가 남아 있으시고만.."  

만만치 않는 강적을 만났다. 요양 보호사님과 동행한 센터 사회복지사 과장님. 처음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내 속을 꿰뚫고 내 상처에 비수를 꽂는다. 꼭 해야 할  사무적인 호구 조사만 주고받고  어서 꺼져주시길  바랐던 나는 못 들은 척 아무것도 모르는 깡촌 할머니처럼 일부러 중증환자처럼 가장했으나 내 자학적인 행동과 언어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도 한 참 어려 보이고 아파보지도 않으신 분이... 화려한 귀걸이에 홍콩 여배우 장만옥 버전의 원색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생기발랄한 당신이 무얼 알겠어?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런데

"썩어도 준치.." 정신이 번쩍 났다. 준치는 아시다시피 생선이다 맛이 좋아 가치가 높고 조직이 단단하여 귀하게 대접받았던 생선이다, 봄~초여름(4∼7월) 기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졌다가 이듬해 다시 나타나는, 시작과 때를 분명히  아는 생선이라고 나온다. 사람에게 나름 귀한  대접을 받는 생선이다.

내가  쥐치처럼 천박하게 굴었는데도 그런 귀티 났던 준치의 흔적이 있단 말이지. 분명 칭찬이지?



본디 "썩어도 준치"는 기본이 좋고 훌륭한 것은 썩거나 헐어도 어느 정도 본디의 훌륭함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시작할 때부터 기본, 근본을 탄탄히 다진 것들은  외향이 망가지고 변하더라도 그래도 훌륭함이 어느 곳에선가 배어 있다는 말이다.

 내 현 모습에 과거의 좋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칭찬의 말로 쓰신 거잖아.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내 인생을 왕년시절, 라테는 말이야 시절처럼 최고의 정점 부분만 제대로 된 인생이라

생각하고 현재 시간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바보구나. 정말 바보!  좋았던 예전의 내 생활에 대한 기억을 지금 생활이 약간 불편한 것과 비교하여  불행을 만들려고 써먹다니.

바보처럼.... 좋은 것을 불행의 이유로 쓰다니.


얼굴이 찌그러지면

어떻습니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얼굴 변한 것에 대한 감정을 오버하여 보낸 톡을 보고 질타하신 분의

깊은 뜻을 비로소 이해합니다


썩어도 준치라고만 하면 대접해 주는 것은 첫 마음부터 귀했으며 보이지 않는 내면의 내공이 쌓여서

 된 것이지 하루아침 후닥닥 된 것이 아니 듯

늙어도 혹은 죽어도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초심을 잃지 않고   

좋았던 시절이나 힘들었던 시절이나 그 나름대로의 시절을

품에 앉고 사랑하며 노력하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 도망하고 회피하고

핑곗거리를 만들고 자신에게 연민을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게 사람의 향기라는 것.




늙어가는 사람의 향기에 대해서

준치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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