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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Nov 16. 2023

내 로망의 공간을 찾아가면 인생 이막이 보인다

-- 담양 명가은 찻집 찻잔-

먼저 어쨌든  잘 생존해서 오늘 아침에도 정성스럽게 차 한잔 세상에 내놓고 손님들을 기다리는

세상의  모든 차 마시는 공간과 찻잔에게 존경과 경외심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내  인생 이막의 시작이었으며 이제는 정리 단계인  찻집은 2년 모지란 20년 , 쉬지 않고 달리던 바퀴를 잠시 멈추고 이따금씩 특별한 예약 손님만 받으면서 다음 주인을 물색하며  잠시 쉬고 있는 중이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고 또 지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잠시 쉬면서 내 인생 이막을 정리하다 생각해 보니  일본 우지의  추우엔 ,나카무라토키치 .. 중국 상해의 호심정 공간... 오래된 찻잔들이 떠오르며 그 긴 세월에 새삼 탄성이 나온다

 어쨌든 사라지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모든 공간은 그 공간에 대한 꿈을 꾼 사람과 그 공간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돈의 논리로 경영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밀당하면서 고민하면서 유지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니까. 이게 어려운 것이  특별한 공간이 되기 위한 꿈을 버리고 돈의 논리로만 가면 금방 손님들 발길이 끊기고 공간은 폭망하고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꿈만 꾸는 공간은 당연히 물적 기반이 없으니 사라지고..  꿈도 꾸고 돈도 버는 두 가지 숙제를 푼 이런 난관을 거쳐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내겐 기적처럼 느껴진다


사람마다 다  자기에 맞는 옷이 있다. 처음부터 자기 옷을 잘 찾아 입는 사람은 없다.

 인생 이막은 한 인생이 자기 안에 꿈틀대는 내면의

 꿈을 무시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현실에 공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고 이 이막의 시작은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익숙한 일막인생을 용감하게 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자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왔음을 어떻게 아는가?

그냥 벌떡 벌떡 잘도 일어나던 몸이 어느 날부터인가 배터리가 다 방전된

청소기처럼 스톱해 버린다. 학교 가는 게 싫었다. 사춘기가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닌 보편적인 경험이듯 터닝포인트 중년의 위기는  갱년기처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온다고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한

칼 구스타프 융은 이 시기를 , 가면 (페르소나 )을 벗는 시간, 생의 반환점으로 인생의 정오시간이라 했다


. 생의 전반기, 오전 타임에는 , 보이는 외향적인 정신세계에서 살다가

생의 후반기, 오후타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내향적 깊은 무의식의 세계가 등장하여 이전의 시간들을 거부하고 진짜 자신의 정체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시간.   중년의 위기라고도 칭하는 시간이라 말했다

 

그러나 날마다 출근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안정된 밥벌이인 직장을  젊지도 않은 나이에, 그만둔다는 것은  아직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엠에프 시절이라 가장의 직장도 위태위태할 즈음에 무책임한 일이었다. 내향적이고 말주변이 없는 나는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 판매해서 돈을 버는 영업직이 공포일 정도로 돈 버는 데는 젬병인데..

그래서 최소한의 연금이 나오는 시기까지 기다렸다. 20년. 행여 20년에 모자라서 낭패 볼까 몇 번이나 확인 확인하고 신청한 명예퇴직... 내 인생 이막의 마지막 기회였다. 마흔네 살...

 



드디어 사표를 냈다. 앞머리가 듬성듬성 빠질 정도로  공포였다.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이 거의 학교 주변이었다.

누구나 자기 로망의 공간과 시간이 있다

레드카펫 공간, 싱어게인 무대, 전원주택 공간, 좋아하는 카페 공간..

내 로망의 공간은 교실도 교육청도 교장실도 .  그것들은  내게는 가장 답답한 공간이었다

내 로망은   비울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비워낸 스님들의 선방이었다.



--내 인생 이막의 시작은

--내 인

-내 여행ㅇ어어길에 어쩌다  들른 담양의 소박한 찻집에서 차 한잔을 대접받았다.

정성스레 키운 야생화, 제대로 갖춘 다기로 우려 마시는 녹차, 품위 있는 유기에 담긴 차백설기,

일일이 수놓은 하얀 다건 , 빨랫줄에 널린 풀 먹인 모시가리개, 사장님의 비단치마와 버선에 모던한 검정스웨터.... 반한 것이 많지만  내 느낌은

모든 절차 다 떼어내고 그냥 공간 안에 들어온 마음들만 집중하는

  마음만 그대로 전하는 찻잔의 발견이었다


세속에서 내 로망인 스님들의 선방을 닮은 공간의 발견.

담양 명가은 찻집의 찻잔에 대한 내 첫 느낌이었다



.. 생 이막의 시작은..--내 인생 이막의 시작은..


그러나 인생 이막도  마음 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일막이든 이막 삼막이든 몸만 건강하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할 정도는 벌어야 한다. 다만  일막이 먹고 살기 위해 쫒기듯  의미도 즐거움도 없이 살았다면 이막은 좀 여유있게 즐기면서 자기 답게 살자는 것이다



명가은 운영 방식에서 길을 찾았다.


찻값을 사람이 아니라 돈통이 받는 곳

"명가은 안으로 들어서면 집안 곳곳에 밴 주인의 정성을 읽을 수 있다. 다상에는 다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손님이 없는 다상에는 상보를 덮어 먼지가 앉지 않도록 배려했다. 또 짧은 치마를 입고 찾아온 여성 손님을 위해 방에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쪽빛과 남빛으로 물들인 치마도 만들어 두었다. 보온병에 늘 따뜻한 찻물이 준비돼 있으므로 원하는 대로 녹차를 즐길 수 있다. 주인은 외출할 일이 있으면 문을 열어 두고 언제든 자리를 비우는데 주인이 없더라도 녹차를 마신 후 돈통에 돈을 넣고 나오면 된다. 녹차값은 5천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성의껏 내도 상관없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녹차 잎을 이용해 다식을 만드므로 이때 명가은을 찾으면 다식을 맛볼 수도 있다.

건물 뒤켠으로는 대나무밭이 펼쳐져 있고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감나무와 키위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있어 주변을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만 영업한다."

-초창기 여행정보 속의  명가은-


찻값을 사람이 받는 게 아니라 돈통이 받게 하는 것.

찻집을 첨 열었을 때 ,  찻값을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저 손님은 제자라서 , 저 손님은 우리 아래층 ㅇㅇ엄마라서 , 아들 담임이라서, 친정조카....


찻집 시작이 전원의 차실 공간에 놀러 오신 분들에게  차 한잔 대접해서 보내시고

다시 놀러오신 분들이 미안해서 차 한통씩 사오시다가 , 차 사오시는 것을 깜빡 하시다가

그냥 돈 오천원씩 돈통에다 넣다가 돈통에 넣고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 찻집,


돈 버는 찻집과 꿈꾸는 찻집 사이에서 고민했던 나에게 대답을 주신 공간.

내 찻집의 롤모델이 되어 주었고 지금까지도  따님에 의해 건재하신

명가은 찻집이 나와 우리 찻집의 첫 번째 인생 찻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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