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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Sep 23. 2024

3살 금 언어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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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단정한 옷을 좋아하는 딸이 자기 딸인 손녀에게 파격적인 옷을 사 왔다

손녀 수영복인데.. 그 색깔이 정말 빨가디 빨간 줄무늬였다. 모자까지 올 레드.

나도 모르게 

와! 섹시하다...





한참 수영복 모델 흉내 내면서 아파트 공간을 런웨이 무대 삼아 걷고 달리고  장난감 카메라로 찰칵찰칵 

찍는 흉내 내면서... 그러다 낯설고 새로운 단어 섹. 시 하다를  만나자 호기심에 눈이 반짝반짝하다.

 더군다나 바로 대답도 못하고 당황하고 버벅대는 할머니의 모습이 더 재밌어서

섹시하다... 섹시하다?  할머니, 할머니 섹시하다가 뭐예요 하면서 묻고 또 묻는다


아차! 얼른 입틀막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섹시하다 언어에는 어린여아에게 지나치게 여성적인 옷은 ,남의 눈에

띄어서 거 슬리고 위험하지 않겠니 라는 mz 세대인 딸이 들으면 참 답답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곰 곰 생각해보니 ,,맞다, 

야하다 !!라는 단어.

나는 베이비붐 세대다.세대라는 말 속에는 집단으로 우리에게 강요한 정서적 틀과 그 틀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순응한 수많은 인생이 있다.그래서 딸 세대가 열광 공감하며 보던 뉴욕섹스엔더 시티 드라마는 늙은 우리에게는 대리만족 후련함 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었다. 섹스는 영혼보다 한단계 하위 레벨로 동물적인 것 , 영혼이야말로  플라토닉러브, 사랑의 지존으로 여기는 청춘의 한 시 절을 보낸 할머니가 딸도 이해를 못하는데  손녀의 사랑은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래서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해도 야하다 라는 그 이상에서 한발자국도 못나간다.  


며칠 전 고추 널어놓은 화단가에서도 이런 류의 질문을 했는데 

-몰라 손녀야 ! 이런 질문은 3살 금이야 묻지마 -하고 싶지만  아이의 궁금해를 현명하게 어떻게 통과해야 하나?하고 고민도 한다.

손녀의 거주지는  가장 최근에 지은 새 아파트이다. 새 아파트인데도  아파트 화단에 고사리나물 말리는 채반이나 고추 널어놓는 풍경을 가끔씩 볼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재개발아파트라 이곳에 오래동안 거주했던 내 또래의 할머니들도 살고 있으리라. 반가운 마음에 고추 널어 놓은 곳에 잠시 쭈구려 앉자 바로 옆에 앉으며 쏟아지는 질문들. 

"할머니 머에요? "

"응 고추 널어놓은 거 야 "

고추.. 고추.. (아랫도리를 가르치며) 여기 고추 달린 것.  그러면서 웃는다.ㅎㅎ 어디서 고추를 설명 들었을까.. 아마 아이 수준에 맞는 어린이집 성교육도 받았을 것이고 엄마 아빠가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섬세하고 조심스런 태도가 아니라 눈치보지 않고 거침새 없는 태도로 보아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설명해 준 것 같다.

신기하게도 손녀의 새 언어를 들어보면 손녀 언어의  근원지가 고대로 다 느껴진다. 손녀 육아에 도움 준 사람의; 캐릭터가  다 담겨있다. 

" 우리 무슨 대화할까? "

라고 진지하고 학구적인 태도로 대화를 시작하는  손녀의 태도는  진지충에 먹물냄새나는 외할머니인 내 닮음꼴이고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또 놀러 올 거예요 "

씩씩하게 남자아이처럼 똑똑하게 예의와 따뜻한 애정을 품고 인사성 바른 것은 즈이 아버지 영향일 것이고 

신호등 건널 때 손 들고 우아하게 정확하게 똑 부러지게 걷는 건 즈이 엄마 영향일 것이다,

다리미질 놀이를 하면서 옷을 다려줘서 

"세탁비 얼마 줘야 돼?"물으면 

"괜찮아!! 돈 안 줘도 돼. 공짜야!!"

괜찮아...괜찮아 ...이말투는 이것 저것 잘 챙겨 주는  꼬모, 고모 영향일 것이다.


영화 드라마에 15금이 있듯이  , 언어육아에도 15금-이 있다면 섹시하다 는 말은 3살 금이다

잘 설명해 줄 자신감이 없으면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 왜곡이 더 큰 문제이니...


내가 만났던 섹시하다라는 언어에는 미술시간에 애써 그려간 자화상 그림을 평가하면서 이쁜 제자들 얼굴을 섹시하다라고 성희롱한 미술 교사가 있었고, 과도한 화장을 하고 여성성을 무기로 신분 상승을 한 지인도 있었고 딸 초딩시절 유난히도 뉴스에서 많이 벌어진 유괴사건들은  왜곡된 여성성의  극치였다 .  한창 직장생활에 바쁘기는 하고 일상을 같이 못하는 게 걱정은 되어서  내가 한 일은 부끄럽게도 딸을 남자아이처럼 머리를 바싹 자르고 옷도 남자필이 나는 옷을 입힌 소극적 행동이었다. 부끄럽게도...  지금 같으면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남자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기에 언어 육아에 신경을 쓰고 여자 아이에게는 자기 몸을 보호할 만한 무술을  가르치게 해야하지 않을까 . 아무튼 손녀의 언어 육아 일지에 섹시하다는 3금으로 기록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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